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왔을가? 눈매 고운
저 어린 것은
얼굴에 2만개의 눈을 달고
인간의 숲 속을 비집고 들어서더니
사람의 흉내를 내며
바람의 광장에서 너펄거리며
거품의 행복을 노래부른다
잠자리가 술을 마신다
잠자리가 인간을 마신다
잠자리가 날개를 버리고
거짓의 옷을 입고 춤을 춘다
세속의 늪에 빠진
저 잠자리는 어디서 온
나그네인가?
지나간 삶을 어떻게 가시나무밭길과 진흙탕길을 헤치고 지나 여기까지 왔나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한때는 텅 비고 기울고 엉킨 모래탑도 쌓아보았다
이 세상에 고고성을 울린 이래로 때로는 질투의 마음도 가져봤고 자기 코대만 높은 줄 알고 남을 괄시도 해봤고 침착보다는 경솔한 일처리도 많았다
한때는 부푼 풍선마냥 실속없는 환희에 들떠 안착하지 않았고 그러다가도 주체할수 없는 자비심에 빠져 허송세월할 때도 있었다
한참 잘 나아가다가도 가슴을 도려내는듯한 고통에 시달려도 봤고 슬픈 비애에 잠겨 억제 못하고 허둥거리며 헤여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하늘이 희뿌연 얼굴을 하고 심술을 부리는 날이면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려서 온 천지를 하얀색으로 칠한다.
병실의 창가에 서서 눈이 내린 정원을 바라보면 정말 천상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얀 눈꽃은 나무의 크기에 따라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작은 나무에 핀 눈꽃은 활짝 핀 목화밭을 련상케하고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얹힌 눈꽃은 하얀 다리아가 활짝 피여있는 모습을 련상케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숨결로 가득 차있다. 첫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부터 기다림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며 존재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인내의 가치를 깨닫게 하며 삶 속에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밭에서 가꾼 채소를 팔러 시장에 가시면 나는 동구밖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돌아오실 길만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누런 종이봉지에 싼 눈깔사탕을 싸가지고 와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군 하였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 순간, 달콤함이 혀끝에서 꽃망울 터지듯 피여오르는 느낌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다. 사탕은 녹아 사라져도 그 안에 깃든 기다림의 여운은 지금껏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철이가 열살나던 해, 강변에서 놀다가 그만 발목을 다쳤다. 다행히도 할아버지가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비법으로 수많은 마을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기에 철이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부러진 뼈를 이어주었음에도 발목 속에서 올라오는 통증은 고치지 못하여 철이는 약간씩 걸을 수 있지만 두 지팡이를 버리지 못하였다.
어느 날, 철이는 침대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왜 우시나요?”하고 물었다.
퇴근길은 늘 같았다.
경비실 문을 나서면 어둠이 먼저 와 있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집은 가깝지만 쉽게 닿지 않았다. 문을 열자 따뜻한 국냄새가 퍼졌다. 안해는 아무말 없이 밥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았다. 숟가락 소리만 조용히 오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번, 두번. 마지못해 받았다.
“누구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살던 고향은 굽이굽이 칠백리 두만강의 중하류에 위치한 량수향 소재지이다. 마을에서 북으로 십오리 올라가면 좀 너른 마을이 있는데 동전촌이라 불렀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동쪽의 습지판이란 뜻에서 온 이름이란다. 확실히 논밭이 많은 곳이였다.
남향장을 하고 들어 앉은 마을의 뒤산 언덕 기슭에는 십여헥타르의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사과배꽃, 살구꽃, 복숭아꽃, 오얏꽃들이 만발하여 하얀 꽃동산을 이루었고 그 향기가 온 동네에 풍기여 낮에는 벌들이 붕붕 이꽃저꽃 찾아다니면서 꿀을 빚었다. 교교한 달밤이면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꽃향기 속에서 평화로운 밤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