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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원 특별수당' 조선족 미술거장... 흑룡강성화원 국화원 장해동 원장이 수십년 걸어온 국화의 길

2026-09-02 14:41:57

8월 12일부터 흑룡강성서화원 우수작품전시회가 할빈시 남강구 서화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수십점의 우수 미술작품들이 전시된 이 공간에 발을 들이면 입구 맞은편 벽에 사람 키를 넘어서는 국화작품 《수망가원(守望家园)》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수망가원(守望家园)' 199×180cm

그림 왼쪽 가장자리에는 총을 잡은 병사가 그림 밖을 향해 서있고 그 뒤에는 예술적으로 가공된 고향 풍경이 화면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흑룡강성서화원 국화원 장해동 원장(조선족)의 대표작중 하나로 사실적인 대규모 서사방식 대신 고향을 가상화한 예술기법을 적용해 꽃이 만발한 듯한 몽롱한 시적 효과를 만들어내며 관람자에게 넓은 상상의 공간을 남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지난 25일 아성판화원 황태화 원장과 아주경제발전협회조선족련합발전사업위원회 할빈분회 정철 회장을 비롯한 예술계 인사들이 장해동 원장을 직접 례방해 그의 창작 생애를 축하하고 오랜 시간 쌓아온 창작 경험담을 들었다.

수십년 예술길에 쌓은 실력과 명성

할빈 출신인 장해동 원장(59세)은 1991년 중앙민족학원 미술과 중국화 전공을 졸업했다. 현재 흑룡강성화원 전속 화가, 흑룡강성화원 국화원 원장, 중국미술가협회 회원, 흑룡강성 미술가협회 부주석, 국가 1급 미술사, 흑룡강성 문사관 특약연구원 등의 직책을 맡고 있으며 국무원 특별 수당을 받는 전문가로 전국 예술계에서 그 실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제9회, 제10회, 제11회 전국미술전, 제2회 전국중국화작품전, 제2회, 제3회, 제6회 전국화원 미술작품전, 제3회 전국청년미술전,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85주년 전국미술전 등 수많은 국가급 전시에 련이어 참가하며 전국 미술계에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작품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중국공산당 건당 80주년 전국미술전 우수상, 문화부 전국 제8회 '군성상(群星奖)'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중국공산당 건당 80주년 흑룡강성 미술작품 회고전 금상, 흑룡강성 미술가협회 설립 50주년 대전 금상, 흑룡강성 건국 60주년 미술작품전 금상, 흑룡강성 제4회·제5회·제9회 '군성상' 금상 등 수십개의 중요 상을 받았다. 또 일부 작품은 한국, 일본, 프랑스, 러시아를 비롯한 국가와 지역에서 전시됐다.

장해동 원장(오른쪽)이 작품과 관련해 교류하고 있다.

관행을 깨뜨리는 과감함의 매력

대중들은 국화작품이라고 하면 흑백 먹물로 그린 낡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장해동 원장의 국화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사용해 활기가 넘치고 끝없는 상상을 자극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7미터 길이의 대형 창작 《항련영웅지》는 2015년 반파시스트 승리 70주년을 맞아 완성됐다. 기존 항련 소재 작품들이 영웅들을 한줄로 세우는 평범한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 구도를 고민해 기존 관례를 완전히 깨뜨렸다. 양정우를 화면 가장 왼쪽에 배치해 붉은 색채로 강조하고 조상지는 짙은 묵색으로, 조일만은 밝은 색조로 각각 다르게 표현해 각 인물의 개성을 살렸다. 또한 해동청을 동북항련의 정신 상징으로 배치해 전체 작품의 령혼으로 삼았으며 이전에 거의 표현되지 않았던 조선족 항련 녀전사 리추월까지 포함해 총 10여명의 항련 영웅을 화면에 담아냈다. 이 작품은 성내 전시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모든 주제 창작 중에서도 가장 무게가 나가는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항련영웅지' 211×700cm

령감은 매일같은 련습에서 온다

장해동 원장의 가족은 예술과 전혀 관련이 없는 평범한 가정이였다. 물질이 부족해 오락활동이 거의 없던 어린 시절, 몇권의 그림책을 따라 그리며 자연스럽게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은 천부적인 재능과 령감에 달려있다고 말하지만 그는 이런 관념을 단호히 부정한다. "이른바 '재능'은 본질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는 대량의 련습에서 나온다. 충분히 그림을 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의 도리를 깨우치게 된다"고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화원에서 수십년간 일하며 수많은 주제창작 임무를 맡아온 그는 허황된 령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평소 쌓아온 기본 공력으로 모든 창작을 버텨냈으며 수십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림 한폭씩 그리는 습관을 지켜왔다. 

'천마행공계렬-행공팔준(天马行空系列-行空八骏)' 120×240cm

'천마행공계렬 천마오행-금목수화토' 135×66cm×5

'소성계렬(箫声系列)' 120×240cm

지금까지 단 한번의 개인전만 열었던 경험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진다. 

"여러해 전 개인전을 열었는데 전시장에 서면 눈에 전부 단점만 보였고 장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전보다 전국 규모의 대형 미술전에 참가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수만점의 작품이 심사를 거쳐 최종 수백점만 전시되는 전국 미술전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많은 동료의 작품과 비교하며 장단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다음 창작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망북강(守望北疆)' 240×120cm

'10월' 192×181cm

장해동 원장은 다원화된 현대 예술 시대의 창작 철학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금은 세계의 경계가 인터넷으로 완전히 열린 개방의 시대다. 현대 화가는 전통 문인화의 좁은 틀에 자신을 가둬서는 안되며 국화, 유화, 판화의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종합적인 예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어느 한 문파나 스승의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단일 소재만 전문적으로 그려 이름을 알리는 관행도 거부한다고 설명했다. 

그림을 그릴 때 구체적인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것보다 '마음속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으며 화면 속의 사람, 말, 화조는 모두 분위기를 돋보이는 상징일 뿐 모든 요소가 전체 의경을 위해 봉사한다고 말한다. 특히 ‘천마행공’ 계렬작품에서는 말의 형태를 그리는 대신 천마행공의 이미지로 우주 수준의 넓은 경지를 전달하고 금목수화토 다섯 행성과 은하의 이미지를 화면에 녹여 '마도성공' 같은 식상한 표현을 완전히 벗어난 정신 공간을 만들어냈다.

장해동 원장은 대학 졸업후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에 재직했었다. 그러다가 2001년 성급전시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작품이 주목받으면서 성화원 관계자 눈에 띄였고 2002년 성화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이는 화가의 기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계기이자 전문 화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게 된 전환점이 되였다. 그의 작품은 현지 기업가들이 가장 많이 소장할 정도로 성내 화원에서 큰 인기를 자랑한다.

'춘풍 (春风)' 201×176cm

'오상 (傲霜)' 192×166cm

AI 시대, 예술창작의 본질을 묻다

최근 몇년간 AI(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미술전공에 대한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장해동 원장은 랭정하고 명확한 견해를 내놓았다. 

"AI는 화면을 생성할 수는 있지만 창작자가 작품에 쏟아 넣은 진실한 생명 체험과 감정을 영원히 대체할 수 없다. 특히 대형 주제 창작은 생활 축적, 사상의 깊이, 큰 화면을 통제하는 종합 능력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AI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는 령혼 없는 현대 미술 작품은 AI가 가장 잘 생성할 수 있지만 진정으로 핵심이 있는 예술 창작은 절대 시대의 흐름에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색사양 (金色斜阳)' 220×192cm

'병중하당 (瓶中荷塘)' 66×66cm

따라서 아이들의 미술 교육에 대해서도 그는 깊은 성찰을 가지고 있다. 

"당대 저명 화가 오관중 선생님은 '미술을 배우는 사람 중 성공률은 극히 낮아 십만명 중 몇명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선다'고 말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투기적인 마음으로 미술에 입문하는데 조금의 좌절만 만나도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는 학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재능 판단을 요청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절대 아이의 미술 재능을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으며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면 막지 말고 자유롭게 그리게 내버려 두되 억지로 학원에 보내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그냥 '좋아한다'는 정도로는 미술의 길을 버틸 수 없고 정말 '광적으로 사랑하는' 수준이 되여야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퇴직을 얼마 앞두고 있지만 지금도 매일 그림 한폭씩 그려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는 장해동 원장.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예술의 경계를 넓혀가는 그의 모습에서 전통 국화가 오늘날의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추실 (秋实)' 220×192cm

'림풍계렬 (临风系列)' 66×66cm

'림풍계렬 (临风系列)' 66×66cm

/마국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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