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하나 연강촌까지 걸어갔다 오리라 작심하고 츄츄(강아지)를 데리고 압록강변에 나섰다. 벌써 따스한 해빛이 쏟아내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내가 오랜만에 데리고 나서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풀밭에서 뒤다리를 들고 오줌을 찔찔 갈기고는 착착 뒤발질을 해댄다. 나는 달리는 츄츄를 따라 잰걸음을 옮겼다.
며칠간 강변에 나가지 않았더니 어느새 봄이 찾아와 있었다. 잔디가 푸른 색을 뽐내고 있었고 버드나무, 비술나무들이 연록색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가까이에 가서 살펴보니 반짝반짝 윤기 도는 연푸른 잎사귀들이 무한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잔디밭 여기저기에서는 새노란 민들레꽃들이 해반주그레한 얼굴로 방긋이 웃고 있었다. 연분홍 살구꽃, 앵두꽃, 하얀 배꽃, 구름나무꽃들이 서로서로 뒤질세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탐스럽게 피여 있었다. 특히 구름나무꽃 향기는 멀리서부터 코를 간지럽히며 싱그럽게 그윽하게 풍겨온다.
봄은 만물에게 생명을 부여해주고 아름다움을 부여해주며 설레임을 부여해준다. 새로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봄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연의 봄을 맞게 되니 지나온 내 인생의 봄을 돌이켜보게 된다. 교정에서 사업하는 젊은 교사들을 보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새삼스런 생각이 들면서 참 부럽기도 하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나의 청춘시절은 너무나 짧았던 것 같다. 17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향에서 공부하던 그 때는 우선적으로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학교와 학급의 활동이라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나섰고 항상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만 달리고 달리였다. 선생님들이 이길로 가야 한다면 절대로 저쪽 길에 눈 한번 팔지 않았댔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할 때 난 21살이였다. 교육사업에 참가하여서부터는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그저 끓는 열정 하나로 덤벼쳤다. 조용한 시골 중학교에서 담임사업을 하며 애들을 가르치는데 정력을 몰부었댔다.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두점 사이를 오가며 반복하며 달렸는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참 재미있었다. 3년을 주기로 초중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한 교실에서 그 애들에 그 수업에 질리지 않을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오산이다. 나는 우물안의 개구리로 자라온 시골 학생들에게 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의문부호로 충만된 바깥세상에 대하여 아는대로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아이들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였고 차츰 아름다운 꿈을 가지게 되였다. 새가 멀리멀리 날아가려면 억센 날개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도하였다. 평범한 일상이였지만 매일마다 부동한 연극들을 출연하며 바쁘면서도 의의있는 매일매일을 보냈던 것 같다. 한패한패의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마다 석별의 정으로 한동안 마음을 앓아야 했다.
현성에 조동되여 온 후에도 계속 담임사업을 해왔다. 20, 30대에는 애들과 축구도 차고 배구도 치고 롱구도 놀군 하였는데 40대부터는 차츰차츰 애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금밖에서 관중역을 하며 응원에 가슴을 불태웠다. 정말로 담임사업을 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임사업을 하면서 애들과 같이 휩쓸릴 수 있어야겠는데 마음 뿐이였다. 나이가 원쑤란 말이 그른데 없다.
우리 학교 교수청사 일층에 들어서면 2미터 높이의 착륙식 시계가 한눈에 안겨온다. 내가 25년전 사업 조동으로 교수청사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제일 눈에 뜨이게 돋보이는게 바로 그 시계였다. 어느 해 졸업생들이 모교에 기념으로 남긴 것이다. 한때는 숱한 사람들의 찬탄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떵떵 소리내며 오가는 사람들을 맞아주고 바래주었겠는데 지금은 밀려서 우두커니 구석만 지킬 뿐이다. 인제는 필요없는 존재로, 겉은 멀쩡하지만 무용지물이 되였으니 어쩔 수 없다. 성 쌓고 남은 돌, 지금 나의 처지가 그 시계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퇴직할 나이에 가까워지자 지금은 교수임무가 확 줄어들어 정말로 편안하고 여유롭다. 예전에는 주위의 자연에 무관심했지만 지금은 풀 한포기,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도 제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퇴직까지 가려면 시간이 한참은 남아있다. 지금은 전에 바빠서 읽지 못했던 책들도 읽어보고 글 쓸 생각이 나면 키보드도 두드려보고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다. 96세인 김형석 교수는 자기의 일생을 뒤돌아보며 제일 좋았던 때가 60세부터 80세까지였다고 하였다. 퇴직하면 누구도 찾는 사람이 없어 내 시간을 나절로 조절할 수 있어서 피동적인 삶으로부터 주동적인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법륜스님은 60세가 넘으면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시험을 볼 근심도 없고 출근할 근심도 없어서 제일 편안한 인생단계에 들어선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 제일 좋은 단계에 바야흐로 들어선다는 얘기이다. 지금은 내가 이제껏 하고 싶어도 시간이 모자라서 못했던 일들, 마음 속에 유감으로 남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가며 매일매일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미 3분의 2의 인생을 살아왔으니 남은 인생은 아쉽게도 너무나 짧다. 이미 지나간 시절에 련련하며 후회하고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가 늙어가고 때가 되면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으로서 누구도 어길 순 없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짧은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참답게 사고해야할 과제이다. 무엇을 재미있게 하느라 시간을 보내야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계속 후회를 만들어가는 삶의 련속이라 생각된다.
고맙게 찾아오는 오늘을 잘 틀어잡고 여생을 열심히 여유롭게 즐겁게 살아야겠다. 오늘이 내 생에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 마음도 쏴쏴 흘러가는 압록강물처럼 시원해나고 새롭게 피여나는 나무잎처럼 파릇파릇 해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계절의 봄과 상관없이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마음 속에 영원한 봄을 간직하고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