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홉살 되던 해에 나의 부모님은 리혼을 했었다. 어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어린 나의 머리우에 무언가를 얹어주었다. 유치원 시절 악몽 속에 등장했던 거친 팔들이 슬그머니 나타나서 막무가내로 어린 나의 머리우에 생존에 필요한 안테나들이라면서 무언가를 얼키설키 설치해주고 가버린 것같은 경험이였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나를 잠들게 한 후 조용히 내 곁을 떠나려고 하셨는데 어린 나는 이 안테나들로 인해 어머니가 나를 떠나려고 한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내가 모르게 꾸미는 일을 눈치 챈 것에 대해 그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어쩌다 낚아챈 가장 훌륭한 사냥감이나 되듯이 속으로 자부하였다. 나는 며칠 전 동네 형이 참새를 나에게 주면서 날아가지 못하게 잡으면서도 너무 꼭 잡지 말라고 배워주었던 경험을 되살려보았다. 비록 참새는 놓쳤지만 어머니의 손은 놓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어머니는 내가 잠든 줄 알고 내 손에서 살며시 자기 손을 빼내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때까지 잠들지 않았으므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조용히 나를 떠나려고 하셨던 자신의 계획에 문제가 생기자 어머니는 말없이 울음을 삼키는 것이었다. 베개에 스며드는 어머니의 눈물에서 어린 나는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울지 않는 초롱 속의 새가 짓궂은 아이의 장난에 자극을 받아 어쩌다가 토해내는 울음같은 그런 뜨거움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나의 작은 손은 자꾸 땀이 났으므로 오른손과 왼손은 열심히 교대해 가면서 야간 경비를 서야 했다. 다른 손이 교대해줄 때 잠깐 쉴 틈을 얻은 손은 열심히 이불에 땀을 닦아냈다.
“민수야, 혹시 래일 아버지가 너에게 누구와 함께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너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고 대답해야 한다. 네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 어머니가 잘 알지. 그렇지만 어머니가 너를 키울 수 있으려면 먼저 돈을 모아야 하거든. 어느 정도 돈을 벌었을 때 너를 데려갈 테니 그 때까지 너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어야 한단다. 이 어머니를 기다려줄 수 있겠니?”
화초를 사랑하는 사람이 길가의 작은 꽃에게 조용히 물을 주고 자취를 감추려는 그런 속삭임이였다. 나를 떠나려는 어머니의 이 속삭임에 응답한다는 것은 나를 나오기 힘든 미궁 속에 가두고 출구를 찾아보라고 하는 매정한 속삭임이었다. 나에게서 어른스러움을 요구하는 그런 속삭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만큼은 어른답게 말하고 싶은 쓸데없는 자존감에 이끌려 조용하지만 또렷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울며 보채지 않는 나의 이 어른스러운 대답은 어머니의 마음을 쓰리게 했으리라. 나는 어머니의 손을 조용히 놓아드림으로 어머니에 대한 나의 신뢰를 보여주었다. 어머니 역시 조용히 잠을 청하셨는데 이는 마치 리모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TV를 끄는 그런 침착함 같은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너무 일찍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 한마디 할 수 있는 꼬마 철학자가 되여 있었다. 그 누가 나에게 그 한 마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어린 나는 아마“약속”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나의 의지는 바보스러울 만큼 융통성이 없는 것이여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 시절로부터30년이 지났다. 며칠 전 한국에 계신 어머니는 위종양 수술 때문에 친족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중국 연길에 살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을 내서 한국에 와 며칠 있어줄 수 없냐고 물어보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뭔가 주저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즉시 일손을 내려놓고 안해와 딸들과 작별한 후 연길 공항으로 출발했다. 비록 중요한 일을 벌여놓은 게 없었지만, 설마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꼭 한국에 다녀오리라는 나의 의지는 세상을 갈아엎을 쟁기만큼이나 굳센 것이였다. 비행기를 타는 내내 나의 귀전에는 주저하시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그렇게 맴돌다가 한줄기 눈물이 되여 흘러내렸다.
‘아, 어머니, 어찌하여 주저하셨습니까! 저와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어린 저에게 달려오셔야 했던 그 씩씩함으로 왜 저에게 요구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 어머니와의 추억의 흔적이 남아있는 내 고향 연길은 비행기 창으로 보이는 저 장백산에서 서남쪽으로300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난30년 동안 항상 내 유년의 기억 속에 가까이 계셨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 한 인생도 약속을 지킨 인생처럼 소중하다는 말 만큼이나 아름다운 복숭아꽃을 어머니가 입원하시기 전에 계셨던 세집 뒤산인 춘덕산에서 한 아름 따다가 어머니 병실에 가득히 꽂아놓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