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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건너지 못했던 강- 엄분자

2026-09-16 15:55:09

집 근처 해변가로 산책을 나섰다. 시원한 바다바람을 깊이 들이키며 초록이 짙게 우거진 생명공원을 지나면 눈앞으로 푸르른 송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네에 몸을 맡긴 채 흔들흔들,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대련 앞바다를 떠돌고 있다.

남편은 아들이 태여난지 여덟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먼저 일본으로 떠났다. 시부모님은 “우리가 아이를 돌볼 테니 너도 가서 남편과 같이 돈 많이 벌고 오너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나는 20년간 몸담아 온 교직을 쉽게 놓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아들을 직접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욕심도 있었다. 더 큰 도시에서,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 환경을 주고 싶었다. 학교생활은 점점 단조로워졌고 남편과의 리별도 길어질 듯했다. 결국 나 역시 일본행을 결심하게 되였다.

현실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비자 수속비만 해도 고향집 한채 값이였다. 망설이고 있을 때 어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 집 팔자. 우리는 친척 집에 얹혀살면 된다. 너는 너의 길을 가거라.”

그 말 앞에서 나는 끝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물은 말보다 먼저 흘러내렸다.

남동생이 사는 대련에 머물며 일본어를 다시 배웠다. 두세달 동안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마침내 수속이 끝났다는 련락을 받았다. 곧바로 출발해야 한다는 소식이였다.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을 목이 꺾이도록 끌어안고 통곡하며 작별한 뒤 집 한채를 판 돈을 안고 다시 대련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드디여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속비는 일본에 도착한 뒤 지불하기로 하고 남동생에게 맡겨 두었다. 브로커는 연신 “걱정 말고 돈만 잘 준비하라”고 했다.

비행기는 커다란 굉음을 내며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솟구쳤다. 창밖 아래로 대련 앞바다가 점점 멀어져 갔다. 드디여 소원대로 바다 우를 날아 남편에게 가는 길이었다. 전날 통화에서 남편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래일 자기 오면 누나가 킹크랩이랑 대게까지 사서 잔치 벌여 준대. 하하.”

일본에 도착하면 남편과 함께 3년만 악착같이 돈을 벌고 돌아와 바다가가 내려다보이는 대련에 번듯한 집을 마련할 계획이였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소학생이 된 아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 남편이 예전에 하던 양꼬치 가게를 작게나마 다시 열 생각이였다. 장사가 잘 돼 체인점까지 내고,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며 우리 가족은 오래도록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꿈같은 미래를 그렸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질 즈음, 기내 방송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나토다 공항 도착 안내였다.

수화물 검사대를 무사히 통과한 뒤 마지막 관문인 비자 검사대에 섰다. 검사 요원은 비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일본어로 무언가를 물었다.

몇달 동안 익혔던 일본어는 머리 속에서 새처럼 흩어졌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 뜬 소경’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뒤에 늘어선 줄은 길어졌고 나는 조용히 검사대 옆 사무실로 안내되였다.

잠시 후 한국인 통역사가 들어섰다. 숨이 트였다. 검사 요원은 통역을 통해 회사에 대해 꼼꼼히 물었고 나는 브로커가 알려준 대로 차분히 답했다. 이번만큼은 무사히 지나가리라 믿었다.

하지만 한참 뒤, 통역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맑은 하늘을 찢는 천둥같았다.

“그런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검사 요원은 내 려권에 검은 도장을 거칠게 찍으며 그날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남편의 얼굴도 공항 밖의 해살도 모두 아득해졌다. 가슴 안에서 무언가 ‘쿵’하고 무너져 내렸다.

동생에게 맡겨둔 집 한채 값이 떠올랐다. 브로커는 도착 후 두시간만 지나면 통과할테니 돈을 건네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미 네시간도 훌쩍 지나 있었다.

사복 차림의 일본 경찰이 나를 항공편 대기 구역으로 안내했다.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어 공중전화를 써야 했다.

나는 남은 용기를 끌어모아 서툰 일본어로 말했다.

“전화… 집에 해도 될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전 하나를 건네주었다.

전화가 련결되자마자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말했다.

“돈 건넸어? 나 못 들어갔어. 오늘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 절대 돈 주지 마. 절대로.”

전화는 곧 끊겼고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때 경찰이 생수 한병을 사다 건네주었다.

그 물병을 받아 든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불과 문 하나만 더 지나면 일본 땅이였다. 남편은 그 문 너머에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집은 이미 팔렸고 학교에는 조기 퇴직을 신청한 상태였다. 내 삶의 계획과 희망은 그 문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 후에도 다른 길로 일본에 가보려 했지만 운명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편찮아지셨고 나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교단으로 돌아왔다.

생(生)의 전부를 단 하나의 문턱에 걸어야 했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신화가 되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나는 너무 간절하고 박절하였다. 

건너지 못한 강은 오래동안 내 안에서 겨울강처럼 얼어 있었다. 그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물살이 쉼없이 흘렀다. 시간이 해살처럼 내려앉자 얼음은 소리없이 풀렸다. 상처는 강바닥의 자갈처럼 둥글어졌다. 이제 그 우로 흐르는 것은 후회의 물결이 아니라 세월이 다듬어 놓은 잔잔하고 고운 물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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