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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책의 가치- 한춘옥

2025-12-19 16:15:55

작가가 책을 출판하면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는 것은 문학의 정을 나누는 전통으로 흘러내려왔다. 책 뒤표지의 가격표는 어색한 장식일 뿐 실제로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례의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자기의 글을 팔아먹는다는 수치심에 가격을 언급하기도 꺼려서 택배비용까지 자부담한다. 그 아름다운 나눔이 독서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가?

공짜로 건네는 책은 받을 때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달콤하다. 그 전통은 점차 씁쓸한 맛을 내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 친구는 소설집을 펴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을 받아들고 종이와 글자 냄새를 맡으며 친구는 기뻐했고 흥분했다. 친필로 서명을 하고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의자에 남겨진 책을 발견하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한다. 표지에 정성껏 사인을 새긴 책이 버려진 신문지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공짜니까 그렇지.”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이 귀전을 스쳤다.

얼마전 지인의 책 그것도 한장도 번져보지 않은 새책을 쓰레기통에서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책을 버릴거면 받지나 말거지.” 배고픈 사람에게 빵이 아닌 생화를 준 것인가? 요즘은 이뻐지겠으면 책을 읽으라는 말까지 류행이 된다. 물론 책은 독서를 하는 사람에게 소중하지만 그래도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면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서점에서 선택한 책은 이미 가격표를 읽고 필요한 가치를 알지만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짜 책은 먼지만 쌓이다가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책값은 단순한 금전거래인가? 공짜책은 작가의 노력을 선물로 축소시키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가볍게 여기게 한다. 돈을 지불할 때 책은 단순히 소비대상이 아닌 정신을 담은 유산으로 인지되는 것일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책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책의 함금량을 돈이라는 수치로 계산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책은 돈으로 사야만 제값을 한다.” 공짜로 받은 책은 책장을 스쳐가지만 가치를 인정받은 책은 책가방 속에서 빛을 낸다. 가격표의 책값은 돈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나누는 약속이다. 공짜로 받은 책은 빈손으로 건네받은 가벼움이고 서점에서 골라 산 책은 손끝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작가의 글에 돈을 지불했다는 사실이 책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읽게 한다. 독서에 값어치가 개입하는 순간 나와 책의 관계는 단순한 소유를 넘어 존중으로 승화된다.

작년 겨울 나는 눈덮인 길가에서 고물 책방을 발견했다. 낡은 책들사이에서 20년전 출간된 시집 한권이 눈에 띄였다. 표지는 많이 닳았지만 정가 표시가 선명했다. 주인은 “이 시인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이니 싼값으로 팔 수 없다”며 오히려 가격을 올렸다. 순간 책에 대한 경의가 느껴졌다. 글은 시간을 건느는 배이자 작가의 혼이 깃든 유산이다. 책의 가격을 경제적 가치와 결합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짜 문화는 독서의 숨결을 약화시킬 수 있다. 책값을 지불하는 행위는 작가의 땀을 격찬하는 박수이며 독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약속이다. 종이우에 맺힌 값어치는 결국 문학이 숨 쉬는 힘이 된다.

한권의 좋은 책은 황금으로 지은 집이라는 말이 있다. 독서는 한장한장 번지며 내면의 성전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수많은 명인들이 남긴 령혼은 세속의 욕망을 무너뜨리고 사막 같은 마음을 적시며 어둠을 가르는 등불이 된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록차처럼 소박하고 분명해진다. 백년도 살지 못하는 육신은 종이우에 남은 이야기들을 타고 천년을 려행한다. 호메로스의 배가 지중해를 건느고 두보의 시선이 강물에 비칠 때 나는 시간의 틈새에서 영원을 선물받는다. 죽음이 문을 두드리는 날에도 나의 집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북경박물관에서 문표를 사고 상나라 문화유산을 관람했다. 지금까지 문표가 없이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왜 문표를 팔지? 의문스러웠지만 나는 문표와 해설기를 사고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공짜가 아닌데 관람객이 엄청 많았다. 사람들은 문물 하나하나에 눈도장과 사진을 찍으면서 해설기로 열심히 듣고 있었다. 마치 대학시험을 위하여 공부하는 학생같았다. 무료관람을 많이 했던 나는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책은 사서 보는 것이 제멋이라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 서가에 걸린 해살이 표지들 사이로 스며든다. 그 빛은 숨결처럼 가장 오래된 타임머신이다. 종이 우에 박제된 지혜는 수천년 전 철학자의 숨소리를 지금 이 순간 내 귀가에 전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눈앞에 펼쳐준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남의 고민을 껴안을 필요도 없고 복잡한 사유의 미로에 발을 들일 리유도 없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점점 좁아지는 시야의 담장을 쌓는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경험은 고작 백년의 지평에 불과하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는 다빈치의 호기심이 스며든다. 위인의 어깨를 빌려 더 멀리 바라보면서 수천년을 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독서는 침묵의 대화이다. 영화와 드라마가 화려한 영상으로 감각을 압도할 때 책은 오롯이 글자라는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흰 종이우에 글자들이 나직이 내미는 질문 “네가 생각하는 자유란 무엇이냐?” 독자 스스로 빛을 찾고 길을 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근육이 자라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부단히 수정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야기를 하고 전달하는 능력이다. 고대의 신화에서 오늘날의 소설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서사를 창조하며 공유하고 있다. 책 속 인물들의 좌절과 성공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인간정신의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상처받은 령혼은 책에서 공감을 찾고 고독을 승화시킨다.

물론 독서가 유일한 진리탐구의 길은 아니다. 하지만 스크린 속을 종횡무진하는 현대인에게 책은 천천히 가는 용기를 선물한다. 한줄한줄 의미를 음미하며 걷는 려정에서 우리는 분노를 지혜로 상처를 공감으로 무지를 호기심으로 재단한다.

독서를 외면하고 몸짓으로 살아간다면 가장 값진 두번째 심장을 잃게 된다. 돌멩이우에 새겨진 시간은 고대 바빌론의 별자리 점토판에 새겨져 있고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파피루스 두루마리 속에서 살아 숨쉰다. 책을 읽을 때 손가락으로 만지는 글자들은 수백년 전 철학자의 령혼이 되여 돌아온다.

책 한권은 고대인의 불꽃을 지핀 등불이자 미래를 향하는 받침돌이다. 낯선 땅을 려행하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거울속에 갇힌 얼굴이 낯선 이방인으로 변해버린다. 살아 숨쉬는 령혼들과의 만남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운다. 삶은 유한하지만 책은 무한한 시간의 파편이기에 백년짜리 겨울이 쌓이고 새벽의 별빛이 뿌려진다. 육체는 먼지로 돌아가지만 책 속에 남은 문장은 독자의 눈동자에서 다시 태여난다.

인생은 짧지만 종이우에 쌓인 글자들은 세월이 무너져도 남는다. 책은 돈을 지불하고 사서 보는 것이 제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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