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촌에 갔다가 장독대 옆에 있는 물항아리, 화로, 물동이에 눈이 갔다. 한때는 귀한 대접을 받으며 한시도 한가한 날이 없던 물건들이 오늘은 이렇게 박물관에 편하게 놓여 사람들이 구경대상이 되였고 끝없는 추억을 불러오는 골동품이 되였다.
고향에서는 물 받아두는 물두멍을 물독 또는 물항아리라 불렀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래야만 그를 둘러싼 기억들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 같다. 물독을 비롯한 질그릇들은 내 삶의 려정을 따라다닌 몇푼 안되는 물건들이다. 고향 부엌에 있다가 아빠트 베란다 지어는 주택 옥상에 옮겨 다녔다가 그 려정 중에 수도에 존재 가치를 빼앗겨서 지금은 이렇게 민속박물관에 조용히 엎드려 있다. 그들을 헹궈내고 채우고 닦던 손길도 곁을 떠난지 오래다.
녹이 슨 열쇠가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몇번이고 열쇠를 돌린 끝에야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어둠이 내려앉은 집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15년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였다.
문을 여는 순간 묵은 습기 냄새와 퀴퀴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와 코를 찔렀다. 마치 오래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집이 나를 원망하듯 품고 있던 냄새 같았다. 나는 서둘러 량쪽 방과 주방, 객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한동안 밖에 나와 서있었다.
어제 오후, 택배 기사님이 제법 묵직한 박스를 건네주셨다. 광주에서 왔다. 문학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책들이다. 항상 책이 모자라 늘 선배님께 빌려보는 신세다. 박스 뚜껑을 열자 노란 보자기가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깨끗했다. 구김 하나 없이 모서리가 반듯한 정교하게 접힌 노란 보자기. 그 안에 책 열권이 단정히 들어 있었다. 보자기 매듭도 단단하고 예뻤다. 누군가 정성을 다해 싸매 놓은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그 노란 보자기를 보는 순간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바로 아득히 먼 어린 시절로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외아들 하나를 장가보내고 세간을 내여 준 뒤 홀가분하게 독립시켰다. 그리고 중풍으로 몸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십여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여 하루라도 탈없이 무사하기를 몸과 마음으로 약속하며 나날을 보내는 모녀가 되였다.
모녀 사이는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고 믿을 수 있는 관계라지만 나는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말을 삼가고 또 삼간다. 상처가 될 말은 아예 생각조차 말아야 하고 가끔 어머니가 불편해할 때 애가 나서 내뱉으려는 소리도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목구멍으로 삼키고 불편함은 속으로 접어버린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필경 어머니이다. 십여년 넘게 앓고 있는 자신을 애써 간호하는 딸의 팔자가 늘 마음에 걸려 자주 같은 말을 내뱉곤 한다.
벗님네들 앞으로
오롯이 청오석으로 다가오다가
만리창공에서 선회하며
예이제이 없이 날아오를듯
두만강역 독수리석이다가
저기 저 북두칠성사 너머 넘어
우뚝 서있는 괴물봉이다가…
아희야
대자연수석 앞에서
공손히
새하야니
공손히
새하야니
고향 엄마가 지어준 흰옷 입고
두 손 합장하며
두 무릎 꿇은
시지기–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