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권 시단에서 김춘산이라는 이름은 특별한 울림을 지닌다. 시창작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령역을 구축해온 그의 시는 최근 발표된 련작시들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경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성취는 특히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시선에서 드러난다. 그의 시에는 상처와 흔적 그리고 이를 통한 치유의 과정이 끊임없이 변주되는데 이는 개인적 서사와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현대인 보편의 정서를 교차하는 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생성한다.
김춘산 시의 독특한 언어적 특징은 특정 단어의 집요한 반복을 통한 리듬 창출에 있다. 원문에서 ‘꽃’, ‘눈’, ‘돌’, ‘못’과 같은 핵심 어휘가 각 시행마다, 때로는 련속적으로 반복되여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강조를 넘어 그 단어가 지니는 본질적 의미를 파고들어 관념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시적 전략이다. 례를 들어 <1>에서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다양한 대상과 결합하여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꽃’이 단순한 식물학적 대상이 아니라 생명력 그 자체의 상징으로 격상된다. 이러한 반복은 마치 주문을 외우거나 명상에 잠기는 것과 같은 언어의 주술적 효과를 발휘하며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단어의 표면을 뚫고 그 내부에 숨겨진 존재의 진실을 직관하도록 이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공간 특히 ‘마안산(马鞍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처와 생명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공간이다. <1>에서 마안산은 ‘칙칙한 참나무’와 ‘상처마다’ 꽃이 피여나는 곳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상처’는 자연의 것일 수도 있고 시적 화자의 신체적, 정신적 흔적일 수도 있다. “상처투성인 내 무릎과 허리와/ 피멍이 든 가슴에도/ 꽃이 피겠지요”라는 선언은 고통의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생명의 토양이 될 수 있음을 은유한다. 이는 고난의 력사를 가진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련결지어 읽힐 수 있다. 소수자로서의 삶의 흔적이 고통스러운 상처이자 동시에 독특한 정체성을 꽃 피우는 장소가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6> ‘장도리’에서는 상처의 은유가 더욱 구체화된다. 시인은 “살면서 나는/ 누구의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이였을까/ 아니면 못을 뽑아주는 사람이였을까”라고 자문한다. ‘못’은 타인에게 남긴 상처, 혹은 자신이 받은 상처의 상징이다. 시인은 무던한 흙벽이나 만만한 나무판자에 못을 박았던 과거를 반성하며, “망치가 아니라 노루발로 살아야겠다”고 결의한다. ‘노루발’은 부드럽게 못을 뽑는 도구 즉 치유의 상징이다. 이 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상처의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려는 륜리적 의지를 보여준다. “녹슬기 전에 하나하나 뽑아줘야겠다”는 마지막 구절은 상처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깊어질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치유의 행위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김춘산의 시에서 자연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우에 새로운 질서를 건설하는 랭정하면서도 위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3> ‘두그루 버드나무’에서는 강바람에 허리가 휘도록 마주 선 두 나무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땅속의 뿌리는 언제나 손 잡고 있는 줄 알겠다”는 표현은 가시적인 것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련결 즉 공동체적 뉴대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8> ‘넘어진 나무는 다른 나무가 받쳐준다’에서는 비바람에 넘어진 나무를 다양한 막대기들이 받쳐 세워주는 이미지를 통해 상호 부조와 련대의 중요성을 설교하지 않고 조용히 보여준다. “내가 넘어질 때마다 손을 잡아 주고/ 잔등을 내여 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는 화자의 성찰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보편적 인간 조건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인식 또한 김춘산 시학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7> ‘락엽이 된다는 것은’에서 락엽은 “물 오르는 것, 한물 가는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락엽이 된다는 것은/ 다시 떠나는 려행이다”라는 결론은 소멸이 아닌 변형과 순환을 의미한다. 이는 <4> ‘탕탕왕하에 돌을 던졌다’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남아 있는 ‘돌’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던져진 돌은 시간이 지나도 강바닥에 남아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과 대비된다. 시인은 과거의 행위(돌 던지기)가 현재의 존재(강돌)로 남아 있고 그것이 타인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생각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기억의 지속성을 탐구하는 시적 시선이다.
<9> ‘멀리 있는 것들에’에서는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정점에 달한다. 시인의 슬픈 눈과 고요한 귀는 먼 곳, 먼 시간을 향해 열린다. “엄마의 앞치마같은 청보리밭 지나/ 아빠의 술병같이 싱싱한 사과밭 지나”라는 향수가 넘치는 대목은 개인사의 기억을 넘어 민족적 리산(离散)의 경험을 암시한다. “물결을 거스르는 연어의/ 몸부림처럼”이라는 비유는 고향을 향한 또는 근원을 향한 끊임없는 귀향 본능을 드러낸다. “멀리에 있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화자의 자문은 지리적, 시간적 거리가 오히려 정신적 근접성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말한다. 소수자로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험 자체가 정체성의 핵심에 ‘가까이’ 박혀 있는 패리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김춘산의 시는 단순한아름다움의 추구를 넘어 상처 입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고통의 기억과 공존하며 더 넓은 생명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그의 시적 화자는 마안산의 참나무처럼 고통의 흔적을 간직하지만 그럼에도 꽃을 피우는 존재이다. 그는 망치가 아닌 노루발이 되고자 하고 넘어진 나무를 받쳐세우는 련대를 꿈꾼다. 그의 시에서 우리 글은 소수민족의 언어로서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를 내부로부터 파고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제치는 풍요로운 매체이다. 단어의 반복적 사용으로 창출되는 주문 같은 리듬, 상처와 생명의 공간적 변증법, 그리고 시간과 기억에 대한 치열한 성찰은 김춘산 시를 흔적의 미학이자 생명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는 치유의 시학으로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