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호국, 언론인·국제문화교류 사절의 이야기

리호국 촬영기자[(전)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 한국사무소 대표, 길림신문 해외상임고문, 동북아신문 상임고문]
한 사람의 카메라는 시대를 기록하고 한 언론인의 발걸음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리호국의 40여년 언론인생은 기록과 소통이라는 두가지 사명을 묵묵히 실천해 온 려정이였다.
리호국은 1958년 8월 25일 길림성 연길시에서 태여났다. 1978년 중국인민해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뒤 1984년 연변대학교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35년간 기자, 프로듀서, 촬영감독, 프로그램 기획자로 활동하며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삶을 생생한 영상으로 기록해 왔다. 또한 북경방송대학교(1991년)와 한국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1999~2001년)에서 방송제작 연수를 받으며 전문력량을 강화하고 국제 미디어 분야로 활동 령역을 넓혔다.
씨앤앰구로케이블TV와 2010년 1월 29일 중국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과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에서 지역 채널을 통해 연변뉴스를 방송하였다.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 한국사무소의 리호국 대표는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은 앞으로 씨앤앰구로케이블TV를 통해 조선족 동포들에게 고향 소식을 비롯한 더욱 다양한 연변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넓힌 뒤에는 량국 방송사의 협력을 추진하고 뉴미디어를 통해 량국의 사회와 문화를 소개하며 언론교류와 민간외교의 령역을 개척했다. 2018년 정년퇴직 이후에도 그의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당원인 리호국은 퇴직 후에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과 열정을 이어가며 한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다. 길림신문 해외상임고문으로 임명된 그는 길림신문 해외판 운영을 책임지는 한편 여러 중국어 언론사의 경영과 편집 업무에도 참여하며 활동 령역을 넓혀왔다. 그는 지금도 중한 언론교류와 민간 문화교류의 현장에서 량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회를 리해하고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소통의 통로다. 군인으로 국가에 헌신하고 언론인으로 시대를 기록하며 문화교류의 실천자로 량국 국민의 마음을 이어 온 그의 삶에는 국경을 넘어 상호 리해와 신뢰를 넓히려는 한결같은 신념이 깃들어 있다.
제1장.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며 초심을 다지다
청춘은 군영에서 시작되였다.
1978년, 스무살의 리호국은 중국인민해군에 자원입대해 조국 수호의 길을 선택했다. 5년간의 군 생활은 그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책임감, 조직력을 길러주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맡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자세 역시 이 시기에 몸에 익혔다.
엄격한 군사훈련과 집단생활 속에서 그는 성실함과 규률의 중요성을 배웠다. 이러한 경험은 후날 언론 현장에서 정확성과 책임을 중시하는 직업륜리의 밑바탕이 되였다.
1983년 전역한 그는 군인의 충성과 헌신을 가슴에 품은 채 방송과 언론의 길로 들어섰다. 군복은 벗었지만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선택한 도구가 군복에서 카메라와 마이크로 바뀌였을 뿐이다. 이제 그의 사명은 현장을 기록하고 시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이 되였다.

2014년 2월 20일 제19차 남북리산가족 상봉행사를 취재 촬영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 뉴스에 감동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방송하였다.
제2장. 연변 방송 현장에 뿌리내려 전문 언론인의 길을 걷다
1984년 3월, 리호국은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 입사하며 본격적인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다.
그는 제작센터와 문예센터, 사회교육센터, 대외경제부, 뉴스센터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뉴스 취재와 편집, 특집 프로그램 기획, 드라마 제작, 다큐멘터리 촬영, 대외홍보 영상 제작에 이르기까지 방송 전반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35년 동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 현장은 언제나 삶의 한복판이였다. 지역경제 발전과 민생, 민족문화, 관광산업, 대외개방 등 시대의 변화를 기록하며 수많은 뉴스와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현장 중심의 취재정신과 방송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연변 방송의 발전에 힘을 보탰다.
장백산을 세계에 알린 영상 제작
1990년에는 연변 최초의 장백산 관광홍보 영상인 〈장백산 풍광〉을 기획·촬영·제작했다. 이 작품은 연변TV를 통해 방송된 데 이어 한국 KBS의 〈전국은 지금〉에도 소개돼 장백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한국 시청자들에게 알렸다.
당시 이 영상은 중한 방송교류의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연변의 관광자원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세월호가 침몰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자 476명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실종되였다. 이번 세월호 참사 취재촬영을 20여일 간 사고 현장에서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 뉴스에서 방송하였다.
드라마와 특집 프로그램 제작
그는 드라마 〈반달〉, 〈별찌〉, 〈홈〉 등을 촬영·제작해 연변TV와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을 통해 방송했다. 이들 작품은 지역 방송평가와 각종 방송상에서 성과를 거두며 그의 제작력량이 인정받았다.
1994년 8월 연변텔레비전 소년아동부 김선녀 주임과 함께 '아! 백두산'을 촬영 제작하여 전국소수민족준마상 1등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청소년부의 김선녀 주임과 함께 제작한 청소년 교양드라마 〈별찌〉를 비롯해 전국 금동상 1등 수상작 〈장백의 진달래〉, 전국소수민족 준마상 1등 수상작 〈아! 백두산〉 등 조선족 소년·아동 프로그램을 다수 촬영·제작했다. 이들 작품은 연변TV와 길림성TV, CCTV 등을 통해 방송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40주년을 맞아 제작한 대외특집 〈중국·연변〉은 연변의 발전상과 민족문화를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소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3년 7월 26일, 개성공단에 남아 있던 우리 측 잔류 인원의 전원 철수가 결정되면서 남북 경협의 상징이였던 개성공단은 페쇄 위기에 놓였다. 남북이 함께 첫 삽을 뜬 지 10년 만에 맞닥뜨린 위기 속에서 취재진이 공단 철수와 관련한 긴박한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CCTV 대형 프로그램 제작 협력
1992년에는 CCTV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 〈정대종합예술〉 연변특집 제124·125·126회 촬영에 참여해 현장 촬영과 제작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보여 준 전문성과 헌신을 인정받아 CCTV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1996년에는 연변TV와 연변일보가 공동 기획한 대형 특별취재 〈조국변경만리기행〉 취재단에 합류했다. 취재단은 중국 최동단인 훈춘 방천에서 출발해 약 100일 동안 중국 동부 연해지역 32개 도시를 거쳐 최남단인 해남성 삼아까지 이동하며 개혁개방 이후 중국 연해지역의 발전상을 집중 취재했다.
이 시리즈는 연변 지역에 방송돼 개혁개방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지역 주민들의 경제발전과 대외개방에 대한 리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국제 투자홍보 프로그램 제작
1998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 두만강개발무역상담회를 위해 경제홍보 특집 〈투자자들이 바라는 지역, 연변〉을 제작·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연변의 투자환경과 산업 기반을 국내외 기업에 소개하는 자료로 활용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말까지 그가 직접 기획하거나 촬영·제작한 프로그램 가운데 40여편이 국가급·길림성급·연변주급 방송상과 뉴스상을 수상했다.
35년의 방송 인생 동안 100편이 넘는 TV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뉴스 특집 제작에 참여한 그는 현장 중심의 취재정신과 영상 제작 력량으로 연변 방송 발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2013년 2월 25일 오전 서울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을 취재 촬영하여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에서 방송하였다.
제3장. 한국 연수와 해외 미디어 개척, 국제 전파의 길을 열다
국제 전파 력량을 높이고 세계를 향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 리호국은 배움과 도전을 이어갔다.
1999년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의 추천과 위임으로 한국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2년간 방송제작과 국제미디어, 영상 콘텐츠 제작, 국경 간 미디어 전파 등을 연수했다. 중한수교 이후 량국 방송교류가 확대되던 시기에 그는 한국의 방송 제작 시스템과 미디어 산업의 발전 경험을 연구하며 국제 전파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연수는 학업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 사회와 중국 사회를 잇는 민간 미디어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다양한 방송기관과 언론인을 만나 교류하며 협력 기반을 넓혀 나갔다. 한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리해하고 중국을 해외에 정확하게 소개하는 것이 해외 언론인의 중요한 사명이라는 인식도 이 과정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한국에서 방송제작 연수를 받던 리호국은 한국에 “동방성차이나”미디어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설립된 중한 민간 미디어 교류 전문회사 가운데 하나로 량국 방송 프로그램 공동 제작과 뉴스 취재, 영상 콘텐츠 제작, 문화행사 기획 및 언론 협력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동방성차이나 설립 이후 그는 중국 연변과 한국을 잇는 다양한 영상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량국 방송사 간 협력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은 물론 문화관광 홍보, 기업 홍보영상, 국제행사 기록영상 등으로 활동 령역을 넓히며 중·한 미디어 교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중국의 이야기를 세계에 전하고, 한국의 모습을 중국에 정확하게 소개한다”는 사명을 일관되게 지켜 왔다. 그의 해외 활동은 단순한 뉴스 취재와 영상 제작을 넘어 언론을 통한 민간 외교와 문화교류를 실천하는 과정이였다.
한국에서의 연수를 마친 뒤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2014년 다시 한국 현장에 발을 디뎠다. 당시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은 한국 내 국제 보도와 대외 홍보 력량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사무소를 설립했으며 리호국은 한국사무소 대표 겸 지국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한국사무소를 이끌며 한국 지역 뉴스 취재와 편집, 해외 특집 프로그램 제작, 방송사 간 협력 및 대외 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해외 주재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언어와 문화의 차이, 시차와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며 한국 현장을 꾸준히 누볐다. 특히 국제행사와 중한 교류 현장, 재한 중국동포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는 언제나 ‘현장이 가장 좋은 뉴스 교실’이라는 신념으로 취재에 림했다. 사람과 현장을 중심에 둔 그의 보도와 영상 기록은 한국과 중국을 잇는 미디어 소통의 통로이자 량국의 리해와 교류를 넓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해외 뉴미디어 플랫폼 〈호국영상〉 창설
2011년에는 뉴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유튜브 플랫폼 〈호국영상〉을 창설했다.
〈호국영상〉은 중국과 한국의 사회·문화·경제·관광·동포사회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소개하는 해외 화문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현재 약 5만 3천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해외 시청자들에게 량국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주요 콘텐츠는 다음과 같다.
중국과 한국의 주요 뉴스 및 시사 현장재한 중국동포와 화교사회의 생활과 문화중국 각 지역의 도시 이미지와 관광 홍보중한 문화예술 공연과 민간교류 행사력사와 전통문화, 기록 다큐멘터리
그는 카메라로 도시를 기록하고 사람들의 삶을 담으며 영상으로 소통의 폭을 넓혀 왔다. 〈호국영상〉은 해외 중국어권 시청자와 한국 사회를 련결하는 뉴미디어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제4장. 연변방송 한국사무소 대표로 해외 전파의 최전선을 지키다
2014년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은 한국 내 국제 전파 력량을 강화하기 위해 연변방송 한국사무소를 설립했다. 리호국은 한국사무소 대표로 임명돼 한국 현지 뉴스 취재와 편집, 해외 특집 프로그램 제작, 방송 협력 및 대외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해외 주재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 시차와 거리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한국 현장을 지켰다. ‘현장이 가장 좋은 뉴스 교실’이라는 자세로 국제행사와 동포사회의 다양한 현장을 기록했다.
400여건의 해외 뉴스와 특집 제작
한국사무소 대표 재임 기간 그는 400여건의 영상뉴스와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해 연변TV를 비롯한 중국의 주요 방송 플랫폼에 송출했다. 특히 특별기획 8부작 〈한국의 중국인〉을 제작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중국인과 중국동포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았다. 이 시리즈는 해외 동포들의 생활과 창업, 교육, 문화활동 등을 집중 조명하며 고향과 해외 동포사회를 련결하는 기록물로 의미를 더했다.
2013년 7월 20일부터 28일까지 한국에서 개최된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현장을 취재 촬영하였다.
방송으로 고향과 동포를 련결하다
그는 해외 동포들에게 고향이 얼마나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에 연변TV 해외 특별프로그램 〈요청한마당〉과 영상편지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해 100여회 방송했다.
프로그램에는 부모님의 안부와 축복, 고향 친지들의 영상 메시지, 해외 동포들의 명절 인사, 가족 상봉과 각종 사연 등이 담겼다. 직접 찾아가기 어려운 가족과 친지들이 영상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산과 바다를 넘어 가족의 정을 이어 주며 해외 동포들의 호응을 얻었다.

리호국 대표는 2017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재한 중국동포 위문공연 특별 이벤트를 기획했다. 특히 공연 중 항일투사 후손인 심양의 78세 림순녀 녀사와 한국에 거주하는 딸 김옥준 녀사가 오래만에 행사장 무대에서 갑작스럽게 상봉하는 장면을 연출해 관중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우리노래 대잔치〉 한국편 제작
연변TV의 대표 음악 프로그램 〈우리노래 대잔치〉 한국편도 세차례 기획·촬영·제작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와 예술인들이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한국 현지에서 촬영돼 연변TV를 통해 방송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예술 현장을 중국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재한동포 문화의 활력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설 특별생방송 한국편 총괄 제작
2017년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 설날 특별생방송 한국편을 제작할 당시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전 과정을 총괄했다.
한국 KBS 스튜디오에서 촬영과 기술 협조, 출연진 조정, 현장 진행 등을 직접 책임지며 해외 특별방송 제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킨 그의 모습은 오랜 경험을 쌓은 방송인의 책임감과 직업정신을 보여 주었다.
제5장. CCTV 서울지국과 방송 협력의 가교가 되다
리호국은 오랜 기간 CCTV 서울지국과 협력하며 한국의 주요 현장을 중국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현장 촬영과 생방송 제작에 참여해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변화를 기록하고 량국 방송 간 협력에도 힘을 보탰다.
주요 뉴스 현장을 기록하다
그는 국가급 뉴스와 특집 프로그램 50여건의 제작에 참여했다. 주요 취재 리력은 다음과 같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생방송 뉴스 촬영
2012년 안동 하회마을 설맞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특별생방송 촬영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현장 촬영
2012년 인천 동아시아경기대회 취재 촬영
2013년 개성공단 철수 관련 뉴스 촬영
2013년 한국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취재 촬영
2014년 남북 리산가족 상봉 특별취재 촬영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 특별취재
2014년 습근평 주석 방한 특별보도 취재
2020년 11월 중국 외교부장 방한 특별보도 취재
이처럼 그는 주요 정치·외교 행사와 사회적 사건의 현장을 촬영하며 한국의 주요 소식을 중국 뉴스채널을 통해 전달했다.

왕의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020년 11월 25일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리호국 대표는 왕의 외교부장과 강경화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의 회담, 26일 청와대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례방,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27일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회담 등을 추적 보도했으며 해당 보도는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 뉴스에 방송됐다.
중한 방송사 간 협력 확대
리호국은 연변방송과 한국 방송기관 사이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KBS, MBC, SBS, YTN, 아리랑TV, 중화TV를 비롯해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케이블방송협회, 딜라이브 케이블TV, 성남아름방송, ETN연예TV 등과 협력하며 프로그램 공동 제작과 뉴스 자료 교환, 기술 교류, 취재 협력 등을 추진했다.
동북아신문과 한국신화보사 등 언론 매체와의 교류도 이어 가며 량국 방송·언론 협력의 실질적인 련결고리 역할을 했다.
국제행사와 대형 프로젝트 기록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행사와 문화행사, 경제교류 행사, 동포사회 행사도 꾸준히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가 제작한 영상은 연변TV와 CCTV, 해외 화문 미디어 등을 통해 방송되며 중국 시청자들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리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제6장. 문화교류의 가교를 놓고 중한 민심을 잇다
리호국의 활동은 언론 보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문화와 예술이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련결하는 매개라고 믿으며 수십년 동안 다양한 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했다.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공연 기획
서울에서 열린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형 위문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중국의 유명 가수들이 참여한 공연을 촬영해 방송했다.
이 행사는 력사의 기억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해외 동포들의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문화행사로 호응을 얻었다.
민간 문화교류 플랫폼 구축
그는 중한 량국의 문화예술단체와 협력해 문화예술 공연과 관광 홍보, 교육 교류, 도시 간 우호교류, 경제·상공 교류, 공익행사와 장학사업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지원했다.
언론을 매개로 기관과 단체, 지역사회와 개인을 련결하며 민간 차원의 교류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넓혀 왔다.
언론인 교류 확대
한중신문기자협회 등 언론단체 활동을 통해 량국 기자들의 상호 방문과 공동 취재를 추진했다. 콘텐츠 교류와 공동 보도, 세미나와 포럼 등을 통해 중한 미디어 협력의 폭을 넓히는 데도 힘썼다.
2021년 12월에는 한국재외동포재단이 중국과 러시아 등 세계 각지의 동포 언론인 10명을 초청해 진행한 ‘재외동포 언론인 초청연수’에 참가했다. 서울과 제주 등에서 력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세계 각지의 동포 언론인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공익활동으로 사회적 책임 실천
그는 재한동포사회 공익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4·19혁명 동포장학회 활동과 국제자연환경교육재단의 중한 교류 지원, 동포사회 문화행사, 장학사업, 공익영상 제작 등을 통해 언론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고 공익문화 확산에 힘을 보탰다.
권위 있는 수상과 사회적 인정
40여년 동안 방송과 국제교류에 헌신한 공로로 중국과 한국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주요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1995년 연변방송텔레비전국 선진근로자상
1998년 연변방송텔레비전국 선진근로자상
1999년 연변방송텔레비전국 선진근로자상
2012년 11월 한국 중국동포 지식인·언론인 대상
2014년 10월 국제평화문화예술인 대상
2014년 10월 환경사랑 문화예술제 서울특별시장상
2014년 11월 중국 국가신문언론 30년상
2015년 12월 국제문화예술교류 대상
2016년 6월 언론보도 발전 공헌 특별상
2016년 12월 제17회 한국문화예술대상 한중방송교류 공헌상
2017년 1월 제3회 한국예술문화예술제 문화예술 공헌대상
2017년 7월 대한민국 국회의장 국제환경교류부문 환경지도자상
2017년 9월 세계명품브랜드 인증상
2026년 10월 제11회 중국동포민속문화대축제 김민석 국회의원 표창장
2015년 12월 국제문화예술교류 대상 수여

2026년 10월 “제11회 중국동포민속문화대축제”에서 김민석 국회의원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그외에도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2022년 12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함께한 30년, 미래를 바라보다’ 행사에서 길림신문 한국지사 해외상임고문으로 활동하던 그는 중국국제방송(CRI)으로부터 중한수교 30주년 기념 감사패를 받았다. 량국 미디어 산업의 발전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행사는 중국국제방송과 북경시정부가 기획·주최하고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사단법인 한중마케팅협회와 한중미디어연구소가 공동 주관했다.
제7장. 은퇴 이후에도 초심을 지키며 중한 우호의 길을 걷다
2018년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도 리호국은 언론인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퇴직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사명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한국 현장에서 취재와 영상 제작을 이어가며 해외 화문 언론과 동포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는 길림신문 해외상임고문을 비롯해 한중신문기자협회 상무부위원장, 한국신화보(한문판) 사장 겸 편집장, 한국교민보(한문판) 사장 겸 편집장, 한국세계방송TV 신화월드채널 편집장, 동북아신문 상임고문, 재한동포문인협회 고문, 서울중국교민협회 상임고문, 한중도시우호협회 자문위원, 4·19선양재단 동포장학회 부회장, 신세계서울병원 고문, 중국동포련합중앙회 고문 등을 맡고 있다.
해외 화문 언론의 발전을 이끌다
그는 길림신문과 흑룡강신문, 한국신화보 등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중한 교류 소식과 동포사회의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 뉴미디어와 기존 언론을 함께 활용해 해외 화문 언론의 영향력을 넓히는 한편, 한국 사회와 중국동포사회를 련결하는 소통 창구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지방정부와 문화단체, 방송기관, 기업, 동포단체 사이의 교류를 지원하며 민간 차원의 중한 우호협력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문화행사와 도시교류, 관광홍보, 경제협력, 청소년 교류, 예술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의 접점을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 10월 12일 오전 9시 30분,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동물원 판다월드에서 생후 100일을 앞둔 쌍둥이 판다의 이름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날 행사에는 동물원 임직원과 SNS를 통해 사전 초청된 판다 팬들,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국과 중국신문사 등 중국 언론사 및 한국의 10여개 언론사 취재진이 참석했다. 쌍둥이 판다의 이름은 예보와 휘보로 발표됐다.
맺는말. 카메라로 기록하고 마음으로 이어온 40년
군복을 입고 조국을 지키던 청년은 카메라를 들고 시대를 기록하는 언론인이 되였다. 그리고 다시 미디어와 문화를 매개로 중국과 한국을 잇는 국제교류의 길을 걸어왔다.
리호국은 40여년 동안 방송과 언론, 문화와 교류라는 한길을 걸으며 현장을 기록하고 사람을 련결해왔다. 연변라디오텔레비전방송국에서 보낸 35년의 방송 인생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해외 전파 활동을 펼쳤고 량국 방송사와 언론 매체의 협력을 추진했으며 해외 화문 언론의 발전과 동포사회 공익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그에게 카메라는 단순히 장면을 담는 도구가 아니였다. 시대의 변화를 기록하고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낯선 사회를 리해하도록 돕는 소통의 매개였다. 그의 활동은 언론이 국경을 넘어 상호 리해와 신뢰를 넓히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은퇴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 언론인이 오랜 세월 쌓아온 기록과 교류의 경험은 중한 량국의 우호를 이어 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카메라로 시대를 기록하고 마음으로 사람을 이어 온 리호국의 40여년은 언론인의 책임과 헌신이 국경을 넘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려정이다.
/동북아신문 리동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