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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의:'5개 소형 생태원' 향촌 진흥 소득증대의 '금열쇠'
우의:'5개 소형 생태원' 향촌 진흥 소득증대의 '금열쇠'
'능력 작풍 건설의 해' 활동을 착실하게 전개하고 능력을 강화하고 작풍을 전환하며 착실하게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농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우의현에서는 당 건설을 선도로 하고 기층 당조직의 전투보루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며 '3항 행동'(三航行动)을 캐리어(载体)로 각 향진에서 유휴자원을 적극적으로 통합하고 뜨락경제를 발전시키며 농촌의 거주환경을 더욱 개선하여 농촌진흥에 조력했다. 최근 우의현 성부향 대성부촌에 들어서자 농가 뜨락마다 채소가 푸르싱싱하게 자라 생기가 넘쳤다. 저 멀리 붉은 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뜨락에서 묘목에 버팀나무를 세워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동행한 향 간부는 "이곳이 바로 당 건설의 선도하에 뜨락경제를 발전하기 위해 촌민들의 앞뒤 뜨락 유휴 토지를 리용하고 군중을 발동하여 전반적으로 규획하고 과학적으로 설계하여 만든 대성부촌 '5개 소형 생태원'(五小园)이라고 설명했다. 대성부촌은 조선족 집거촌으로 최근년간 언어우세에 힘입어 젊은이들이 한국로무에 나가 많은 유휴뜨락이 생겨났다. 이런 토지자원을 합리하게 리용하고 환경을 개선하며 소득을 증가하기 위해 년초 향당위는 여러차 대성부촌에 와 현지 고찰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촌 당지부와 촌민위원회, 현교통국 대성부촌 주재 사업팀, 촌민들과 연구 소통하여 의견과 å건의를 광범하게 수렴했다. 또한 쌍압산시위 농촌사업회의와 현위 중점사업 배치요구와 결합하여 촌민이 적고 뜨락이 남아도는 우세를 살려 지역별로 채소, 과일, 화초, 약재 등을 재배하기로 통일계획하고 또 한곳의 유휴구역을 미화하여 대성부촌의 '5개 소형 생태원' 즉 '작은 터밭, 작은 약재원, 작은 과수원, 작은 화원, 작은 유원'을 만들기로 했다. 일촌일품(一村一品)을 만들면서 촌민들의 소득증대를 이끌어내고 생태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소수민족 문명촌을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 해외와 국내 대도시 진출로 젊은이들이 대거 고향을 떠나 로령화가 엄중한 지금, 고향에 남아있는 어르신들에게 봉사를 잘하여 칭찬을 받고 있는 마을 당지부서기가 있어 화제이다. 그가 바로 녕안시 발해진 향수촌의 조창남 당지부서기이다. 조창남 서기가 수여받은 ‘흑룡강성 제2진 성급 무형문화재유산 대표적 전승인칭호’증서를 보여주고 있다. 향수촌은 맑고 깨끗한 목당강물이 경박호에서 발원하여 향수촌을 에돌아 흐를 때 바위에 부딛쳐 우렁차게 소리가 나서 향수촌(响水村)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화산용암이 흐르면서 형성된 비옥한 화산재 토질로 이루어진 이곳에서 나는 향수입쌀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공미(贡米)로 이름을 날렸다. 1930년부터 현재까지 91년 력사를 가진 향수촌은 인구가 많을 때는 216호였는데 2002년에 홍암(红岩)촌이 향수촌에 병합되면서 지금은 가구가 272호로 마을사람이 총 900여명에 달한다.
  • 라북현 현성(봉상진) 동북 변두리에 위치한 동명촌. 진에서 흑룡강으로 통하는 북외환도로 옆에 위치해 있는데 마을에서 나와 몇분만 걸으면 시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리위치가 좋은 마을이다. 또 시내와 가까운 원인으로 타민족도 거주(93%)하고 있는 혼거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나온 학생들은 진과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의 동창들에 의해 '시내아이'로 불리기도 했다. 50년대 마을이 섰는데 동부락이라 부르다가 70년대부터 동명촌으로 고쳤다. 동쪽이 밝아온다는 희망의 의미가 다분한 이름이다. 동명촌이 먼저 생기면서 민족향 이름도 동명향으로 지은 것이라고 김철주(45세) 촌당지부서기가 설명했다.
  • 라북현 현성에서 서남쪽으로 몇리 달려서 홍풍촌에 도착했다. 1974년 홍광 생산1대에서 5대가 분리돼 형성된 마을인데 현지에서는 습관적으로 홍풍촌을 5대라고 불렀다. 2002년 1대, 4대, 5대가 하나의 행정촌으로 합병, 홍풍촌으로 부른다. 행정구 면적은 8.5평방킬로미터다. 마을의 경작지 면적은 9600무이며 그중 수전이 8445무 차지한다. 마을 호적은 248가구이며 1대의 3가구와 4대의 1가구를 포함해 현재 50여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그중 조선족 10가구가 5천여무를 경작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한족이 경작하고 있다.
  • 흑룡강성 라북현 현성 봉상진에서 평탄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자동차로 약 10여리를 달려 홍선촌에 다달았다. 진 남쪽에 위치한 린근의 두 마을 신흥촌과 신승촌을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을 관계자들은 지금과 예전의 도로상황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한전밭에 사람 키를 훨씬 넘게 자란 옥수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옥수수 키가 2.6m란다. "올해는 비물 조절이 좋고 20여일 고온을 유지해 곡식들이 잘 자랐다. 풍년이 들 것 같다"고 김화봉(43세) 촌당지부서기가 말했다. 홍선촌은 현재 수전 4100여무에 한전 300무를 갖고 있다. 마을에 16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중 7가구가 750무를 부치고 있다. 그외에 현성에 10가구가 살고 있다.
  •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홍광촌에서는 위붕 당지부서기 겸 촌주임, 김만룡 홍광촌경제합작사 리사장, 윤홍매 회계를 비롯한 촌지도부의 인솔하에 사명감을 가지고 알뜰한 살림꾼이 되여 한때 성, 시급 문명촌으로 원근에 소문이 높았던 고향마을 재건에 착수해 빈곤퇴치와 제반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열성을 다하고 있다. 홍광촌은 일제강점시기인 1940년대에 설립, 빈현, 파언현 등지의 조선족들이 이곳에 와 정착했으며 한때 광성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적상 276가구에 인구가 708명에 달하고 촌구역 면적이 4.6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경작지 면적은 5080무에 달한다.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대부분의 촌민들이 해외로무, 도시진출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현재 촌에 실제 거주인구는 16가구에 24명밖에 없다. 한때 홍광촌은 탕왕향적으로 가장 부유한 마을이였고 성, 시급 문명촌, 민속촌으로 원근에 이름을 날렸으며 성, 시급 인대대표, 로력모범을 배출해 다른 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 9월 6일 농업농촌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제2진 전국 시범향촌예비선정 명단에 흑룡강성 학강시 라북현 동명조선족향 홍광촌이 입선됐다. 흑룡강성에서 시범향진 3개와 시범촌이 29개 입선됐는데 그중 조선족마을은 홍광촌과 목단강시 중흥촌 두개다. 흑룡강성 학강시 라북현동명조선족향 홍광촌이 특색관광마을 건설로 향촌진흥의 대렬에 합류하여 특색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홍광촌은 호적인구는 217가구에 500명이다. 조선족인구는 99%이상이며 수전 8천여무 한전 1천여무 있다. 지난해 마을의 일인당 순수입은 2만6천여원이다. 최근년간 민족향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동명향 홍광촌은 성민위의 지지로 3천여만원을 투자해 농업기반시설, 농업특색산업, 향촌관광시설, 농업기계 등 10여개 소수민족발전항목을 건설해 민족특색촌의 경제기반과 발전실력을 제고하고 농민의 생산생활환경을 개선했다.
  • 흑룡강성 오상시 장산향 일승촌의 김룡남지부서기 겸 촌주임(56)은 지부서기로 사업한지 20년이 되고 촌주임은 30대 초반부터 줄곧 해오며 고향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 현재 호적상으로는 300여호에 인구가 1500여명 되는데 실제 남아 있는 사람은 10여명된다고 한다. 호수로 치면 10여호, 한 가구에 한명씩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3-4년 전만 해도 조선족들이 다소 있었는데 지금은 더 줄었다고 한다. 40여호가 오상시내에 거주한다. 이 촌의 수전면적은 3500무되는데 대부분 조선족 촌민들이 한국이나 연해지역으로 떠나고 농사 짓는 사람은 없고 한족들한테 논을 임대준 상태이다. 따라서 촌민들의 인구당 수입도 통계내기 어렵다고 김서기가 실토했다.
  • 할빈시 아성구 성건촌은 할빈지역에서 최대의 조선족촌이며 흑룡강 나아가서 전국적으로도 가장 큰 조선족촌의 하나에 속한다. 현재 호적상으로 1115호에 인구가 2356명에 달하며 경작지 면적은 7000여무에 달한다. 한때 문명촌으로, 살기좋은 고장으로 원근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성건촌은 일제강점시기 일본관동군의 군사기지였는데 일본이 투항한후 1947년 조선의용군 아성지방부대에서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개척하였다. 1948년 부대가 남하하면서 당시 현정부에서 방청(경작자와 소유자가 생산량을 분할하는 방식)을 놓게 되자 조선족농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게 되였다. 1950년 방청제가 페지되고 토지가 농사짓는 농호에 배분되면서 상지, 연수, 목란 등지의 조선족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초창기에는 조선족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한족마을인 성교촌에 입적하여 조선족소조로 있다가 1951년 독립하여 성건촌이 생겨났다.
  • 칠대하시의 유일한 조선족촌인 동신촌은 86년의 력사(1935년 설립)를 간직한 촌으로 칠대하시에서도 건촌 력사가 가장 유구하다. 칠대하시 신흥구정부와 6킬로미터, 도시 중심과 19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동신촌은 1935년 당시 위만주국시기 일본개척단이 외긍하의 자연조건을 리용하여 벼를 재배하기 위해 46가구 조선족 농가를 이주시켜 호로두구댐(葫芦头沟引水坝)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조선족 마을이다. 흑룡강성 동부의 왜긍하(倭肯河) 중류의 오르도스충적평원(河套冲击平原)에 위치한 동신촌은 지세가 평탄하고 자연 지리환경이 독특하다. 동신촌은 호적상 210가구에 인구가 709명이며 그 중 조선족인구가 95%를 차지한다. 경작지 면적이 6580무, 그중 수전 면적이 3500무이다. 오염없는 왜긍하물로 관개하여 생산된 동신촌 친환경 고칼슘입쌀, 셀렌입쌀은 맛이 향기롭고 영양가가 높아 주변에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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