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사절이다.
함께 교단에 섰던 몇몇 친구들이 어렵사리 한자리에 모였다. 퇴직한 지 벌써 15년. 출근할 때는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매일 마주 앉아 교안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때로는 함께 웃고 울면서도 그것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퇴직과 함께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학교에 갈 리유도, 매일 만날 사람도 사라졌다. 첫 모임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의 적막함과 그리움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렇게 2년에 한번씩은 꼭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세월은 약속보다 빨랐다. 자식을 따라 연해도시로 떠난 친구도 있었고 한국으로 돈을 벌러 간 친구도 있었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서로의 소식도 뜸해졌다. 그렇게 십년이 흘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친구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수수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모두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그중에서도 선옥 선생님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굵은 금목걸이, 금팔찌, 금빛 시계줄, 명품 가방에 세련된 옷차림까지.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선옥 선생님, 완전히 귀부인이 됐네.”
누군가 감탄하듯 말했다. 선옥 선생님은 손으로 목걸이를 살짝 만지며 웃었다. 그런데 그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선옥의 화려한 차림에 눈이 팔려 그 작은 떨림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보았다.
옥자 선생님은 원래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성격이였다. 그래서 그 말이 더 아팠다.
“이것들 다 합치면 집 한채 값은 되겠어요.”
옥자 선생님이 선옥의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가짜 아니예요?”
순간 방안이 조용해졌다.
선옥 선생님의 손이 목걸이에서 멈췄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옥자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았다.
“영옥 선생님, 남편이 금은방 한다면서요. 이런 건 잘 알잖아요. 한번 봐줘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천천히 선옥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다. 목걸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걸쇠 안쪽에 작은 표시가 있었다. 나는 그 표시를 알고 있었다. 남편이 금은방을 하면서 나는 오래 포장과 감정을 도왔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 표시는 가짜라는 뜻이 아니였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것은 진짜 금을 일부러 가짜처럼 보이게 손본 흔적이였다. 나는 그걸 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선옥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서 나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자랑이 아니였다. 두려움이였다.
문득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거짓말을 해요? 철수네 집에 갔을 때 아침 안 먹었는데 먹었다고 했잖아요.”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예술적인 거짓말이야.”
“예술적인 거짓말이 뭐예요?”
“우리가 안 먹었다고 하면 철수네는 우리에게 밥을 차려주겠지. 그러면 그 집 식구 중 누군가는 먹을 밥이 줄어들 수도 있잖니. 남을 생각해서 하는 거짓말도 있단다.”
그때는 그 말을 리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은 어머니의 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다시 목걸이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남편이 금은방 일은 했지만 나는 포장이나 조금 도와줬어요. 금품 감정은 잘 몰라요.”
“그래도 한번 봐봐요.”
옥자 선생님이 재촉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겠어요.”
방안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럼 됐네. 진짜든 가짜든 뭐 어때요. 오늘은 교사절인데.”
누군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선옥 선생님도 따라 웃었다. 그제야 방안의 공기가 다시 풀렸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젊은 날의 이야기를 꺼내고 서로의 끼를 자랑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선옥 선생님도 누구보다 크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웃음이 어딘가 조금 위태롭다는 것을.
집으로 돌아와서도 목걸이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거짓말이 옳았는지 생각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선옥 선생님이었다.
“영옥 선생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뭘요.”
“모른다고 해줘서요.”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옥 선생님, 무슨 일이 있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사실…… 그거 진짜예요.”
나는 눈을 감았다. 역시 그랬다.
“그런데 왜 가짜처럼 보이게 하신 거예요?”
“가짜라고 말한 적은 없어요. 다만…… 사람들이 가짜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어요.”
“왜요?”
“진짜라고 알면, 누군가 가져갈까 봐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그날 밤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나는 선옥 선생님의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나를 보고 놀랐다.
“영옥 선생님이 여긴 웬일이에요?”
“차 한잔 얻어 마시러 왔어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벽지는 군데군데 낡아 있었고 식탁 우에는 병원 령수증과 약봉지가 놓여 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오래된 가방들이 쌓여 있었고 그중에는 어제 선옥이 들고 나왔던 명품 가방도 있었다. 하지만 가방의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손잡이에는 깁스처럼 보이는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옥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도박을 했어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조금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빚이 생기고 그 빚을 갚으려고 또 빚을 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시부모님도 계셨고 시동생들도 있었어요. 모두 우리 부부만 바라봤어요. 제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에도 가셨던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벌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빚은 더 늘어 있었어요.”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제 그렇게 화려했던 얼굴이 오늘은 무척 작아 보였다. 선옥 선생님이 목에 손을 가져갔다.
“이것 하나만 남았어요.”
나는 그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마지막에 남긴 거예요. 이것만은 팔지 말라고 했어요. 정말 어려워지면 그때 팔아서라도 살아가라고.”
“그런데 왜 가짜처럼 보이게 하신 거예요?”
선옥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들이 진짜라고 알면 빚쟁이들이 가만있겠어요?”
그녀는 한참 동안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겉으로는 값비싼 장신구처럼 보이게 하고 가까이 보면 가짜처럼 보이도록 손을 봤어요. 어제 그 자리에서도 계속 손이 떨렸어요. 누가 알아챌까봐, 또 누가 알아채 주길 바라면서……”
“알아채 주길 바라셨어요?”
“네. 아무도 몰라주니까. 다들 나를 부러워만 하니까. 아무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주니까. 그래서 누군가 한명이라도 ‘이건 가짜야’라고 말해주길 바랐어요. 그래야 내가 ‘응, 가짜야. 나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런데 어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10년만에 만나는 자리잖아요. 다들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만 초라하게 가면…… 싫었어요.”
“그래서 있는 돈을 털어 옷도 사고 가방도 사고 이것도 다시 손보셨군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잘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녀가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울음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어제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것은 선옥 선생님의 삶이 아니였다. 그녀가 애써 만들어낸 삶의 겉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선옥 선생님.”
“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요.”
그녀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손등 우로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가 말했던 “예술적인 거짓말”. 어린 시절에는 그것을 그저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진실보다 더 아픈 순간이 있다는 것을. 모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정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한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모른 척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날 내가 한 말도 거짓말이였다. 나는 목걸이가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걸쇠 안쪽의 표시를 보는 순간 알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선옥 선생님을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선옥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영옥 선생님, 그날 고마웠어요. 이제는 남들에게 잘사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으려고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볼게요.”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요. 우리, 다음엔 조금 더 편하게 만나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창밖에는 저녁빛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목걸이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금의 무게는 쉽게 잴 수 있다. 몇돈인지, 얼마짜리인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얹힌 무게는 저울로 잴 수 없다.
말하지 못한 사정의 무게. 감추어 둔 눈물의 무게.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끝내 입밖으로 내지 않은 진실의 무게.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어머니에게 속으로 말했다.
‘엄마, 나도 오늘 거짓말을 했어요.’
잠시 뒤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도 네가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날 처음으로 거짓말이 꼭 가벼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