집 근처 해변가로 산책을 나섰다. 시원한 바다바람을 깊이 들이키며 초록이 짙게 우거진 생명공원을 지나면 눈앞으로 푸르른 송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네에 몸을 맡긴 채 흔들흔들,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대련 앞바다를 떠돌고 있다.
남편은 아들이 태여난지 여덟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먼저 일본으로 떠났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아이를 돌볼 테니 너도 가서 남편과 같이 돈 많이 벌고 오너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나는 20년간 몸담아 온 교직을 쉽게 놓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아들을 직접 키우고 싶었다.
조물주가 인간을 빚어낼 때 재능과 인격수양을 모두 완벽하게 허락하셨다면 더 말할나위 없겠지만 현실에서 이 두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란 여간 쉽지 않다.
우리는 흔히 천재적인 타고난 재능에 후천적인 피땀 어린 노력이 더해져 눈부신 성과를 낸 사람을 ‘인재’라 부르며 우러르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인재의 가치와 무게는 재능의 크기만이 아닌, 그것을 담아내는 ‘사람의 됨됨이’ 즉 깊은 인격수양에 달려 있다.
아무리 화려한 재능으로 온몸을 무장했다 한들 인격의 빈곤함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마음의 그릇이 보잘것 없이 금이 가고 깨져있다면 그 어떤 뛰여난 재능도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9월 13일 오전, 리명화(필명 리다설) 중단편소설집 《창백한 푸른 점》 출판 기념 및 흑룡강성 조선족문학 창작 세미나가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을 맞아 송화강변의 아름다운 문화 도시 할빈에서 개최된 이번 세미나는 조선족 문학 창작 성과를 정리하고 문단의 현황과 미래 발전 방향을 론의하는 의미있는 자리로 평가된다. 본 행사는 흑룡강성작가협회 민족문학위원회,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송화강》 잡지사가 공동 주최하고 흑룡강성조선족작가협회 할빈분회가 주관했다. 행사는 흑룡강신문사 《진달래문학》 부간 책임편집인 리인선(할빈 분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할빈분회 회원과 재할빈 조선족 문화계 인사 등 약 20명이 참석해 문학 교류와 학술 토론을 진행했다.
친구들과 함께 아침 산책을 했다. 때는 화창한 봄철이라 황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훈훈한 바람이 가슴을 부풀게 하고 한창 꽃망울을 터치기 시작한 진달래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산 정상에 올라 다리쉼을 하는데 최선생이 문뜩 “하루 생활에서 어느때가 기분이 제일 좋소?”라고 묻는다.
나의 옆에 앉은 박선생이 “거야 산책을 나와서 저 사품치는 바다구경을 할 때가 제일 좋지”라고 선코를 떼자 말없이 차를 마시던 강씨가 인차 “나는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회포를 나눌 때가 기분이 가장 좋아”라고 말한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친구들에게 꺼내보이면서 “나는 아침마다 한복을 입고 찍은 이 가족사진을 볼 때가 가장 기쁘오”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귀가 솔깃하여 나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 손녀 다섯이 모두 한복을 입고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 가족사진을 번갈아보며 엄지척을 내밀었다. 나는 바다우에 훨훨 날아예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이 가족사진에 깃든 가족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민속촌에 갔다가 장독대 옆에 있는 물항아리, 화로, 물동이에 눈이 갔다. 한때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한시도 한가한 날이 없던 물건들이 오늘은 이렇게 박물관에 편하게 놓여 사람들이 구경대상이 되였고 끝없는 추억을 불러오는 골동품이 되였다.
고향에서는 물 받아두는 물두멍을 물독 또는 물항아리라 불렀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래야만 그를 둘러싼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 같다. 물독을 비롯한 질그릇들은 내 삶의 려정을 따라다닌 몇푼 안되는 물건들이다. 고향 부엌에 있다가 아빠트 베란다 지어는 주택 옥상에 옮겨 다녔다가 그 려정 중에 수도에 존재 가치를 빼앗겨서 지금은 이렇게 민속박물관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그들을 헹궈내고 채우고 닦던 손길도 곁을 떠난지 오래다.
녹이 슨 열쇠가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몇번이고 열쇠를 돌린 끝에야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어둠이 내려앉은 집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15년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였다.
문을 여는 순간 묵은 습기 냄새와 퀴퀴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와 코를 찔렀다. 마치 오래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집이 나를 원망하듯 품고 있던 냄새 같았다. 나는 서둘러 량쪽 방과 주방, 객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한동안 밖에 나와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