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택배 기사님이 제법 묵직한 박스를 건네주셨다. 광주에서 왔다. 문학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책들이다. 항상 책이 모자라 늘 선배님께 빌려보는 신세다. 박스 뚜껑을 열자 노란 보자기가 반듯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깨끗했다. 구김 하나 없이 모서리가 반듯한 정교하게 접힌 노란 보자기. 그 안에 책 열권이 단정히 들어 있었다. 보자기 매듭도 단단하고 예뻤다. 누군가 정성을 다해 싸매 놓은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그 노란 보자기를 보는 순간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바로 아득히 먼 어린 시절로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외아들 하나를 장가보내고 세간을 내여 준 뒤 홀가분하게 독립시켰다. 그리고 중풍으로 몸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십여년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여 하루라도 탈없이 무사하기를 몸과 마음으로 약속하며 나날을 보내는 모녀가 되였다.
모녀 사이는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고 믿을 수 있는 관계라지만 나는 어머니 앞에서만큼은 말을 삼가고 또 삼간다. 상처가 될 말은 아예 생각조차 말아야 하고 가끔 어머니가 불편해할 때 애가 나서 내뱉으려는 소리도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목구멍으로 삼키고 불편함은 속으로 접어버린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필경 어머니이다. 십여년 넘게 앓고 있는 자신을 애써 간호하는 딸의 팔자가 늘 마음에 걸려 자주 같은 말을 내뱉곤 한다.
벗님네들 앞으로
오롯이 청오석으로 다가오다가
만리창공에서 선회하며
예이제이 없이 날아오를듯
두만강역 독수리석이다가
저기 저 북두칠성사 너머 넘어
우뚝 서있는 괴물봉이다가…
아희야
대자연수석 앞에서
공손히
새하야니
공손히
새하야니
고향 엄마가 지어준 흰옷 입고
두 손 합장하며
두 무릎 꿇은
시지기–죽림…!!!
긴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의 문턱에 들어서니 시간은 느리고 무료하며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수십년간 직장과 가정을 위해 쉼없이 달려온 날들이 지나고 나면 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동년배들과 어울려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싶은 마음이 깊게 자리 잡는다.
우리 룡드레 등산팀은 바로 그렇게 직장생활을 마친 중년과 로년의 팀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하며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삶의 여유를 되찾는다.
여름이 깊어갈수록 고향의 산에 가득 피여나던 여러가지 야생꽃이 그리워난다.
생활이 유족하지 않던 세월에도 산은 가난을 몰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껌꽃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던 주황색 꽃이다. 군데군데 모둠을 이루며 많이도 피여났다.
한여름의 어느 날 엄마가 기음 매러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말씀하셨다.
“얘, 앞산 등성이에서 꽃잔치가 한창이더라. 래일 엄마같이 꽃구경 가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