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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가을 계곡 - 성송권

2026-10-27 13:26:29

금추 시월이다. 산과 들이 온통 가을로 물들어간다. 붉은 단풍이 산에 타오르고 들판에서는 황금색 벼파도가 바람에 넘실거린다. 오늘도 나는 배낭을 달랑 메고 내가 몸 담그고 있는 연변 진달래산악회를 따라 등산길에 나섰다.

도문시 량수향 석두촌의 동북쪽에 위치한 청계동 골안의 그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산천을 정답게 울리며 흘러내리는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온다.

맑은 계곡에서 쏟아져내리는 물은 바닥의 돌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비추며 흐른다. 때론 흐르면서 회오리를 이루고 맑다 못해 유리처럼 투명하다. 지어는 돌의 무늬, 돌틈에 난 파란 이끼까지 완미하게 눈에 비껴온다.

바람이 나무숲 가지 사이로 스치면 물결이 일어나 눈부신 해빛을 부서뜨려 은근슬쩍 은빛으로 반짝이고 흐름이 빠른 곳에서는 돌에 부딪쳐 하얀 물갈기를 날리며 무언가를 속삭이듯 흘러간다.

계곡물은 맑아보여도 언제나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다. 겉은 투명하나 그 흐름 속에는 수천년 이 땅의 숨결이 담겨있다.

산천계곡의 맑은 물은 깊은 산속에서 샘으로 솟은 뒤 울창한 숲사이를 지나온다. 그 샘물이 하도나 맑아 손을 물에 넣으면 손가락 륜곽이 물 너머로 또렷하게 보인다. 물이 하도나 맑아 더러워질가 물에 손을 넣기도 부끄러워진다.

물이 흘러내리면서 이룬 고요한 웅덩이는 마치 멈춘듯 고여있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회오리를 이루고 아주 느리게 흘러가며 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한여름 물에 들어서면 뼈 시린 차가운 기운이 물에서 솟아나와 종아리를 시원하게 감싸지만 한겨울 사나운 눈보라에 계곡이 하얀 얼음으로 뒤덮혀도 얼음 밑에서는 물이 흘러가는 우렁찬 소리가 잠자는 산천을 깨우고 어떤 곳에서는 뽀얀 안개를 피워 올리며 따뜻한 샘으로 솟아 나무가지에 서리꽃을 하얗게 피워 새봄을 당겨온다.

지금은 금추의 시월이다. 가을 단풍잎이 물우에 떠서 맑은 물에 천천히 떠내려간다. 물은 말없이 모든 걸 비추고 이 가을을 품은 채 끊임없이 흘러간다. 한폭의 해묵은 세월의 수채화 같다.

가을의 눈부신 해살이 나무가지 사이로 내리쬐면 맑은 계곡물은 더 투명해진다. 물밑의 둥근 돌들은 오랜 세월 물에 부딪혀 모서리가 부드러워졌고 푸른 이끼가 돌 표면에 얇게 돋아있다. 물결이 지나갈 때마다 돌 그림자와 물가의 병풍처럼 선 안절벽, 흰 봇나무 가지의 진붉은 단풍나무잎이 바람에 흔들려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물은 맑지만 언제나 고정된 모습은 없다. 때로는 잔잔한 거울이 되고 때로는 푸른빛 물이 돌바위에서 쏟아져 부서지는 빛이 하얀 물갈기로 변한다.

그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면 세상의 시끌벅적이는 복잡한 마음도 이 계곡의 물처럼 깨끗하게 씻겨 내려갈 것만 같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찌꺼기가 저도 몰래 마음에 쌓여가게 된다. 직장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 사람사이의 오해와 갈등, 사업의 실패로 오는 좌절과 실망, 지나간 일의 아쉬움과 참회들이 마음 한구석에 겹겹이 쌓인다.

바쁜 일상을 한번 내려 놓고 산천 계곡을 찾아 흘러내리는 정다운 물소리를 듣고 조용히 흘러내리는 저 계곡물을 보면 문득 깨닫게 된다.

물은 아무 것도 붙잡지 않는다. 락엽이 떨어지면 함께 흘러가고 폭우에 흙탕물이 섞여도 같이 흘러가며 가라앉혀 다시 맑아진다. 우리의 마음도 그래야 하지 않을가.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흐름이 막히고 마음이 탁해질 뿐이다.

계곡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데로 흐른다. 돌바위가 가로막아 힘들어도 에돌며 멈추지 않고 돌에 부딪혀 분신쇄골이 돼도 갈기를 날리며 길을 찾아 나간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남의 속도에 맞춰 서두르다 보면 정작 자기 마음의 깨끗한 맑음을 잃어버린다.

내가 가을 계곡을 찾는 것은 단순한 등산 목적만이 아니다. 물소리를 듣는 리유는 빠르게 흐르는 세상속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기 위함이다.

물은 흘러가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으로 흘러가고 바다로 향하고 물안개를 피워 올려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여 산천계곡 물이 되여 흐른다. 끝이 있는듯 하지만 끝이 없는 순환의 생명이다.

우리의 생명도 그런 순환 속에 존재한다. 지나간 슬픔도 기쁨도 모두가 세월 속에 흘러가지만 그 흔적은 마음속에 남아 우리의 마음을 더 굳건히 한다.

맑은 저 계곡물은 바라보는 나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모든 것을 붙잡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맑게 유지하라고 한다.

어느덧 깊은 산속의 해가 기울어져간다. 산을 하산할 때 뒤돌아보면 계곡물은 여전히 산천을 정답게 울리며 힘차게 흐르고 있다. 내가 떠나도 물을 멈추지 않는다. 자연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지만 잠시 내 마음을 씻어주는 정화하는 선물이 된다. 얼마나 정답고 고마운 자연인가.

금추 시월의 이 아름다운 가을, 내가 량수향 석두하자 계곡에서 본 맑은 시내물의 기억이 먼 후날 복잡한 여생의 나날에 내 마음 한구석을 맑게 비춰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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