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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랑은 길을 내여주는 일- 리자성

2026-09-24 09:28:55

책은 오래 덮여 있었지만 문장은 나보다 먼저 늙어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나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다시 펼쳤다가 한 문장 앞에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사랑하라. 그러나 서로를 속박하지 말라.”

젊은 날의 내가 이 문장을 만났더라면 아마 아름다운 문장 하나쯤으로 읽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예순을 넘긴 지금 이 문장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책을 덮은 뒤에도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살다 보면 어떤 문장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번이고 되짚어 읽은 뒤에야 비로소 그동안 살아온 자기 삶을 읽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그 문장이 바로 그랬다. 문장을 붙잡고 오래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문득 내 삶 가까이 머물렀던 세 사람이 떠올랐다.

안해와 딸 그리고 아버지.

나는 열아홉에 교단에 섰다. 아이들과 나이 차이보다 세상을 모르는 차이가 더 컸던 풋내기 교사였다. 낮에는 분필을 들고 교탁 앞에 섰고 밤이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이 모두 내 것인양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일하는 법은 조금 알았을지 몰라도 사람을 사랑하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젊은 날의 술은 외로움을 감추는 법쯤은 가르쳐 주었지만 누군가를 품는 법까지는 가르쳐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무렵 내게도 목숨처럼 품었던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은 내 마음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였다. 부모님의 뜻은 내 뜻과 달랐고 내가 영원이라 믿었던 사랑은 끝내 계절 하나를 넘기지 못한 채 내 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였다. 내가 잃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여줄 것이라 믿었던 젊은 날의 오만이였다는 것을.

나는 스물아홉에 결혼했다. 남들은 늦었다고 했지만 인생은 늘 뒤늦게 정답을 알려준다. 젊은 날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과 끝까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복인지 조금씩 알게 되였다.

안해는 착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반듯한 사람이었다. 나는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였고 안해는 말없이 집안을 지키는 사람이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과 습관을 세월이라는 바늘로 한땀씩 꿰매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안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성경책 하나를 품에 안고 조용히 현관문을 나서는 뒤모습이 처음엔 낯설었고 솔직히 불편했다. 화를 내기도 했고 사람들을 동원해 말려보기도 했으며 심지어 리혼이라는 말로 겁을 준 적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안해의 믿음이 아니였다. 한때 나만 바라보며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고 다른 힘으로 자기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리고 어느새 스무해가 흘렀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안해는 조용히 집을 나서고 나는 운동화를 신고 집 근처 길을 걷는다.

젊은 날의 나라면 이것을 균렬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사랑이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면서도 해 질 무렵 함께 돌아올 집 하나를 남겨 두는 일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내게 가장 먼저 가르쳐 준 사람은 어쩌면 안해가 아니라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

내 결혼식 날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하루밤 사이 마을은 하얗게 잠겼고 길과 논뚝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눈이 쌓였다. 북적이는 잔치집에서 이상하게 아버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을어귀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래(나무로 만든 눈 치는 삽)로 눈치는 소리를 들었다.

눈발 사이로 개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눈보다 먼저 길을 열고 계셨다. 내 아들이 떠나는 길에 차가 들어오지 못할가 봐, 새 삶으로 가는 길이 막힐가 봐 아버지는 새벽부터 홀로 길우에 서 계셨던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셨다. 대신 말없이 보여주셨다. 사랑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이 자기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먼저 길우의 눈을 치워 주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는 딸 하나가 있다. 아이는 유난히 철이 빨랐다. 공부하라 말하지 않아도 자기 몫을 알아서 했고 부모가 걱정하기 전에 오히려 부모를 먼저 챙길 줄 알았다. 아직도 눈 오는 날의 한 장면이 선명하다.

소학교에 갓 들어간 딸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학교 앞에 도착한 아이가 문득 뒤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돌아갈 때 조심하세요.”

그 한마디에 나는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나는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이도 나를 아버지로 키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세월은 아이를 자라게 하고 부모를 늙게 한다. 딸은 자라 자기 사랑을 만났고 자기 발로 자기 세상을 선택했다.

딸의 손을 놓아주던 날, 나는 비로소 그 문장의 뜻을 리해하게 되였다.

“그대의 자녀는 그대의 자녀가 아니다.”

그래, 맞았다. 딸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였다. 다만 한동안 내 품에 머물러 주었고 내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배울 수 있도록 자기 시간을 잠시 내여주었을 뿐이였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걷는다.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도 함께 걷는다. 젊은 날에는 몸도 내 것인 줄 알았고 안해도 딸도 사랑도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은 조용히 가르쳐 주었다. 내 것이라 믿었던 것들 가운데 처음부터 진짜 내 것이였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상하게도 놓아준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붙잡고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깊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걷다 보면 가끔 눈 오는 날이 떠오른다. 개털모자를 눌러쓰고 말없이 길을 여시던 아버지의 뒤모습. 또 자기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안해의 발걸음, 그리고 내 손을 놓고 자기 하늘로 날아간 딸의 뒤모습. 그 세 뒤모습이 한장면처럼 겹쳐 보이는 날이면 나는 다시 그 문장을 떠올린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사랑이란 가지는 것이 아니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몫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말없이 먼저 그 길우의 눈을 치워 주는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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