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눈이 먼길 오는 동안
마안산(马鞍山)에 꽃이 피였습니다
너럭바위 앞에 도열한 나무에
꽃이 피였습니다
촐싹대던 들풀이
꽃이란 이름을 버린 삼동의 날
빨간꽃 노란꽃 피였습니다
몰골이 칙칙한 참나무와
미목이 수려한 자작나무
새들이 부리로 쪼은
자리마다 상처마다
꽃이 피였습니다
무수한 세월에
상처투성인 내 무릎과 허리와
피멍이 든 가슴에도
꽃이 피겠지요
길어진 밤이 지나도록
아직
한송이도 피우지 못한 것은
시간이라는 겨울을
더 참고 견뎌야 하는 리유 때문이겠지요
가지가 추운
마안산 참나무 자작나무에
겨우살이꽃이 피였습니다
선물
너에게로 가는 길에
꽃집에 들렸다
너만큼 고운 꽃이 없었다
손거울 하나 샀다
거울에 비쳐진 너의 얼굴이
천송이 만송이 꽃보다 이뻤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거울 속 너를
너에게 선물했다
두그루 버드나무
한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둔치에 마주 서있는 것이 이미 백년 언약을 했음이 틀림없다
강바람이 허리가 휘도록 불어올 때마다 업어주고 또 업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한쌍의 련인이다
야릿야릿한 가지가 서로 칭칭 감아주고 있으니 땅 속의 뿌리는 언녕 손 잡고 있는 줄 알겠다
둘 사이에 돋아난 연초록 새싹은 저들이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탕왕하에 돌을 던졌다
탕왕하에 돌을 던졌다
논개구리 울음이 요란한 날
창가의 달빛이 지궂은 밤
허구한 날 돌을 던졌다
세월이 흘러
돌들이 보고 싶어졌다
탕왕하는 변함없이 흐르고
강돌은 여전히 물 속에 구을고 있었다
너에게 던진 돌들도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탕왕하의 저 참돌이나 몽돌처럼
너의 가슴 속에서
더 이뻐지고 단단해졌는지 모르겠다
제일 고운 돌 하나 주어
탕왕하에 던졌다
퐁 하는 소리와
점점 퍼지는 파문이 여전하다
소설(小雪)
추운 산
소설 날
중앙대가 단골집
창밖에 눈이 내렸다
흩날리다가
유리창에 앉아 피는
눈꽃이 아까워
친구를 불렀다
고운 눈꽃을 보면서
어느날 저 눈꽃들이 녹아서
한줄기 물로 흐를 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한잔 했다
창턱에 쌓이는 흰눈처럼
어깨를 기대고
또 한잔 서로를 마셨다
장도리
살면서 나는
누구의 가슴에 못을 박는 사람이였을까
아니면 못을 뽑아주는 사람이였을까
무던한 흙벽이라고
만만한 나무판자라고
못을 탕탕 박았었다
벽이 부스러지고
가끔 판자가 짜개지는 것을 보고
참 많이 아파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면서
나의 가슴이나 옷깃을 스쳐
너에게로 간 수많은 것들
겨울날 칼바람같이
너에게 박힌 그 대못들을 뽑아주고 싶다
나는 이제
망치가 아니라 노루발로 살아야겠다
녹쓸기 전에 하나하나 뽑아줘야겠다
락엽이 된다는 것은
작별인사같은 것은 사치이다
티켓을 가을까지 끊었다는 것을 알아챈 바람은
기다리기가 짜증난 듯 작은 회오리를 만들며 달려왔다
나무들이 깔맞춤하고 손벽치는 것도 잠간
업간체조를 마친 소학생들처럼 산산이 흩어진다
파랑은 영원하다고 말했지만 믿을 수 없다
빨강과 노랑과 주황도 그렇다
모든 것에 수긍하는 계절이다
깊숙히, 살아온 시간만큼 뿌리를 밖은 줄기는 드팀없고
높이, 끄트마리까지 살아온 가지도 늘 아칠하다
물 오르는 것, 한물 가는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락엽
락엽이 된다는 것은
다시 떠나는 려행이다
넘어진 나무는 다른 나무가 받쳐준다
비바람에 넘어진 작은 비슬나무를
굵기와 길이가 각각인 막대기들이
밑둥에 모여서 받쳐 세워주고 있다
마디가 미출한 대나무는
먼 남쪽 나라에서 달려온 듯
거죽이 터덜터덜한 소나무는
어느 천년송이 선듯 잘라준 가지인 듯
마른 이깔무는 몸은 죽었어도
넋으로 밭쳐주고 있는 듯 하다
다시 일어선 비슬나무 앞에 서서
내가 넘어질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잔등을 내여준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넘어진 누구가에게 달려가
받침대가 되여준 적 있었던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멀리 있는 것들에
나의 슬픈 눈은 지금
멀리 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
나의 고요한 귀는 지금
멀리 있는 것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엄마의 앞치마같은 청보리밭 지나
아빠의 술병같이 싱그런 사과밭 지나
그리고
파란 살빛 하늘을 날아
박달나무 터지는 긴 눈발 넘어
운석처럼 지금 나는
먼 곳에, 먼 시간에 와 있다
물결을 거스르는 연어의
몸부림처럼
바람에 실린 락엽의
거침없는 활주처럼
기억의 귀환은
언제나 성스러운 것여라
하늘 향해 우는 승냥이의
고독한 울음소리가
살얼음꽃이 피는 들녘에 서서
속을 비우는 갈대의 노래보다
더 아름답워질 때
멀리에 있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닐가
내곁에 있는 것이 아닐가
장알처럼 내 가슴에
박혀있는 것이 아닐가
김춘산 프로필
필명: 추운산
1984년 연변대학교 졸업 후 흑룡강방송국 입사. 편집, 기자, 문예부장 력임.
1983년 시<해빛끝의 비이슬(외1수)>로 문단 데뷔.
시 <무제> 제1회 흑룡강성조선족시인절 대상, 가사 <청춘송가> 흑룡강성문예창작상, 시 <망향시초> 송화강문학상, 시 <터널> 연변문학 문학상 수상.
현재 자유기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