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보아도 별처럼 빛나는 존재, 그대는 바로 녀성이다.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될 필수 요소이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숨 쉬게 하는 존재이며 샘물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이자 태양처럼 따뜻하게 가정을 비추는 존재이다. 녀성은 세상이 돌아가는 리유이자 인간이 사랑을 알고 행복을 느끼는 근원이다.
세상은 녀성 덕분에 빛을 내고 마음은 녀성 덕분에 따뜻해진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다.
녀성은 소금과 같다. 맛을 내는 것 이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다. 녀성이 없으면 삶은 허전하고 맛 없어진다. 가정에서 말없이 헌신하는 모습, 어려울 때 묵묵히 곁을 지키는 모습,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은 꽃처럼 아름답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소금 없이는 살 수 없듯 세상은 녀성의 따뜻한 손길과 배려 없이는 온전할 수 없다.
대단한 수식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따뜻해진다. 이것이 글의 맛일지 모른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온기 같은 것. 맛있는 음식이 몸을 기쁘게 하듯 좋은 글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글의 맛은 문장 속에 스민 온도이고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숨결이다.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어우러져 피여나는 보이지 않는 향기 같은 것.
좋은 글의 맛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물이 오래 끓을수록 깊어지듯 글의 맛도 천천히 번진다. 처음에는 그냥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녀인은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금방 흥분하여 사무실 안으로 몸이 쏠렸다. 오리무중이였으나 나와 관계가 있는 듯하여 사무실 안으로 모셨고 출납원 아가씨가 눈치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녀인은 온 정신이 나에게 쏠려 사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마주 앉아 몽유병 환자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네 아버지가 내 외삼촌이고 내 엄마가 네 친고모다!”
갑자기 어눌한 조선말까지 하며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데 나는 들을수록 천방야담이였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녀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전자, 다전자 몰라?”라고 했다. 다전자는 내가 태여난 곳이기는 하지만 고작 세살 때 이사를 나왔길래 어른들 이야기에서 어렴풋이 인상이 남았을 뿐이였다.
어떤 날은 그늘이 유난히 길고 짙게 드리워진다. 내 그림자도 아닌데 어쩐지 그 어두운 기운이 나를 덮쳐 숨 쉬기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바스락거리는 잡음들은 단순한 귀찮음을 넘어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고 애써 외면하려 해도 이미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내 내면의 풍경을 흐려 놓군 한다.
누군가의 부족함을 내 빛으로 가려주는 것이 착한 마음이라 여겼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그 짐이 오히려 그들의 빛을 가려 더 깊은 어둠을 만들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간신히 피워 올린 불꽃마저 그늘 아래 꺼져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였다.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내 뒤통수가 서늘하게 저려 온 것은.
서른해째 콘크리트 산을 지고 걷는다
렌치는 손바닥에 등뼈를 새긴듯
비계(脚手架)우에로 하늘은 점점 다가온다
지도는 사막이 되고 나는
등대 없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빛바랜 배표의 주인이다
사투리는 깊숙이 박힌 가시처럼
트렁크 속에 잠든 려권에서
고향 이름은 서리처럼 사라져간다
옛말에 이르기를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세우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고 했다. 진정 그 의미를 깨달은 건 나이가 들고 시간이 쌓여가면서부터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고 봄은 겨울의 침잠을 깨우고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계절이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해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봄은 모든 생명이 깨여나는 때이자 내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꿈이 싹을 틔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해의 책장사이를 살펴보면 여전히 남은 몇권의 빈 공간이 눈에 띈다. 그 빈 공간은 지난해 이루지 못한 소망과 아직 피여나지 않은 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마음속에 품었던 기대와 목표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며 봄의 기운을 기다리고 있다. 이 빈 공간은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품은 희망의 자리로 올해 봄과 함께 꿈을 키워나갈 터전이 되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