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조선족 최고의 명절로 알려진 '청도조선족민속축제'가 오는 10월에 청도에서 펼쳐지게 된다. 청도조선족민속축제는 2007년부터 시작하여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의 주최로 꾸준히 펼쳐져오던 민속축제 행사이다. 청도조선족들 최고의 축제라는 미명에 걸맞게 '민속절' 행사장은 물론 거리마다 울긋불긋 민족복장 차림을 한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으로 차넘쳤다. 그런데 여러가지 원인으로 7년째 개최되지 못하다가 올해 다시 개최되는 만큼 청도조선족사회에서 기대감이 크다.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제12기회장단(회장 박성진)은 민속축제를 민족 대단합과 공동발전의 플랫폼으로 만든다는 당찬 꿈을 안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해 ‘존속관계’가 파렬됐던 성양기업가협회를 성공적으로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성양지회로 정식 복원시켰고 재청도조선족단체장들과 한자리에 모여 소통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여름방학 기회를 리용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산동성 곡부(曲阜)로 문화 려행을 다녀왔다. 이번 려행에서는 주로 공자박물관, 공묘(孔庙),니산(尼山)대학당 방문을 통해 유교문화와 공자의 유교사상에 대해 많은 것을 리해하게 되였다. 3박 4일의 려행은 조금 피곤했으나 기분은 줄곧 유쾌했다.
첫날(7월8일)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했다. 아침 5시에 예약한 택시가 제시간에 오지 않았고 또 내가 전화로 확인하지 않아서... 하마터면 차를 타지 못할 뻔했다. 또 역 입구에서 나는 내 가방과 비슷한 다른 려행객의 가방을 가져갈 뻔했다. 추후의 려행에서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수양버들
청순한 시골 색시인가
머리 풀고 멱 감네
돌돌 흐르는 개울물보다
더 맑은 눈동자에 어린 사연
님이 쓰다듬고 간
함치르르한 머리채에
행여 티 먼지 묻을 세라
씻고 헹구고
헹구고 씻으며
오늘도 휘휘
눈물 씻어 내리네
떠난 님 오시려나
그리움 씻어 내리네
과수원 할머니
양지바른 언덕 아래
오두막집 짓고
과수원에 뿌리 내리셨던
작은 할머니
흰 저고리 단아히 입고
배꽃같던 얼굴에 환한 미소
고개 넘어 할머니 댁에 가면
뜨거운 밥그릇에
고봉으로 떠 주시던 기장밥
사과배처럼 이쁘게 크라
덕담 하시며 듬뿍 주시던 과일
저기 옹송그린 배나무 한그루
할머니의 화신인가
나무 아래 흰 고무신 자국마다
추억이 흥건히 발목 잡고
부엉새 울던 밤
석유로 불 밝힌 등잔불 아래
들려 주시던 옛 이야기 두런두런
과일 나무에 걸려있네
산도
들도
강도
바다도
꽉 껴 안아주는
묵언의 가슴
엄마의 시
일자무식이셨던 엄마는
평생동안
시 다섯수를 쓰셨다
꽤 읽을만한 다섯수의 서정시
박웅 박남
박순 박옥 박봉
패러디하였지만 조금도
어색치 않은 다섯수의 서정시
푸성귀 강냉이 떡도
배불리 먹을 수 없던 그 세월
끼니 장만하느라
오르내린 눈물의 아홉고개
한숨에 시린 허리
백지장 되여
구슬땀에 필촉 적셔가며
적어 놓은 다섯수의 서정시
멍에를 짊어진 소의 힘이 례사롭지 않다. 수굿이 숙인 머리와 떡하니 땅을 밟고 걸음 떼는 팽팽한 다리의 근육질, 터질듯 부릅 뜬 소의 눈과 앙다문 입, 풍상고초 다 겪은 듯 주름진 등줄기에서도 생명의 힘과 기운이 펄펄 살아있다... 바로 주급 무형문화유산 조선족목조각 기예 대표적 전승인인 리만복이 창작한 수레를 끄는 소의 목조각이다. 비록 지금은 멀어져간 풍경이지만 그 시절 짙은 향수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릴수있는 소중한 이미지이다. 조선족 목조각은 중국조선족 민간예술에서의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인바 그 독특한 예술적 매력과 문화적 가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급 무형문화유산 조선족 목조각 기예의 대표적 전승인인 리만복(62세)은 조선족 목조각의 제3대 전승인이다. 그는 선조의 기술을 계승하고 혁신하여 목조각 예술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선족의 생활과 문화를 생동감 있게 담아내고 있어 주목받는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가지로 마음 괴롭히는 일을 당할 때가 많은데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억울함을 당한 일이 있었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 촌마을 소학교에서 10년간 교육사업을 하다가 글을 좀 쓴다는 영예로 시가지 학교에 조동되여 왔다. 시가지에 오니 농촌보다 각종 교육시설들도 구전하지만 컴퓨터를 배울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
나의 안해는 그때도 농촌에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었다. 장장 20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보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이 겨우 4살이니 수고가 많았다.
2000년도에 정책에 의하여 나의 안해도 같은 학교에 전근하게 되였다. 정말 경사였다. 이젠 집 근처에서 출근하게 되였으니 둘이 다 농촌에서 서로 동서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기보다 정말 신선같은 출근이였다. 불과 5분도 안되여 학교에 당도하니 아이도 잘 돌볼 수 있고 출근도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고 또 시가지의 학교니 정말 꿩먹고 알먹고 둥지 털어서 불 때는 겪이였다. 정말 행복이 넝쿨채로 떨어진 격이라 너무 행복했다.
폭우가 쏟아치는 날엔
우산이 되여주고
설한풍 휘날리는 날엔
따뜻한 방풍막 되여줍니다
나의 뒤심 되여준 아버님
내 삶이 고달플 때
신뢰와 힘이 되여주고
내 방황할 때 새록새록
등 밀어주고 충전해줍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도
용기내여 개척하게 이끈
그이는 나의 귀감이며
둘도 없는 버팀목입니다
병마와 온역에 고생할 때
엄청난 시련이 닥쳐와도
주저없이 사랑의 손길로
따뜻히 치유해주었습니다
지금 한국에 가 있는 둘째 딸의 아들 김유진은 대련시조선족학교에 다닌다. 태여나서부터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자라다보니 명절이나 방학 때면 외할머니가 맛있는 것을 사준다며 우리 집에 오기를 좋아한다. 애가 오면 나도 유진이를 데리고 광장이나 공원에 가서 축구도 하고 팽이치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유진이는 금년 청명절 련휴에 또 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오전 10시쯤 되여 아이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을 침대에 벗어놓고 나더러 공원으로 놀러가자고 청을 들었다. 점심에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누자는 약속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놀러온 외손자의 부탁을 밀어버릴 수 없어 나는 유진이를 데리고 인민광장에 가서 연을 띄우기를 하기로 했다.
상점에 가서 애가 마음에 들어하는 몸체가 크고 꼬리가 길고 색채가 고운 연을 사가지고 광장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한창 성수나서 연을 하늘로 올려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행장을 풀고 연띄우기를 시작했다. 줄을 연에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유진이더러 연을 머리우로 쳐들고 재빨리 달리면서 하늘로 올려보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