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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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

  •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하늘이 희뿌연 얼굴을 하고 심술을 부리는 날이면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려서 온 천지를 하얀색으로 칠한다. 병실의 창가에 서서 눈이 내린 정원을 바라보면 정말 천상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얀 눈꽃은 나무의 크기에 따라 크기가 천차만별이다. 작은 나무에 핀 눈꽃은 활짝 핀 목화밭을 련상케하고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얹힌 눈꽃은 하얀 다리아가 활짝 피여있는 모습을 련상케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숨결로 가득 차있다. 첫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부터 기다림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며 존재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인내의 가치를 깨닫게 하며 삶 속에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밭에서 가꾼 채소를 팔러 시장에 가시면 나는 동구밖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돌아오실 길만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누런 종이봉지에 싼 눈깔사탕을 싸가지고 와서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군 하였다. 사탕을 입안에 넣는 순간, 달콤함이 혀끝에서 꽃망울 터지듯 피여오르는 느낌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다. 사탕은 녹아 사라져도 그 안에 깃든 기다림의 여운은 지금껏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 ​철이가 열살나던 해, 강변에서 놀다가 그만 발목을 다쳤다. 다행히도 할아버지가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비법으로 수많은 마을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기에 철이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치료를 받게 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부러진 뼈를 이어주었음에도 발목 속에서 올라오는 통증은 고치지 못하여 철이는 약간씩 걸을 수 있지만 두 지팡이를 버리지 못하였다. 어느 날, 철이는 침대 옆에 앉아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왜 우시나요?”하고 물었다.
  • 퇴근길은 늘 같았다. 경비실 문을 나서면 어둠이 먼저 와 있었다. 발걸음은 무겁고 집은 가깝지만 쉽게 닿지 않았다. 문을 열자 따뜻한 국냄새가 퍼졌다. 안해는 아무말 없이 밥을 차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앉았다. 숟가락 소리만 조용히 오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한번, 두번. 마지못해 받았다. “누구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내가 살던 고향은 굽이굽이 칠백리 두만강의 중하류에 위치한 량수향 소재지이다. 마을에서 북으로 십오리 올라가면 좀 너른 마을이 있는데 동전촌이라 불렀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동쪽의 습지판이란 뜻에서 온 이름이란다. 확실히 논밭이 많은 곳이였다. 남향장을 하고 들어 앉은 마을의 뒤산 언덕 기슭에는 십여헥타르의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사과배꽃, 살구꽃, 복숭아꽃, 오얏꽃들이 만발하여 하얀 꽃동산을 이루었고 그 향기가 온 동네에 풍기여 낮에는 벌들이 붕붕 이꽃저꽃 찾아다니면서 꿀을 빚었다. 교교한 달밤이면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꽃향기 속에서 평화로운 밤을 즐겼다.
  • 생활 그것은 사람들이 인생무대에서 마스고 만들고 만나고 갈라지며 싸우며 이기고 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이요 자신의 삶을 쓰는 과정이다 생활 그것은 언제나 누구나를 뜨겁게 포옹해주는 영양과 활력으로 충만된 인간성장의 비옥한 땅이다
  • “래일 등산지는 모아산입니다. 9시까지 범석상 앞에 집합하세요.” 등산대의 통지이다. “영실이, 미니영화 <장애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출연할 녀성 배우 4명을 추천하오.” 영화협회 손감독이 위챗으로 보내온 메세지 내용이다. “선생님, 보내온 수필을 채용하겠습니다.” 기쁜 소식이다. “모레, 왕청항일홍색기지를 참관하겠습다. 아침 여덟시까지 연변병원 동쪽대문 길 건너에 모입니다.” “오늘은 한성호텔에서 수필창작 좌담회를 진행합니다. 친구분 몇분을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영실이, 봄빛동네에서 남자들이 3.8절을 쇠여주겠다는데 즉흥으로 표현해야 한대요.”
  • 망망한 바다우에 조그만 배 한척이 종착역을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를 저어간다. 작은 파도에 비틀거리다가 삼척같은 큰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에 휩쓸려 버린다. 그래도 용케 물우에 다시 떠오르는데,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위가 뒤집히는 듯한 메스꺼움이 밀려온다. 토하고 쏟아내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아직 살아있었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갈매기들도 살아있다고 축하해 준다. 아, 살았으니 걸어야 하고 도전해야 한다.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면서도 저 태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생로병사의 삶, 누구를 원망하랴.
  • 우리는 어릴 때부터 “네”라고 말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순응은 미덕이 되고 거절은 때로 버릇없음이나 리기심으로 오해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 “아니요”라는 말은 쉽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받아들이며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밀어내는 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모든 “네”가 관계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말하지 못한 “아니요”들이 마음 한켠에 쌓여 관계를 서서히 기울게 만든다는 것을. 감정은 소리없이 무너지고 결국 남는 것은 지친 자신과 어딘가 어색해진 거리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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