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짰을가
만년을 짰을가
상아는 불철주야
바다물로 직포를 한다
해의 숨결로 실을 뽑고
달의 스킨십으로 날을 맞추어
썰물로 한북
밀물로 한북…
삼베 한틀, 무명 두틀
낮에는 일광단, 밤에는 월광단
천필만필 직포를 하여
상아는 누구의 옷 지으려고 하는 걸가
미역과 해초에겐
록색치마 입혀 춤추게 하고
힘 센 고래에겐
관복 맞춰 장가 보내고
거부긴 천년장수하라
별빛 수놓은 갑옷 걸쳐주고
세월에겐 해해년년
알록달록 무늬옷 갈아입혀 드리느라
처절썩 처절썩
상아는 오늘도 천을 짠다
썰물로 한북
밀물로 한북…
상아가 직포한 비단필
노을이 들어올리면
바다의 실크로드
둥둥- 북소리 출렁인다
달의 맞춤법
남쪽을 향해 걷는데
신발 뒤축이 달을 공차기하고 있었다
황당한 일이다
달이 북쪽 하늘에 걸려있었다
나들이길 바꾸었는가고
달한테 물었다
여긴 남반부잖아
달이 대답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달은 출발지와 다니는 길
행선지 모두 변함이 없는데
내가 달의 맞춤법을 모르고 있었다
머리 속 거푸집이 깨지는 소리 들렸다
뼈속 깊이 박힌 못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면서
꺼벙하던 몸이 가벼워졌다
생글생글 북쪽 하늘에서
구름사이로 흘러가는 달이
은빛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며
내 등에 새로운 항해도를 새기고 있었다
뚝뚝- 문패 잃은 좌표들이
척추를 타고 떨어지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지구본에서
별들의 띄여쓰기가 보였다
캐빈과 나
핼러우!
옆집 백인 캐빈이
날 보고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다 핼러우!
그의 초청으로 집을 방문했다
영어를 모르는 나는 벙어리
다 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말할줄 모르는 아기일줄이야
다행이랄가 손이 있어
손시늉 했더니
캐빈이 벙실 웃었다
나도 벙실하게 되였다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인생이다
그리고 이 말을 꼭
캐빈한테 말하고 싶었는데…
산 그리고 나와 바다
산 우에 산
산 넘어 또 산
나는
산을 보며 컸다
바다가에서 태여나
어물전 보며 자란
아버지의 옛말 속 바다는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다
나의 바다는 책 페이지에
까만 묵향으로만 앉아있었고
촌에 내려 온 방영대의
영사막에서만 남실거렸다
쏴~ 쏴~
말려가고 밀려오는 파도를
나는 대련의 로호탄(老虎摊)에서 처음 보았다
서른여섯살이 백사장에 감탄표로 박혀있었다
대록도(大鹿岛)라는 곳에 갔었다
바다 한가운데6평방킬로미터의 작은 섬
뭍에 도착하여서야 한시름 놓았다
살았구나 이제는…
훼밍웨이의 <로인과 바다>를
다시 읽은 것은 그 후의 일이였다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녀가 둥지를 튼
뉴질랜드의 항구도시 오클랜드에서였다
손녀의 바다는 할아버지 바다보다 더 컸다
그 바다를 남태평양이라 불렀다
길에서 길을 운전하다
여기는 좌측통행이다
사람도 승용차도
우측통행에 길들어진 나로서는
좌충우돌할 것만 같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습관이 되였다
세상 사는데
왜 좌가 있고 우가 있는지
앞만 보고 가는 인생
길에서 길을 운전한다
조개와 굴
1
조개가 굴을 보고 물었다
“넌 왜 그렇게 못 생겼니”
굴이 대답했다
“쳇, 남들이 다 나를 보고 석화라 하는데…”
2
굴이 조개를 보며 말했다
“난 참 행복해”
“뭐가 그리 행복한데?”
굴이 답했다
“저 뭍에 사는 사람들
집 없는 사람 너무 많대
그래서 대출이라는걸 해서 집 사는데
평생 그 대출을 무느라 돈의 노예로 산대
그런데 난 태여나서부터 집이 있잖아”
조개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렇네? 그럼 나도 행복한거네”
키위새
어둠 속에서도
빛을 믿는 새
푸른 숲 속에
작은 날개를 접고
달빛에 젖은 열매를
부리로 달콤히 들추며
한 세상을 즐겁게 산다
하늘을 날지 못해도
땅 속에서 울리는
나무뿌리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해와 달의 비밀을 풀어내고
땅우에서 피여나는
이야기로 땅을 두드리며
지구의 심장소리 듣는다
어둠이 깔릴 때마다
자기만의 별이 되여
바람의 손 잡고
풀잎 사이로 흩어지는
빛의 조각을 쪼아먹는 새
킁킁- 코를 들이밀며 쓰는
땅우의 점자(點字)로
하늘이 별자리를 지구로 옮겨놓고
그 긴 천체의 이야기를
한글자 한글자 읽어간다
손녀가 쓴 한줄의 시
한 수의 시였다
오클랜드 공항에 마중 나온 손녀가
멀리서 할아버지를 알아보고
발버둥질하며 환성을 터치다가
아주 갑작스레
경계란간 밑으로 마구 기여나왔다
연길에서의27일 만남
다시193일의 리별
한살 반 아이가 무슨 기억으로
그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을가
무릎걸음으로 쓴
손녀의 한줄의 시에
나는 울었다
뚝뚝-
공항터미널이 눈물을 떨구었다
♦ 키위새: 뉴질랜드의 국조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천적이 없고 날지 않아도 풍부한 먹이를 먹을 수 있어 날개는 자연스레 퇴화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