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계절보다 앞서 움직이는 마음의 풍경이 숨어있는 듯 하다.
3월 초, 경칩이 찾아오면 겨우내 땅 속에 잠들어 있던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 놀랄 경(惊), 숨을 칩(蛰), 누가 흔들어 깨우지 않아도 봄이 왔음을 알고 스스로 밖으로 나오는 생명들이다.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봄은 자연에서 시작되기보다 사람의 마음에서 먼저 깨여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어느 해 할빈의 겨울,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찌프려 있었다. 눈이 내릴 조짐이였다. 할빈에 첫눈이 내리던 날이였다. 출근하는 나에게 안해가 우산을 건네며 쓰고 가라고 했다. 눈이 내려 녹으면 옷과 머리가 젖는다는 것이였다. 한국에서는 눈 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다닌단다. 나는 처음에는 쑥스럽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런대로 우산을 들고 출근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 동료 친구와 점심 식사 후 건강을 챙길 겸 거리를 걷는 습관이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그날 점심시간에도 아침부터 내리던 싸락눈이 계속 내렸다. 나는 자연스럽게 우산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것도 할빈시의 중심가인 중앙대가로 말이다.
바라만 보아도 별처럼 빛나는 존재, 그대는 바로 녀성이다.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숨 쉬게 하는 존재이며 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이자 태양처럼 따뜻하게 가정을 비추는 존재이다. 녀성은 세상이 돌아가는 리유이자 인간이 사랑을 알고 행복을 느끼는 근원이다.
세상은 녀성 덕분에 빛을 내고 마음은 녀성 덕분에 따뜻해진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다.
녀성은 소금과 같다. 맛을 내는 것 이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다. 녀성이 없으면 삶은 허전하고 맛 없어진다. 가정에서 말없이 헌신하는 모습, 어려울 때 묵묵히 곁을 지키는 모습,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은 꽃처럼 아름답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소금 없이는 살 수 없듯 세상은 녀성의 따뜻한 손길과 배려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
대단한 수식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따뜻해진다. 이것이 글의 맛일지 모른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온기 같은 것. 맛있는 음식이 몸을 기쁘게 하듯 좋은 글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글의 맛은 문장 속에 스민 온도이고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숨결이다.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어우러져 피여나는 보이지 않는 향기 같은 것.
좋은 글의 맛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물이 오래 끓을수록 깊어지듯 글의 맛도 천천히 번진다. 처음에는 그냥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녀인은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금방 흥분하여 사무실 안으로 몸이 쏠렸다. 오리무중이였으나 나와 관계가 있는 듯하여 사무실 안으로 모셨고 출납원 아가씨가 눈치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녀인은 온 정신이 나에게 쏠려 사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마주 앉아 몽유병 환자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네 아버지가 내 외삼촌이고 내 엄마가 네 친고모다!”
갑자기 어눌한 조선말까지 하며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데 나는 들을수록 천방야담이였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녀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전자, 다전자 몰라?”라고 했다. 다전자는 내가 태여난 곳이기는 하지만 고작 세살 때 이사를 나왔길래 어른들 이야기에서 어렴풋이 인상이 남았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