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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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홍광촌에서는 위붕 당지부서기 겸 촌주임, 김만룡 홍광촌경제합작사 리사장, 윤홍매 회계를 비롯한 촌지도부의 인솔하에 사명감을 가지고 알뜰한 살림꾼이 되여 한때 성, 시급 문명촌으로 원근에 소문이 높았던 고향마을 재건에 착수해 빈곤퇴치와 제반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열성을 다하고 있다. 홍광촌은 일제강점시기인 1940년대에 설립, 빈현, 파언현 등지의 조선족들이 이곳에 와 정착했으며 한때 광성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적상 276가구에 인구가 708명에 달하고 촌구역 면적이 4.6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경작지 면적은 5080무에 달한다.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대부분의 촌민들이 해외로무, 도시진출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현재 촌에 실제 거주인구는 16가구에 24명밖에 없다. 한때 홍광촌은 탕왕향적으로 가장 부유한 마을이였고 성, 시급 문명촌, 민속촌으로 원근에 이름을 날렸으며 성, 시급 인대대표, 로력모범을 배출해 다른 촌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 9월 6일 농업농촌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제2진 전국 시범향촌예비선정 명단에 흑룡강성 학강시 라북현 동명조선족향 홍광촌이 입선됐다. 흑룡강성에서 시범향진 3개와 시범촌이 29개 입선됐는데 그중 조선족마을은 홍광촌과 목단강시 중흥촌 두개다. 흑룡강성 학강시 라북현동명조선족향 홍광촌이 특색관광마을 건설로 향촌진흥의 대렬에 합류하여 특색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홍광촌은 호적인구는 217가구에 500명이다. 조선족인구는 99%이상이며 수전 8천여무 한전 1천여무 있다. 지난해 마을의 일인당 순수입은 2만6천여원이다. 최근년간 민족향의 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동명향 홍광촌은 성민위의 지지로 3천여만원을 투자해 농업기반시설, 농업특색산업, 향촌관광시설, 농업기계 등 10여개 소수민족발전항목을 건설해 민족특색촌의 경제기반과 발전실력을 제고하고 농민의 생산생활환경을 개선했다.
  • 흑룡강성 오상시 장산향 일승촌의 김룡남지부서기 겸 촌주임(56)은 지부서기로 사업한지 20년이 되고 촌주임은 30대 초반부터 줄곧 해오며 고향 마을을 지켜가고 있다. 현재 호적상으로는 300여호에 인구가 1500여명 되는데 실제 남아 있는 사람은 10여명된다고 한다. 호수로 치면 10여호, 한 가구에 한명씩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3-4년 전만 해도 조선족들이 다소 있었는데 지금은 더 줄었다고 한다. 40여호가 오상시내에 거주한다. 이 촌의 수전면적은 3500무되는데 대부분 조선족 촌민들이 한국이나 연해지역으로 떠나고 농사 짓는 사람은 없고 한족들한테 논을 임대준 상태이다. 따라서 촌민들의 인구당 수입도 통계내기 어렵다고 김서기가 실토했다.
  • 할빈시 아성구 성건촌은 할빈지역에서 최대의 조선족촌이며 흑룡강 나아가서 전국적으로도 가장 큰 조선족촌의 하나에 속한다. 현재 호적상으로 1115호에 인구가 2356명에 달하며 경작지 면적은 7000여무에 달한다. 한때 문명촌으로, 살기좋은 고장으로 원근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성건촌은 일제강점시기 일본관동군의 군사기지였는데 일본이 투항한후 1947년 조선의용군 아성지방부대에서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개척하였다. 1948년 부대가 남하하면서 당시 현정부에서 방청(경작자와 소유자가 생산량을 분할하는 방식)을 놓게 되자 조선족농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게 되였다. 1950년 방청제가 페지되고 토지가 농사짓는 농호에 배분되면서 상지, 연수, 목란 등지의 조선족 이주민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초창기에는 조선족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한족마을인 성교촌에 입적하여 조선족소조로 있다가 1951년 독립하여 성건촌이 생겨났다.
  • 칠대하시의 유일한 조선족촌인 동신촌은 86년의 력사(1935년 설립)를 간직한 촌으로 칠대하시에서도 건촌 력사가 가장 유구하다. 칠대하시 신흥구정부와 6킬로미터, 도시 중심과 19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동신촌은 1935년 당시 위만주국시기 일본개척단이 외긍하의 자연조건을 리용하여 벼를 재배하기 위해 46가구 조선족 농가를 이주시켜 호로두구댐(葫芦头沟引水坝)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조선족 마을이다. 흑룡강성 동부의 왜긍하(倭肯河) 중류의 오르도스충적평원(河套冲击平原)에 위치한 동신촌은 지세가 평탄하고 자연 지리환경이 독특하다. 동신촌은 호적상 210가구에 인구가 709명이며 그 중 조선족인구가 95%를 차지한다. 경작지 면적이 6580무, 그중 수전 면적이 3500무이다. 오염없는 왜긍하물로 관개하여 생산된 동신촌 친환경 고칼슘입쌀, 셀렌입쌀은 맛이 향기롭고 영양가가 높아 주변에 이름이 높다.
  • 흑룡강성 학강시 라북현 현성 봉상진에서 자가용으로 10여분 달려 남쪽에 있는 조선족마을 신흥촌에 이르렀다. 거리는 20km로서 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조선족마을이다. 시멘트길로 포장하기 전에는 자전거로 한시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였다. 마을의 호적은 130가구인데 현재 5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40여가구가 현성에 거주하고 있다. 수전면적은 3800무이며 촌민 4가구가 1200여무를 경작하고 있다. 마을 변두리에 면적이 꽤 큰 창고가 보였는데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라고 마을 관계자가 설명했다. 최근 몇년 농기구 갱신속도가 빨라지면서 자주 바꾸다보니 수량도 많이 늘어났다. 1982년부터 20년 넘게 지부서기를 맡았던 김재수(73세)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전에는 향에 회의가 있으면 소수레를 몰고 다녀와야 했다. 소수레가 없어 두시간 걸어서 다닐때도 있었다. 한번 회의하러 가는게 힘들었다. 가장 곤란한 마을이였다"고 회억했다.
  • 22일 오전 우리 취재팀 일행 4명이 흑룡강신문사에서 추진하는 백개마을 탐방 이벤트 차원에서 흑룡강성 방정현 보흥향 신풍촌을 찾았다. 할빈에서 가목사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2시반 달리니 방정현에 도착했다. 며칠 전에는 비가 내리고 날씨가 안좋았는데 이날 따라 하늘이 맑게 개였고 기온도 그리 높지 않아 나들이 하기에 안성 맞춤했다. 신풍촌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김성수(79), 반옥란(76)부부를 만났다. 김성수씨는 신풍조선족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고 6년간 촌로년협회 회장직을 력임했었다. 반옥란은 3년간 로년협회 회장직을 력임했다고 한다. 이들 로부부가 삼륜차를 타고 마을 회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마을 회관 뜨락에 들어서니 몇몇 로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장기를 두고 있었고 로년협회 회관에서는 안로인들이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부 안로인들은 구들에 앉아 흑룡강신문을 읽고 있었으며 일부 안로인들은 화투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흑룡강성 녕안시 발해진에서 서북쪽으로 약 4km 상거해 있는 향수촌은 300여년의 력사를 지닌 마을로서 일찍 20세기 30년대 초에 만여년 전 경박호 화산 분출로 이루어진 석강판을 개간하여 논을 일구고 벼농사 기술을 발전시켜 오늘의 ‘향수입쌀’ 생산에 큰 업적을 쌓았다. 중국의 으뜸 입쌀로 꼽히는 ‘향수입쌀’의 원산지인 향수촌은 목단강시에서 유일한 ‘벼 일품촌(水稻一品村)’이다. 오늘날 ‘향수입쌀’이 중국에서 으뜸가는 백옥미로 이름을 날린 것은 고향사람들의 신근한 로동과 과학영농으로 이루어낸 열매이다. ‘향수입쌀’은 마을에서 벼농사를 하면서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933년 리도석이란 사람이 한국 경상남도 을산군에서 향수마을로 이주해 올때 일본의 벼 품종 ‘국주(国主)’를 등에 지고 와서 벼농사를 지었다.
  •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홍기촌은 최근 2기의 가목사시 시위서기를 담임했던 흑룡강성 서건국부성장, 양박부성장이 직접 방문해 향촌환경종합관리 현장참관활동을 조직했던 조선족마을로 원근에 이름이 높다. 하다면 어떻게 홍기촌은 시위서기까지 직접 찾는 마을이 되였을까? 이는 홍기촌 력대 지도부의 로고에 기초해 윤령령 촌 당지부서기 겸 촌주임, 진성주 촌 경제합작사 동사장, 리진순 회계, 조상률 출납원 등 홍기촌 현임 지도부가 촌민들을 이끌고 향당위와 정부의 정확한 지도하에 습근평 새 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철저하게 관철, 집행하며 향촌진흥의 길에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 홍기촌은 순 조선족마을로 일제강점시기인 1940년 이민으로 형성된 집단마을(2부락)이다. 향소재지와 1킬로미터 상거해 있고 북경-무원도로가 경유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환경이 아름다우며 산업이 발달한 홍기촌은 두개의 자연툰(홍기와 신툰)으로 구성, 한때 탕원현조선족중학교의 소재지여서 민족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전촌의 경작지면적은 8692.81무, 그중 수전은 8640.31무, 한전은 46.5무이며 호적인구는 522호에 1291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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