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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팔바지 유근순

2026-10-19 10:03:51

세월은 물처럼 흘러도 류행은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했던가. 요즘 젊은이들의 허리춤에서 다시 널적한 바지가 류행이라고 하니, 흘러간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나팔바지’는 단순한 류행의 아이템이 아니였다. 그것은 나의 젊은 날의 땀방울이였고 자식들을 밝은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바느질 끝에 새겨 넣었던 희생의 기록이였다.

1990년대 후반, 연길의 거리는 한국 문화의 영향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영화배우들이 입은 멋진 주름치마식 나팔바지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시절이였다. 당시만 해도 수입 패션은 사치였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였다. 나는 그때 담배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담배잎의 독한 냄새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마치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 하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하루는 해가 지고 나서야 시작되였으니까.

우리 집 안방은 밤이면 작은 의류 공장이 되였다. 당시 수입된 나팔바지를 보고 나는 그 디자인을 눈에 새겼다. 허리에 주름을 잡아 깔끔한 실루엣을 살리고 밑단으로 갈수록 나팔처럼 활짝 벌어지는 력동적인 핏이 돋보이는 세련된 주름치마식 나팔바지, 그것이 내가 목표로 한 상품이였다. 연길 서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튼튼한 원단을 손질하고 자투리 천을 리용해 샘플을 만들었다.

해가 지고 아이들이 잠든 뒤, 내 손은 가위와 재단칼을 잡았다. 낮에 담배 공장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고 나면 어깨는 뻐근하고 손마디는 쑤셨지만 봉황표 재봉침 미싱을 올리는 순간만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름을 놓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앞치마 주름을 깔끔하게 세우고 허리 라인을 잡아주는 과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조금만 삐뚤어져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니까.

나는 밤마다 미싱기 소리와 씨름했다. “째깍, 째깍”, “웅웅웅”… 쉴 새 없이 아래우로 오르내리는 재봉침과 그 웅웅거리는 미싱 소리는 밤새워 나팔바지를 만들던 내 유일한 위안이자 자식들을 키워낸 사랑의 리듬이였다.

하지만 손끝이 미싱에 스치거나 바늘에 찔리는 일도 흔했다. 피가 배여 나오면 그냥 헝겊으로 닦아내고 다시 박차를 가했다. 졸음이 쏟아질 때면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보통 새벽 3시가 넘어서서야 완성된 작품들이 쌓여갔다. 그 시간이면 동네의 개들조차 잠적한 고요한 시간, 오직 나와 미싱 그리고 완성되여가는 나팔바지만이 깨여 있었다.

동이 틀 무렵, 나는 밤새 만든 나팔바지를 짐보자기에 차곡차곡 쌌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묵직한 짐보자기를 짊어지고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의외로 가벼웠다. 시장의 옷가게 주인은 내가 가져온 바지들의 핏을 보고 흡족해했다. 류행을 뒤쫓아가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내가 만든 나팔바지는 꽤나 인기 있는 상품이 되였다.

“이 바지, 허리 주름이 정말 예쁘네. 어디서 만든 거요?”

상인들의 칭찬과 더불어 건네진 돈장은 뜨거웠다. 그 돈은 내 피와 땀이 녹아든 고생의 대가였다. 하지만 그 돈을 쥐였을 때 느껴지는 보람은 그 어떤 피로보다 큰 것이였다. 나는 시장에서 바지를 팔고 돈을 받아 속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넣은 뒤 빈침으로 고정하고 재빨리 은행으로 향하여 아이들 학비로 내야 할 통장에 한푼한푼 저축하였다.

그렇게 모은 돈은 온전히 아들딸들의 교육비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화려한 옷을 사줄 여유는 없었지만 그들에게 ‘배움’이라는 가장 귀한 옷을 입힐 수 있었다. “아버지(어머니)가 밤을 새워 가면서 만든 돈이니 너희는 공부를 해서 남보다 앞서가라.”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내 밤새 울리던 미싱 소리가 그런 말을 대신했을 것이다.

아들은 대학 문을 통과했고 딸 또한 학문의 길로 나아갔다. 그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아 들고 방긋 웃는 모습을 본 날, 나는 비로소 긴 세월 동안 해오던 밤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굽은 허리와 굳은살 박인 손가락은 결코 화려한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내가 만든 나팔바지 자락에 태워져 훨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다.

지금도 가끔 책장을 정리하다가 옛날 자료 사진을 보면 그 시절 청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허벅지를 부풀린 나팔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젊은이들, 그들 중 누군가는 내가 새벽 3시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만든 바지를 입고 대학 입시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해 나팔바지는 이제 지나간 류행이 되였지만 내게 그것은 밤을 지새우며 바느질 끝에 박아 넣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였다. 담배 공장의 먼지와 새벽 미싱 소리 그리고 시장의 분주함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 나팔바지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류행할 것이다.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낸 그 치렬했던 밤들의 가장 뜨거운 증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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