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부러워히는 정년퇴직을 했다. 그것도 삼십여년 한 우물만 파며 근무한 것이 행운이였다. 줄 잘선 덕분에 정부기관이란 간판을 자랑삼아 붙이고 다녔지만 일터는 일터였기에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늘 우선순위에서 미룰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옳은 길을 알면서도 비켜서거나 돌아오기도 했다. 조직에서 실적 향상과 동료와의 승진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몰렴치하거나 비겁한 일도 해야 했다. 주인이 아니였기 때문에 리모컨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 절정에서
썰매 타고 쏜살같이
시공터널 뚫을 때
언듯언듯 지나는 몽환의 세계
하늘서 별무리 땅으로 쏟아지듯
땅우에서 불보라 하늘로 사품치듯
혼혼돈돈 어디가 어디냐고
반고의 천지개벽 이랬을 거야
귀신 곡할 노릇이라
푸른 허공 속에 펼쳐진 활무대에
달빛 굳혀 수정궁 짓고
무지개 후려 다리놓는 불야의 천궁
1987년 12월 중순, 늦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교정을 스치는 오후였다. 나는 오늘도 긴장감 넘치는 수업을 마치고 홀로 일본어 교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이 학교와 한참 떨어진 거리에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타는 자전거도 탈줄 몰라서 늘 도시락을 들고 다녔다.
점심을 재빨리 먹어치우고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던중 한 교연실의 련순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유화 선생님! 손오공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방금 전 조선식당에서 식사하시는 걸 봤는데, 옷은 언제 갈아입으셨어요?” 련달아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당황스러워 손을 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방금까지 여기서 도시락을 먹었는데요. 옷도 갈아 입은 적이 없어요.” “아유 유화 선생님이 거짓말도 하시네요? 오늘 보니 참 이상해요.” 련순 선생님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한국어권 시단에서 김춘산이라는 이름은 특별한 울림을 지닌다. 시창작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령역을 구축해온 그의 시는 최근 발표된 련작시들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성취는 특히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시선에서 드러난다. 그의 시에는 상처와 흔적 그리고 이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 끊임없이 변주되는데 이는 개인적 서사와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현대인 보편의 정서를 교차하는 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생성한다.
오늘 갑자기 문우들의 대화창에 농예사란 말이 올라서 거기에 마음이 끌리게 되였다. 농사군의 아들로 태여나서 농사일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그저 지나쳐버린 적이 없었던 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농예사란 무엇이고 그 직책은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
농예사란 농업기술을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보급하며 작물재배와 관리 등 제 방면의 기술을 추진하도록 도움을 주는 직업일군이다. 참 영광스러운 직업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