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는데 나는 20년만에 고향 방문길에 올랐다.
내가 있을 때 친정에 한번 가려면 울퉁불퉁 험한 길이여서 떨거덕거리며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달리는 뻐스에 몸을 싣던 것이 어제같은데 지금은 고속 기차가 달리고 있다. 옛날에는 기차가 없다보니 기차구경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간 사람이 많았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이란역(依兰站)’이란 간판을 보면서 마음은 설렌다.
그래서 12시간 가야 할 거리를 5시간만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중원 신촌’이란 대문이 웅장하게 세워져서 환영해주고 있었으며 아스파트 십자길이 거미줄처럼 뻗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웬걸 내 눈을 의심안할 수가! 초가삼간은 어디 시집 보내고 4층 아파트가 우후죽순마냥 즐비하게 서있었다. 1층은 가계였는데 맛집이 많고 가격도 저렴해서 밥하기 번거로우면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변해도 너무 변한 고향 모습에 내 심장도 마구 뛰였다. 이뿐이랴! 우리 마을 앞에 송화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면 현소재지였는데 한번 가려면 보트를 타야 했고 강가에서 한시간이나 두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쌍룡이 쫙 벋은 송화강 대교가 있었다. 참, 이것이 꿈인가 싶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봐도 진실은 내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대교우에는 차량과 사람들로 분비면서 이제는 현소재지를 자기집 문앞 나들 듯하고 새 희망을 안고 오고가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여 있었다.
원래 고향은 산좋고 물좋아 유람지로 각광 받는지라 고향사람들은 쩍하며 들놀이를 가고 일주일에 한번씩 외식을 하는가 하면 외지 유람도 일년에 두번씩 다녀온단다. 그리고 저녁에 확성기에서 노래가 흘러 나오면 모두가 나와서 광장무를 추었다. 농촌이라지만 도시보다 더 여유롭게 편안하게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광활한 전원에서는 황금 물결이 넘실거리며 끝이 안 보이는 옥수수 밭에서는 옥수수가 무거운‘애기’를 끌어안고 빨리 데려가라고 손짓한다.
이번 방문에서 나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30년동안 뼈를 굳혀온 고향을 버리다니.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지금 고향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과 변해가는 고향 모습에 가슴이 뿌듯했다.
바야흐로 승승장구하는 고향이여, 내 마음도 세기를 넘고있다. 이제 비행장도 건설한다 하니 고향이여, 세계로 훨훨 날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