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자식 셋
바람 세찬 언덕받이에 남겨두고
하늘길 가신 우리 엄마
낮이면 구름 뒤에 숨어
흰 수건으로 눈물 훔치다가
새벽녘이면 서산 마루에
홀로 앉아 계시네
태줄 끊기 바쁘게 떼여두고 나온
내 피덩어리 막둥이는 보채지 않느냐
영양실조로 까칠했던
두살짜리 살붙이는 살이 좀 올랐느냐
여섯살이 되였어도 철이 없어
우리 엄마 내려놔 달라고
상여를 뒤따르며 발버둥질 치던
우리 큰 딸년은
동생들 잘 보살피고 있느냐
별들이 졸고 있는 새벽녘이면
초가삼간 귀틀집 내려다 보며
서성이고 계시는 우리 엄마
차마 발길 떨어지질 않아
산등성이 내려서지 못하는 우리 엄마
그대로 멈춰버린 스무아홉살
69세 딸년의 가슴 한복판에
떠 있는 우리 엄마 달!
고향길
산이 높고 물이 깊어
닿지 못했던 길
산도 없고 물도 없는데
사람은 떠나고 없네
생리별로 피멍 든 가슴에
박힌 대못 두개를
뽑아드리지 못한채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깊은 산 속에 묻었네
가족사진 한장 찍으시면서도
머리 번쩍 드시고
남쪽나라 고향쪽 바라보신다던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엉키고 서린 한이
삼키고 삼키신 피눈물이
흰 꽃을 피워올리는 걸가
할아버지 할머니 덮으신
두툼한 흙이불 우에는 해마다
흰나비 같은 이름 모를 꽃들이
무더기로 피고 지네
얼굴
얼굴은 부모님이 남겨주신
최고의 선물
바꿀 수도 물릴 수도 없는 것
하지만 얼굴의‘이모티콘’만은
언제라도 조절이 가능한 것
그늘이 지면 빛을 더하고
찌그러들면 펴면 되는 것을
굳이 작은 것을 크게
큰 것을 작게
붙이고 깎아내지 않아도
자연산은 이름 그대로도
보석같은 매력덩어리인 것을
파꽃의 눈물
파를 썰다가
얄포름한 면사포에 꼭 싸인
파의 부푼 가슴을
썩뚝 잘라놓았다
순간 열빙어 알처럼 꽉 박힌
파가 잉태한 생명체가
내 칼끝에서 호흡을 멈추었다
꽃을 피우지 못했기에
벌 나비 한번 불러보지 못하고
칼도마 우에서 스러진 생명
칼도마 우에는
파의 꽃망울이 쏟은 눈물이
찢겨진 유언장처럼 남았다
그 눈물이
한가닥 한가닥 가시가 되여
날아와 내 가슴팍에 꽂혔다
며느리 밥풀꽃
매운 고추보다 더 지독한
시어머니 등살에
눈도 못 감고
바람 드센 산비탈 꽃으로 피여난
이 불쌍한 것아
미처 넘기지 못하고
입술에 달라붙은
흰 밥알 두개가 안스럽구나
이제는
그 아픈 밥알 두개
떼여버리고
너도 한그릇 넘쳐나는
이팝꽃으로 다시 피려무나
보는 이들 가슴에도
모락모락
이팝꽃 흐드러지게 피여나게
말
길 가는 걸인이라도 붙잡고
고무줄처럼 늘어져서
말을 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냥 귀를 열고
가슴을 열고
내가 초점없이 하는 말
묵묵히 들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런 무던한 사람이
억수로 그리워지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데 뒤돌아 보면
그런 날은 언제나
입을 다물면 좋은 날이였다
물레방아
쿵덕-쿵덕- 물레방아 소리
동년의 언덕길에서 들려오는
절주있는 저 소리
밤낮 쉼없이 돌고 돌면서
강냉이도 빻고 조도 찧었었지
흙 속에 묻혔던 우먹감자도
그 속에서 몸 풀고 나오면
새하얀 분가루 되였고
그 가루는 매끄러운 국수가 되여
조밥에 목 메던 시골사람들
입맛을 살려 주었었지
휙휙, 철석철석~ 물레방아는
이역만리 살길 찾아 고향 떠나 온
나그네들 서러움을
커다란 바퀴에 칭칭 감았다 풀고
풀었다 다시 감으면서
해를 보며 돌고
달을 보며 돌았었지
아낙네들 속으로 삼키는 눈물도
말없이 훔쳐주고
덕지덕지 말라붙은 가난의 때자국도
묵묵히 씻어내려 주던 물레방아
지금은 우리 조상님들과 함께
깊이깊이 잠들어버린
물레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