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일담'이라는 자리-조선족 이주 서사의 현재적 진술
'후일담' 문학은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시점에서 회상하고 성찰하는 서사형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단순한 기억의 라렬을 넘어 후일담은 개인의 삶과 사건을 사회적·문화적 맥락속에서 재구성하며 과거경험이 오늘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탐구한다. 강재희의 단편소설 <다시 안산에서>(흑룡강신문, 2025년 9월 16일 발표)는 바로 이러한 후일담적 서사에속하며 한국에 이주하여 고된 로동을감내했던 1세대 조선족 이주로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안산역 지하도에서 시작된 한 집단의 생존 기록이지만 그 서술의 눈은 단호하게 '지금, 여기'에 고정되여 있다. 화자인 '나'와 동화는 치렬했던 과거의 한가운데로 독자를 인도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목소리 자체는 수십년의 시간을 건너 그 고통을 내면화하고 소화한 '현재의 목소리'이다. 특히 조선족 이주로동자 1세대에게 이 '후일담'의 형식은 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초기 이주 력사는 한국 사회의 주류 서사 속에서 종종 '침묵'되거나 '통계'로 환원되여 왔다. '후일담'은 바로 이 침묵의 지점에서 자신들의 력사를 자신의 언어와 시선으로 다시 쓰기 위한, 정체성 회복의 적극적 행위이다. '우리들의'라는 소유격은 이 이야기가 더 이상 숨겨지거나 위탁되여서는 안 될 집단적 기억의 공유 재산임을 선언한다. 강재희의 소설에 '우리들의 후일담'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부여하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2. 이식된 로동 그리고 신체에 각인된 력사
강재희의 <다시 안산에서>는 안산역 지하도와 같은 구체적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지만 그 이야기의 뿌리는 조선반도와 중국 동북 삼성을 가로지른다. '나'와 동화 그리고 그들의 구원자이자 동반자였던 진수는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경제적 꿈을 안고 밀려든 이주 1세대 조선족의 전형적 초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위해 필요로 했으나 현지인들은 기피한 '3D' 산업–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일터–으로 내몰렸다. 소설 속 직업인 프레스 공장 로동과 아파트 현장 '노가다'는 당시 조선족 남성 이주자들의 가장 대표적 취업 경로였다. 그들의 신체는 단순한 로동 도구가 아니라 력사가 각인되는 표면이 된다. 동화의 잘린 손가락과 '나'의 부러진 다리는 우연의 사고가 아니다. 이는 불법체류 또는 비정규적 지위에 머물렀던 수많은 초기 이주로동자들이 법적 보호와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채 '교체 가능한 육체'로 취급받았던 구조적 폭력의 직접적 결과물이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일에 달라붙어' 고리대금을 갚고 고향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말그대로 자신의 신체를 한국의 발전과 자본 축적의 과정에 '이식'시켰다. 그들의 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 토대를 쌓았으며 이는 소설 속 '고참 로숙자'가 지하도 바람막이 쪽을 선점한 것처럼 그들이 차지한 자리가 결코 안전하거나 편안하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3. 련대의 혈맥-생존을 가능하게 한 보살핌의 륜리
이 소설이 고난의 기록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주는 리유는 절박한 생존 환경 속에서 꽃핀 '련대의 륜리'와 '보살핌의 혈맥'을 섬세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지하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동창 진수의 등장은 단순한 플롯의 장치가 아니다. 그는 이미 한국 생활에 적응한 선배 이주자로서 '반지하 세방'을 잡아주고 보증금을 대주며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완전한 생존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는 개인적 우정을 넘어 언어와 제도에 익숙지 않은 새로운 이주자들을 돕는 조선족 사회 내 비공식적이지만 강력한 지원 네트워크의 존재를 증명한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보살핌의 순환이 단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수 자신이 안해의 배신과 파산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최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와 동화는 교대하며 그 곁을 지키고 그를 '일떠세우려고 모질음을 썼다'. 이 교차적 구원은 경제적 기여를 넘어 정서적 뉴대와 공동체적 책임이 이들을 지탱하는 핵심 근육이였음을 보여준다. 진수가 이후 지하도에서 울고 있는 춘자와 옥이를 거둬들이는 행위는 이러한 륜리의 련속선상에 있다. 비록 그녀들은 각각 다른 사정으로 다시 떠나지만 이 일시적인 보금자리는 절대적 고독과 방치 사이에서 살려준 버팀목이였다. 이들의 관계망은 혈연이나 지연이 아닌, '같은 처지'에 대한 공감과 '같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실천적 책임우에서 구축된 '선택적 혈맥(血脈)'이다. '단이식당'('단이엄마'식당으로도 불린다. 이 식당 이름이 주는 계시 역시 미래지향적이다. '단이엄마'가 경영하는 이 식당이 '단이식당'이라고 호명된 리유는 다음 세대인 '단이'를 위한 식당이기 때문이다.)의 식당이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이 넓은 혈맥의 거점이 된 리유다.
4. 희생의 변주-달관과 련속성의 시선
'나'와 동화가 수십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안산을 찾았을 때, 그들의 시선과 태도는 단순한 향수나 씁쓸한 분노를 초월한다. 그것은 고통의 세월 자체를 삶의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달관'에 가깝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잠을 이룰 수가 있어야지…”라는 동화의 첫마디는 과거를 애절한 그리움으로도, 치욕의 상처로도 호명하지 않는다. 지팡이를 짚고 짧아진 손가락을 드러내며 서로를 맞이하는 태도에서 그들은 신체적 희생을 비극의 증표가 아니라 살아남은 생존자의 일부로, 당시를 버텨낸 아이러니한 훈장으로까지 승화시켜 받아들인다. 이 달관은 일종의 력사적 화해이자 자신의 과거를 주체적으로 소화해 낸 증표이다.
이러한 개인의 달관은 1세대의 희생이 력사의 사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리해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들의 고통은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그들이 육체로 부딪히며 개척한 취업 경로, 그들이 고군분투하며 구축한 생존 네트워크(주택, 일자리 소개, 정서적 지지)는 이후 이어지는 2세대, 3세대 이주자들에게 훨씬 덜 고통스러운 통로를 열어주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제도적 통로가 마련되고, 안산, 대림동 등 조선족 커뮤니티가 정착하면서 후대 이주자들은 비교적 안정된 기반우에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강렬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단이식당'에서 '춘자'와 '옥이'가 다시 나타나는 것은 1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군 이 생존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하며 그 안에서 사람들이 계속 순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비록 진수의 개인적 삶에서는 떠났지만 그가 속한 이 공동체의 순환고리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 장면은 1세대의 희생이 단절되지 않은 련속성으로, '생존의 기술'과 '련대의 유전자'로 후속 세대에게 전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적이며 정치적인 결말이다.
5. 맺음말-후일담이 건네는 것
<다시 안산에서>는 이주로동자 1세대의 육체적 고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들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틈새에 뿌리내리는 동시에 서로의 몸과 마음을 지지하는 탄력적인 공동체를 일구어냈는지를 증언한다. '나'와 동화의 현재적 목소리는 과거를 외상으로 반복 재생산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집단적 력사의 일부로 소화해 낸 달관의 경지를 보여준다. '우리들의 후일담'이라는 제목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피동적 보고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모여 그 과거를 어떻게 함께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 제안이다. 그들의 희생은 후대 조선족 이주자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기반을 넘어 낯선 땅에서도 '같이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친 무형의 유산이 되였다. 안산역 지하도는 이제 상처의 장소이자 생존과 련대의 신화가 시작된 원점으로 '우리들'만의 이야기 속에 영원히 자리잡는다. 따라서 이 후일담을 듣는 작업은 한 집단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넘어 모든 이주의 력사에 깃든 보이지 않는 대가와 그 우에 세워진 현재의 다리를 읽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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