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떡비
가을비가 내리면
동네 처녀들 오손도손 모여앉아
햇곡식으로 떡을 빚을 빚으며
웃음판을 벌렸지
가을비는 술비
동네 총각들
우산쓰고 처녀를 찾아와
떡동냥 감주동냥 했었지
오늘도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우산을 찾는데
빛바랜 희미한 추억이
우산 속에서 걸어나오네
떡 빚는 솜씨가 일품이고
인물도 고운 쌍가매 영희
감주 한사발에 얼굴에 빨개져
놀림을 받던 코풀래기 철수
그리고 깜둥이 홍남이
아 못견디게 그립다
고향의 짜개바지 친구들
세월에 빼앗긴 내 청춘
11월이 되면
11월에 력서장을 마주하면
마주보는 1이라는 수자들이 부럽다
11월에 력서장을 마주하면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손잡아주시던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이제는 하늘나라 산책에
익숙해지셨는지
일은 일답게 하고
놀아도 멋지게 놀라시던
선생님 그 말씀이 메아리치는 11월
내가 걷는 지금 이 길이
과연 바른 길이 맞는지
나는 살면서
버려야 할 것들도
잔뜩 짊어지고 가는 건 아닌지
11월이 되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하도 많아
언제든 시시한 질문조차
밉다 하지 않으시던 선생님이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꿈이라도
어제 내게
굉장한 사건이 생겼다
글쎄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내가 턱 서있는게 아닌가
꿈일 거라고 생각하며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꿈이 맞았다
꿈에서도 꿈인 줄 알아버렸는데
전혀 꿈같지 않았다
첫사랑 금단이를
안으려던 찰나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영수가
–야, 임마 꿈 깨!
소리쳐서 기분 한번 더러웠다
(쟈식, 죽어서까지 훈계질이군!)
근데
어벌큰 꿈은 꾸면 안되는 걸가
꿈에라도 노벨상 받으면 안되는 걸가
아 맞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 했지
에잇 그럼 내 노벨상은 물 건너간 셈인가
아무튼 꿈에라도 받아봤으니
기분이 한결 좋다
진짜 부자
돈 많은 사람만
부자라 하는 줄 알았는데
나를 부자라 한다
무일푼인 내가 왜 부자여야 하는지
부족한 게 너무 많은 내가
왜 부자여야 하지
환갑을 훌쩍 넘겼는데도
흰머리 한대 없다고?
실면 한번 해본 적 없다고?
근심걱정 하나 없다고?
아파본적 없어서
병원 문고리를 모르고
마누라 잔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정말 싱거운 놈인데
담배 피우는 법 끝내 배워내지 못하고
술 먹고 남자답게 한번쯤
취해본 적도 없는 놈인데
아 맞다
웃는 재간은 있지
그래서 마음부자 건강부자라는 건가
부자가 꿈이였는데
그 꿈 이미 이룬 줄 몰랐으니
난 참 시시한 놈이다
젠장
욕
날마다 욕이 밥인
부부가 있다
밖에 나가면
남들한테 욕 먹고
집에 오면
서로에게 욕을 주고 받는다
아이를 낳으며
욕까지 낳은 걸가
애들마저 정말 착실하게
자각적으로 욕벌이를 한다
온집식구는
욕은 욕대로 먹고도
밥은 밥대로 먹는다
어른들은 큰 욕을 먹고
아이들은 작은 욕을 먹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욕을 먹지 않는 날은
얼마나 심심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욕을 먹지 않는 것도
욕이 될 수 있다
미쳐라
그대 지금 청춘인가
그럼 그대로 미쳐라
무엇이 두려워
미치는 걸 주저하는가
눈치만 보는가
그대 청춘이라면
청춘으로 살고 싶다면
지금 미치라
미쳤다는 건 청춘의 이름표이다
일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부조리를 넘어가주지 못함에 미치라
그대 지금 청춘인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미칠 때이다
목욕
목욕을 한다
생각에 잠긴다
목욕은 왜 하는 걸가
시킨 사람도 없는데
윽박지른 사람도 없는데
여름에는 땀이 나서 했다치고
일을 마치고는
더러워서 했다치고
요즘처럼 빈둥거리며 놀고
계절따라 가을인데
굳이 목욕할 리유가 있는가
몸을 씻을 거면
욕심도 씻어버리면 안 될가
목욕을 하며
생각을 씻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