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나무잎이 노랗게 물들면
나는 창가에 앉아 바라본다
락엽이 단단히 쌓이듯
삶의 날들이 겹쳐간 걸
어렸을 땐 봄처럼 맑고
젊었을 땐 여름처럼 뜨거웠지
이제 가을바람이 불면
가슴 속엔 평온이 차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옛날 사진 속으로 들어가고
일터의 긴장과 기쁨은
차 한잔의 온도로 남아있다
나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단 얼마라도 쓸모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남들의 인정도, 쓸모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다. 그 쓸모가 아주 작은 것, 미소한 것일지라도 오롯이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 스스로 이 세상을 ‘졸업’할 때까지 ‘무용지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마음대로 되지 않을 일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으로 여생을 함께 해나가려 한다.
이젠 고래희에 접어든 인생의 늦가을, 간혹 가다 소외감이 스멀스멀 스친다. 마치 가전제품이 수명의 하반기에 이르러 부속품들이 하나 둘 고장나 ‘사용불가’ 판결을 받듯이 이 나이가 되면 사회나 타인에게 아직 쓸모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아직 누군가에게,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를.
계절따라 초겨울의 입구에서 그에 걸맞는 시 한수를 만난다. 바로 한영남의 <계절이 홍시 하나로 남으면>이다. 이 시는 동양적인 선(禅)의 맛과 실존주의적 사고가 담긴 수준 높은 단시로 극도로 간결한 이미지를 통해 삶이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처경과 선택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차근차근 그 진미를 음미해 보자.
1. 핵심 이미지: 홍시- 생명의 마지막 온기
시인이 '홍시 하나'를 핵심 이미지로 선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다.
성숙의 종착점으로 각인되는 홍시는 시간이 다져낸 결정체를 상징하며 계절의 순환 속 마지막 온기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울긋불긋 다채로운 색깔이다.
노을 이고 전철에 몸을 싣는 이가 있고
강변을 달리며 조깅하는 이가 있고
어제의 피곤에 묻혀 코고는 이가 있고
왈가닥달가닥 아침상 차리는 이가 있고
바람 일구며 출근길이 바쁜 이가 있고
헐헐 숨 가쁘게 산을 오르는 이가 있고
얼굴 붉히며 피대 세우는 이가 있고
고요를 깨뜨리는 청아한 까치소리 있고
귀를 괄시하는 까마귀소리도 둬 점 있고
내가 소학교 5학년이였을 때 마을은 아직 전기가 드문드문 들어오는 시절이었다. 해살이 오후 세시를 넘어 노을색으로 물들면 오솔길 량옆의 참나무 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며 그림처럼 겹쳐지고 마을 끝 저편 논밭에서는 농부들의 밭갈이 소리가 멀리 퍼져나갔다. 그날은 학교에서 대청소를 하느라 점심을 건너뛰였기 때문에 배는 속이 꼬이도록 허전했다. 등산화 끈을 꽉 매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질 때쯤 우리집 오두막 지붕 우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았다.
처서 절기면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고 하는데 올해의 여름은 많이도 덥다. 7월 내내 37도를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는 정말 사람을 괴롭힌다.
길거리의 나무잎도 한나절의 폭염에 시달려 축 처지고 바람 한점 없는 불도간에 숨이 헉헉 막혀온다.
조카네 부부가 여름휴가에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10일간 긴 려행을 하고 돌아와 피곤도 잊고 그 이튿날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우리 부부를 모시고 해수욕장에 려행을 가자고 청했다.
무더위를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그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많이 망설여지기도 하였다. 오후 5시쯤 조카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네 집에서 저녁밥을 같이 먹잔다. 워낙 음식 만드는 솜씨가 뛰여난 그녀는 뚝딱 한상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았다. 거기에다 베트남 술까지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나는 팔남매중 다섯번째 아이로 태여났다. 우로 언니 둘과 오빠 둘이 있고 아래로 녀동생 셋이나 있다. 우리는 팔남매가 자라다보니 언제 한번 엄마한테 응석을 부려본 적이 없고 누렁지 먹겠다고 흥~ 흥 해본 적도 없으며 공부를 잘하여도 엄마의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엄마는 우리를 먹여 살리기도 벅찼다.
그 고난의 세월에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아주 이뻐하셨다. 지금은 집집마다 세수수건을 쌓아놓고 쓰지만 우리가 자랄 때는 온집식구가 수건 하나를 쓰면서 살았다. 결혼집에서 선물받았던 많은 수건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할머니 생각에 눈굽이 젖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