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이름이 필요할가. 중국 출신의 김련에게도 기업가, 안해와 어머니, 봉사자, 동포 사회 활동가,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제4대 회장 등 여러 이름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를 리해하는 데 직함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향한 마음과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 온 삶이다.

김련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제4대 회장
2000년 5월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 김련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도쿄의 작은 공장에서 출발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을 일궜다. 사업의 위기와 도전을 이겨 내고 류학생과 동포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마련하였고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의료·교육 지원 활동을 펼치며 사람과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이러한 나눔의 발걸음은 2025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2026년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제4대 회장에 취임한 그는 이제 개인과 기업의 성장을 넘어 동포 사회의 교류와 화합이라는 새로운 책임을 맡았다.
“사람들이 제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기억해 주었으면 합니다.”

2019년 6월 17일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전 한국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과거의 성취보다 현재의 실천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의 김련을 만든 것은 지나온 시간과 그 속에서 쌓아 온 경험이다. 기업가에서 사회적 실천가로 나아가는 그의 려정은 과거의 성취가 오늘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사람을 향한 믿음과 행동이 ‘따뜻한 다리’를 완성해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 열아홉살에 품은 창업의 꿈
김련 회장의 도전은 북경에서 창업의 꿈을 키우던 열아홉 살 무렵부터 시작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김련의 사업 방향에도 전환점이 됐다. 중국 역진출을 모색하거나 재고 처리를 고민하던 한국 기업인들의 요청이 잇따르면서 그는 중국 가구 주문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위기를 새로운 시장을 여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주문과 배송 관리를 위해 중국 전역을 누비며 하루 한두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할 만큼 일에 몰두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사업을 키우며 얻는 성취감과 보람이 더 컸다.
바쁜 사업 일정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김련은 국제무역학과 과정을 마쳤다.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날들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한 꿈과 열망이 자라고 있었다.
열아홉살에 북경에서 창업의 꿈을 품었을 당시, 그녀는 직접 사진을 찍어 카탈로그를 만들고 이를 들고 시장을 누볐다. 부모님은 그런 딸에게 말없이 8000원을 건넸고 모토로라 휴대전화도 사주었다. 그 지원을 밑천 삼아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사업을 일궈갔다. 부모님의 믿음과 자신의 노력으로 한걸음씩 기반을 다져 온 경험은 후날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였다.
도전과 시련을 넘어 오무니카를 일구다
북경에서 사업과 학업을 이어가던 김련은 1999년 더 넓은 세상에 도전하기 위해 일본 류학을 결심했다. 이듬해 5월 13일, 쌓아온 사업 기반과 익숙한 생활을 뒤로 하고 그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이 선택은 곧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2000년 9월, 일본어학교에 다니던 김련은 한방약 관련 번역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번역과 중국 업무 지원을 맡았지만 곧 분말 원료의 계량·포장부터 건강식품의 생산과 출하까지 담당하게 됐다. 낯선 작업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식품위생과 생산관리, 공정 운영의 기초를 익혔다. 주문이 늘면서 일손이 부족해지자 고향 출신 류학생들을 불러 함께 일했고 이들은 차츰 그녀를 중심으로 하나의 작업팀을 이루었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같은 시기 생산량이 늘자 김련은 개인사업체 ‘피스아일랜드’를 설립하고 도쿄 고토구 모리시타에 약 100평 규모의 작업장을 마련했다. 2002년 5월에는 법인으로 전환해 사업을 확장했고 다이어트 보충제 생산량은 월 10만 개에 이를 만큼 증가했다.
그러나 성장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2년 9월 다이어트 건강식품을 둘러싼 사고로 일본 건강식품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주문이 급감했다. 공장 가동이 사실상 멈추고 직원들의 생계마저 위태로워졌다. 김련은 결국 대부분의 유학생 직원을 내보내야 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맞닥뜨린 혹독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원료 혼합과 소분 등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부터 맡으며 거래처의 신뢰를 회복해 나갔다. 위기를 통해 무리한 확장보다 안정적인 경영과 꾸준한 신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2003년에는 첫째 아들을 얻었다. 가정과 사업을 함께 꾸려가던 부부는 독자적인 사업 기반을 다지기로 뜻을 모았다.
마침내 2004년 5월, 회사명을 ‘주식회사 오무니카(OMNICA)로 바꾸고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이후 거래처 부도와 해외 투자 실패, 리먼 쇼크 등 여러 위기가 이어졌지만, 생산 기반을 정비하고 설비와 품질관리 체계를 강화하며 돌파구를 찾아갔다. 그 결과 오무니카는 2007년 매출 40억엔을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작은 작업장에서 함께 땀 흘리던 류학생들도 회사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고, 오무니카는 기능성 원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김련에게 이 과정은 단순한 사업 성공의 기록이 아니였다. 함께 일한 사람들과 위기를 견디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사업을 일구어 온 시간이였다. 후날 동포 사회와 봉사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던 힘도 이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같은 목적, 같은 방향을 바라본 부부
김련의 삶에서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밖에서는 강한 사업가였지만 집에서는 한 사람의 안해이자 두 아들의 엄마였다.
남편과 사업의 기쁨과 위기를 함께 겪고 두 아들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며 삶의 굴곡을 헤쳐 왔다. 부부의 오랜 동행을 지탱한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였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을 먼저 떠올리고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의 힘듦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폈다. 중요한 순간마다 같은 목적을 품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때로는 기다려 주고 때로는 등을 밀어 주는 동반자로 살아왔다.
“저희 부부는 늘 서로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먼저’가 아니라 ‘당신이 먼저’였지요. 중요한 순간에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봤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시간이 와도 함께 지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아들의 성장과 교육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유치원 때부터 교육환경을 세심하게 살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의 이름이나 성취보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생각과 관심을 지닌 채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련 부부, 유럽 려행중 남긴 사진
어린아이였던 두 아들은 어느새 훌쩍 자랐다. 이제는 함께 려행하고 골프를 즐기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장난을 주고받는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웃는 평범한 일상은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행복이 됐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알게 됩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건강하게 곁에 있고,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수 있다는 것. 저는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도전과 성취를 뒤로하고 돌아왔을 때, 그에게 가장 따뜻하고 소중한 이름은 결국 안해이자 엄마였다.
홀로서기를 배우며 다시 찾은 자신
사업과 가정에 몰두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김련에게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찾아왔다. 조직 운영에는 익숙했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들은 가족과 직원들에게 의지했다. 생활과 일 모두를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 과정에서 김련은 타인의 도움에 기대기보다 직접 부딪치고 해결하며 독립심을 키웠다. 2014년 8월에는 ‘주식회사 기리(基理)’를 창업했고, 2015년 10월에는 도쿄 아카바네에 레스토랑 ‘흠미성(鑫味城)’을 열었다. 같은 시기 오무니카의 일상적인 경영 실무에서도 물러나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했다.

기리와 흠미성은 단순한 사업 공간만은 아니었다. 낯선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이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미래를 의논하는 사랑방이 되였다. 김련은 따뜻한 음식과 진심 어린 환대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이어주는 힘이라고 믿었다.
사업의 중심에서 한걸음 물러난 뒤, 그녀의 관심은 자신의 성장과 가족, 주변 사람들의 삶으로 넓어졌다. 홀로서기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한 시간은 그동안 받은 도움과 인연을 사회에 돌려주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는 후날 봉사와 동포 사회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밑거름이 되였다.
국경을 넘은 변하지 않는 정체성, 사람을 향한 사랑
사업으로 삶의 기반을 다진 김련은 자신이 받은 도움과 응원을 사회에 돌려주기 시작했다. 2019년 ‘사랑의 나눔’과 인연을 맺은 뒤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한국·몽골·캄보디아·베트남·라오스·태국 등에서 해외 봉사를 이어갔다. 한국에서도 연탄 나눔과 김장 나눔에 참여했다. 그에게 봉사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과정이였다. 이러한 공로로 2025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지만 수상의 기쁨은 함께 한 이들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봉사 시 기자의 취재를 받다.
나눔의 뿌리는 젊은 시절의 기억에도 닿아 있다. 구름다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본 그는 차마 지나치지 못했다. 1원짜리를 건네자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지갑 속 돈은 물론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 한송이까지 모두 나누어 주었다. 후날 국경을 넘어 이어진 나눔의 마음은 어쩌면 그 작은 구름다리 위에서 싹텄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이국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었지만 김련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사랑과 고향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후배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건넨다.
“스스로를 믿으세요. 지금의 모진 어려움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김련에게 국적과 문화의 차이는 사람을 가르는 장벽이 아니다. 서로를 리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사업가에서 봉사와 국제교류의 주역으로 활동 령역을 넓혀 온 그의 삶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 사람을 향한 진심으로 문화와 국경을 잇는 려정이다.
사회공헌 활동은 한인사회와 국제교류로도 이어졌다. 재일본한인련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한국교육문화원과 봉사활동을 함께 했으며 월드옥타(World-OKTA)를 알게 된 뒤 2016년 2월 치바지회 리사로 가입해 세계 각국의 한인 경제인들과 교류했다.

김련 회장, 2023년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서 표창장을 받다.
김련은 “사업보다 사람을, 성공보다 나눔을, 경쟁보다 협력의 가치를 배웠다”고 회고한다. 월드옥타에서 쌓은 경험과 국제교류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2년 3월 29일 KOTRA 사장 표창도 받았다.
공로를 넘어 련대와 실천의 중심으로
녀성리더간 국제적 련대와 차세대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세계한민족녀성네트워크, 월드킴와(전세계국제결혼총련합회)를 통해 각국의 한인녀성 기업인과 전문가, 사회활동가들과 교류했으며 녀성리더 간 협력과 차세대 녀성 인재 육성에 참여하고 있다.
김련의 활동은 기업 경영을 넘어 봉사와 동포 사회, 평화와 녀성 리더십 분야로 확장됐다. 직함이나 수상보다 자신의 경험과 인맥을 공동체의 성장에 보태고, 사람과 조직, 세대를 련결하는 데 그의 공로와 앞으로의 역할이 있다.
새로운 책임,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회장 취임
2026년 1월 24일, 김련은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제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에게 회장직은 명예보다 책임이였다. 전임 회장과 협회 구성원들이 쌓아 온 역사를 잇고 회원들의 뜻을 모아 다음 세대가 참여할 기반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임 후 가장 먼저 힘을 쏟은 것은 임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이였다. 여러차례 만나 의견을 나누며 신뢰를 쌓고 협회의 미래를 함께 모색했다. 속도보다 방향을, 개인의 앞섬보다 함께 오래 나아가는 일을 중시하는 그의 원칙은 가족과 사업, 봉사 현장에서 지켜 온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김련의 시선은 2027년 5월로 향하고 있다. 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5월 1일부터 3일까지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2027 세계조선족 문화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조선족 기업인과 문화예술인, 차세대 리더를 비롯해 학계·경제계·문화계 인사들이 교류하는 자리다. 현재 리사회와 실무회의를 통해 행사 기획과 역할 분담을 마치고 세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에게 10주년은 과거의 성과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세대의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경제와 문화를 련결하며 세계 각지의 조선족들이 서로 리해하고 힘을 나누는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보다 세대와 세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지속 가능한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김련이 그리는 협회의 미래다.
에필로그 : 세상과 미래를 잇는 따뜻한 공명
스물셋의 나이에 이국땅을 밟은 김련은 어느덧 26년의 여정을 지나왔다. 일본어를 배우던 류학생에서 공장 현장 책임자로, 다시 기업을 일군 경영인으로 성장하며 기쁨과 위기를 함께 겪었다. 그 곁에는 늘 같은 방향을 바라본 남편과 삶의 기쁨이 되여준 두 아들이 있었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 자신이 받은 마음을 주변에 돌려주기 시작했다. 가족을 향한 사랑은 이웃과 공동체로 넓어졌고, 봉사와 문화 교류는 다음 세대를 잇는 일로 이어졌다.
세월이 흐르며 성공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많이 가지는 것보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는 것, 남보다 앞서기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것, 하루를 마치고 가족과 웃음을 나누는 것. 그가 발견한 행복은 거창한 성취보다 소중한 인연에 가까웠다.
“제가 여기까지 혼자 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도 있었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결국 인생에 남는 것은 인연인 것 같아요. 제가 받은 마음을 다음 세대에 잘 이어주고 싶습니다.”
이제 김련이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높이 올라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길을 함께 만들고 다음 세대에 이어줄 것인가이다. 사업과 가족, 실패와 도전, 봉사와 인연으로 이어진 그의 려정은 받은 마음을 나누고 서로 다른 문화를 련결하며 오늘의 인연을 래일의 가능성으로 잇는 길이다.
오래도록 따뜻한 울림을 남기며 사람과 미래를 잇는 것. 그것이 김련이 걸어온 길이자 앞으로도 이어 갈 ‘따뜻한 공명’이다.
/동북아신문 리동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