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아파트 9층에 누워
하늘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근처의 층집들이 막아서서
나를 아래로 내려다본다
사방 층집들 어깨를 겯고 서서
4각형 틀속에 갇힌 우물같은
작은 푸른 하늘 하나 내놓는다
나는 줄곧 집안에 있었지만
마치 금방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깊은 우물 속에 빠진 느낌이다
착각은 짧은 한순간의 일이지만
세인들을 웃긴 우물안 개구리가 된듯
나는 상처입은 시선을 걷어들여
하늘이고 층집이고 모두 지워버린다
왜화 한포기
자유를 빼앗긴
키 높은 담벽안 양지쪽
왜화(矮花) 한포기
갓난애기 생명처럼 웃고 있다
누구의 피처럼
저 홀로 웃고 있는
그 모습
이 세상 풍운이
다 모여 딴 세상인
그 담벽아래
꽃이 피면 꽃이 피면
누군가 올 수 있을가
아무리 쳐다봐도 꽃일 뿐이다
너의 눈
–첫사랑 서혜(徐慧)씨에게
누구는 너의 눈을
미소하는 별이라 찬미했고
또 다른이는 너의 눈을
잴수없이 깊은 호수라 노래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너의 눈이
영낙없는 기관총구다
너의 눈의 무서운 사격에
관통상을 입은 나의 가슴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물줄 모르고 그냥
아리고 쓰린 비애가
뚝뚝 떨어진다
너는 코스모스
어느 가을
어느 들길에서
스쳐지난
안 잊히는 얼굴
목이 길어
슬퍼보이던
몸매 섬약한
그녀
서리철을 앞두고
기다림으로 성숙한
이름처럼 청신한
너는
코스모스
기적
수많은 사람 속에서
단둘이 만나고
수많은 씨앗 가운데
오직 나만 피여났다
한순간만 달랐어도
나는 없었을 텐데
희박한 확률 넘어
지금 여기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