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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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

  • 개구쟁이 시절 추억도 많다. 봄이면 구렁이 기여간 듯한 우불구불한 뒤동산 언덕길을 따라 진달래꽃 한묶음 그러안고 뛰여내리다가 조약돌에 걸려 넘어져 코방아를 찧으면 흙투성이가 된 온몸을 털어주시며 “우리 룡이 용쿠나, ‘령’을 넘었구나” 하며 칭찬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의 바램길, 여름이면 버들치 잡아 생선국 끓여먹으려 줄풀에 벌겋게 종알이 긁히면서 희미하게 그어진 풀속길을 헤매다가 제자리에 원을 그었던 수풀길, 가을이면 아버지를 따라 머루, 다래 따러 다니던 뒤동산 오솔길, 겨울이면 바지엉치가 황소눈이 되도록 얼음지치기를 하던 동구밖 내리막길… 그것도 한번 두번이 아니라 수십번, 수천만번 가로세로 종횡무진하듯 오갔으니 때론 아름다운 삿갓을 엮은 길은 아니였을가고 우습게도 생각을 굴려보았었다.
  • ​오늘 나는 한영남의 시 ‘무깍지 동네’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연길시 철남에 위치한 30, 36, 42번 버스 종점으로 가기 위해 먼저 모아산행 21번 버스에 올라 명신역에서 내렸다. 모아산 기슭마다 앵두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터질 듯 탐스럽게 익어가고 살구와 돌배들은 가지가 휘여질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한영남의 시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가. 31년이 지난 지금, 그 무깍지 동네는 아직 남아 있을가. 도착해보니 그곳은 철남 명신촌 동쪽 민속촌을 지나 공룡박물관을 건너 철남시장으로 가기 전 주기상국 위쪽 골목이였다. 그때의 일반 농촌 주택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오래 전에 아파트 단지가 숲처럼 우뚝 솟아 무깍지 동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작문시간이 제일 반가왔다. 때론 선생님이 나의 작문을 읽어주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였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나는 책 한권 살 여유도 없어 가끔 친구의 책을 빌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림해설원’, ‘홍루몽’, ‘대하는 흐른다’ 등등 소설책을 많이 보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째지게 가난한 삶에 365일 일하다보니 책을 보며 한가이 보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시집가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 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삶에 지쳐서 마음 한구석에 꿈을 묻어두었다. 그러다 한국 생활을 마치고 병들어 집에 돌아오니 한가하고 할일이 없었으며 생활이 무의미했다. 이렇게 70이 넘어서야 묻어두었던 글쓰기가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 ​누구나 한번쯤은 포즈 잡고 사진을 찍었겠지 그래 결혼을 한 사내라면 물찬 제비같은 그녀와 멋지게 포즈 잡고 활짝 웃었겠지 하지만 수양버들같은 그 허리가 언제부터 펑퍼짐한 오지독으로 되였을까 오늘 아침 문뜩 사진첩을 보니 첫날의 다짐이 떠올라 눈꿉이 축축해진다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목석도 때론 눈물 흘릴 수 있을까 한 남자에게만 영원한 소녀이기고 싶다던 안해
  • ​녹슨 자물쇠 잠 자고 처마밑 거미줄 집 지키네 찬 바람 새벽안개 몰고와 풀잎에 은방울 맺치는데 매미 울음소리 끊어지고 락엽만 문앞에 쌓여가네
  •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덕이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치 냄새 좋은 풀밭에 들어온 듯 하고 나쁜 사람 곁에 있으면 마치 생선을 굽는 냄새가 나는 가게에 들어온 듯하다.” 이 말은 사람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향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 그 향기는 단지 상대방에게서 풍기는 것이 아니라그 상대방과 나누는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타인에게서 무형의 향기를 느끼지만 실은 그 향기의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 속에 깃들어있다. 말에는 향기가 있고 말에는 맛이 있다. 그리고 그 향기와 맛은 때로는 우리의 운명마저 좌우한다.
  • ​아침이란 언제나 분주하다. 하지만 그날의 아침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외손주가 유치원 셔틀을 타는 마지막 날, 그 작은 사건이 내 하루 전체를 전쟁처럼 흔들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는 원래 아침이면 얼굴에 함박웃음을 피우며 셔틀에 오르곤 했다. 외할머니의 손길이 늘 함께 했으니 그 시간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소학교 축구팀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 벅찬 훈련을 매일 이어가다보니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고역이 됐다. 침대 속에서 아이는 잠든 고양이처럼 축 늘어진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어릴 때 이른 아침이면 잠결에 들려오던 그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싸락싸락–싸라락싸라락” 마치도 비방울이 얇은 창호지를 스치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여린 나무잎이 서로 스치며 속삭이는 듯한 은은하고도 정겨운 소리였다.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반쯤 꿈 속에서도 ‘아, 엄마가 쌀을 씻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방문 틈으로 새여 들어오는 새벽의 싱그러운 공기와 섞여 들려오는 차갑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물소리, 그것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집의 탁상시계 소리이자 가난하지만 뜨거운 삶의 리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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