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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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

  • 검수원이 압력용기 안으로 몸을 숙였다. 작업장을 가득 메우던 그라인더 소리와 망치 소리가 멎었다. 토치를 내려놓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그의 손끝으로 향했다. 손전등 불빛 하나가 어둑한 용기 안을 천천히 훑어내려갔다. 빛은 용접선을 따라 더디게 움직였다. 겉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비드는 고르게 이어졌고 표면도 매끄러웠다. 그러나 검수원이 보는 것은 겉만이 아니다. 압력용기는 내부까지 충분히 용입되여야 한다. 리면에 형성된 비드, 현장에서는 그것을 ‘백비드’라고 부른다. 겉은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지만 압력이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그 한점이다.
  • 어둠이 주위를 포근히 품은 초저녁이다. 자전거를 타고 현성에 들어서던 나는 어느 가로등 아래에 있는 돌이, 철이, 학이를 발견하였다. 이 세 아이는 내가 가르치는 현 조선족소학교 5학년 1반 학생들이였다. –너희들 무슨 수박을 이렇게나?… 애들 앞에는 머리통만한 수박이 여러개 있었고 그중에는 수박을 마구 깨서 속을 아무렇게나 파먹다 버린 수박 쪼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호호 선생님도 마침 컬컬하던 참이였어… 나한테도 좀 주렴아.
  • 수많은 푸른 혀들이 빛을 핥아 허공에 연두빛 웃음을 길어올린다 움켜쥐였던 그 무성한 웃음들 이제 어느 바람의 갈피 속으로 흩어졌는가 풍상을 견디던 수피(树皮)는 마른 비늘이 된 제 몸을 뼈처럼 하얗게 돋치리라 멀지 않아 수평의 고요로 돌아눕는 날
  • 개구쟁이 시절 추억도 많다. 봄이면 구렁이 기여간 듯한 우불구불한 뒤동산 언덕길을 따라 진달래꽃 한묶음 그러안고 뛰여내리다가 조약돌에 걸려 넘어져 코방아를 찧으면 흙투성이가 된 온몸을 털어주시며 “우리 룡이 용쿠나, ‘령’을 넘었구나” 하며 칭찬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의 바램길, 여름이면 버들치 잡아 생선국 끓여먹으려 줄풀에 벌겋게 종알이 긁히면서 희미하게 그어진 풀속길을 헤매다가 제자리에 원을 그었던 수풀길, 가을이면 아버지를 따라 머루, 다래 따러 다니던 뒤동산 오솔길, 겨울이면 바지엉치가 황소눈이 되도록 얼음지치기를 하던 동구밖 내리막길… 그것도 한번 두번이 아니라 수십번, 수천만번 가로세로 종횡무진하듯 오갔으니 때론 아름다운 삿갓을 엮은 길은 아니였을가고 우습게도 생각을 굴려보았었다.
  • ​오늘 나는 한영남의 시 ‘무깍지 동네’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연길시 철남에 위치한 30, 36, 42번 버스 종점으로 가기 위해 먼저 모아산행 21번 버스에 올라 명신역에서 내렸다. 모아산 기슭마다 앵두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터질 듯 탐스럽게 익어가고 살구와 돌배들은 가지가 휘여질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한영남의 시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가. 31년이 지난 지금, 그 무깍지 동네는 아직 남아 있을가. 도착해보니 그곳은 철남 명신촌 동쪽 민속촌을 지나 공룡박물관을 건너 철남시장으로 가기 전 주기상국 위쪽 골목이였다. 그때의 일반 농촌 주택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오래 전에 아파트 단지가 숲처럼 우뚝 솟아 무깍지 동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 나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쓰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작문시간이 제일 반가왔다. 때론 선생님이 나의 작문을 읽어주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였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가난의 때를 벗지 못한 나는 책 한권 살 여유도 없어 가끔 친구의 책을 빌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림해설원’, ‘홍루몽’, ‘대하는 흐른다’ 등등 소설책을 많이 보았다. 사회에 나와서는 째지게 가난한 삶에 365일 일하다보니 책을 보며 한가이 보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시집가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 책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삶에 지쳐서 마음 한구석에 꿈을 묻어두었다. 그러다 한국 생활을 마치고 병들어 집에 돌아오니 한가하고 할일이 없었으며 생활이 무의미했다. 이렇게 70이 넘어서야 묻어두었던 글쓰기가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 ​누구나 한번쯤은 포즈 잡고 사진을 찍었겠지 그래 결혼을 한 사내라면 물찬 제비같은 그녀와 멋지게 포즈 잡고 활짝 웃었겠지 하지만 수양버들같은 그 허리가 언제부터 펑퍼짐한 오지독으로 되였을까 오늘 아침 문뜩 사진첩을 보니 첫날의 다짐이 떠올라 눈꿉이 축축해진다 산다는 게 이런 걸까 목석도 때론 눈물 흘릴 수 있을까 한 남자에게만 영원한 소녀이기고 싶다던 안해
  • ​녹슨 자물쇠 잠 자고 처마밑 거미줄 집 지키네 찬 바람 새벽안개 몰고와 풀잎에 은방울 맺치는데 매미 울음소리 끊어지고 락엽만 문앞에 쌓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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