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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다른 계절의 강 (외 3수) - 김동활

2026-09-11 14:10:03

1
나루터에 배 한척
무게만 남긴 채 멈췄다
강물은 스러진 달을 씻어낸다
네 산자락에 진달래가 타오를 때
내 발치엔 서리발이 박혔다
같은 수면일지라도
반사되는 달은
서로를 비추지 않는다


2
내가 대나무 잎에
바람을 묶던 그 시선
네 눈동자는 이미
가을 안개 저편에 있고
네 치마자락에
여름비가 내리던 그날
내 그림자는
눈밭을 지나가버렸다
한줄기 바람에도 우린
서로의 숨결을 나누지 못한다


3
산그늘 저 켠
매화가 서리를 풀면
들판 억새는
밤바람을 베여낸다
강은 늘 제자리로 돌아오고
사람은 건너지 못하는 강가에서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히듯
너와 나는
겹치지 않는 좌표로 흐른다


나를 대신할 국화


1
낡은 엔진, 소음을 삼킨 후
차는 황혼의 주차선 안에 멈춘다
달려온 길의 먼지는
다방 의자 다리에 흘러내린다


2
차잔 테두리에 맺힌 노을을
무거운 입술로 밀어 올릴 때
창틀에 걸린 구름은
굳은 시간과 옛 말을 속삭인다


3
잔 벽에 붙은 록차 한잎 시들면
지는 해살에 주름이 생겨난다
서운한 세월, 그 늪에 잠긴 나는
창유리에 압착된 국화를 본다


4
그 꽃잎에 부탁 한번 해볼가
내 머리카락 대신
너의 겹겹이 곱슬 속으로
천천히 나이를 더해다오


풍경일 뿐


1
젊음은 바람이여라
넓은 들판 가로지르는 바람
붉은 치마자락 펄럭이며
언덕 너머 길이 접힌다


2
귀에 남은 노래소리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고
나는 멀리서
풍경을 들여다본다


3
진달래꽃도
이제는 들 속의 꽃일 뿐
해는 느릿느릿
들끝으로 굴러간다


눈사태


고요한
비탈에 쌓이던
수만, 수억의 눈송이
하나의 흰 거인으로 굳어간다
가장자리, 한잎 눈이 흔들리자
단단한 층들의
경계가 무너지고
눈덩이는
굴러가고
부서지고
뒤섞이며
쏟아진다
쿵,
산의 숨통이
막혀지는는 순간
하얀 먼지 속으로 세상이 묻힌다
멈춘 언덕의 새 륜곽에 모든 눈송이는
차가운 숨을 고르지만 그 골짜기엔
아직 그날의 울음이 맺혀 있다
산비탈 주름마다
그 울음이
투명한
얼음꽃으로 피며는
산은 그 자리에 서서
흩어진 조각으로
새 계절을 빚고
다시 한번
흰 거인의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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