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国内统一刊号: CN23-0019  邮发代号: 13-26
흑룡강신문 > 문화·문학

[수필] 책이 울고 있다 - 신석운

2026-09-03 12:17:08

녹이 슨 열쇠가 좀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몇번이고 열쇠를 돌린 끝에야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어둠이 내려앉은 집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15년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집이였다.

문을 여는 순간 묵은 습기 냄새와 퀴퀴한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와 코를 찔렀다. 마치 오래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집이 나를 원망하듯 품고 있던 냄새 같았다. 나는 서둘러 량쪽 방과 주방, 객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도 냄새가 가시지 않아 한동안 밖에 나와 서있었다.

지난 8월 13일, 월급이 들어오는 은행이 변경되면서 교육참의 통지를 받고 10년 만에 무순의 집을 찾은 길이였다. 한참 뒤 다시 집안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조금씩 냄새가 옅어져 있었다. 나는 무심코 집안을 둘러보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나는 천천히 책장 앞으로 다가가 책 한권을 꺼냈다. 손끝에 낯익은 책의 감촉이 닿았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곰팡이가 피여 있었고 하얗던 책장은 누렇게 변색되여 있었다. 책장 주변에는 먼지가 굳어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10년동안 내가 돌아오지 않는 사이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책들은 젊은 날의 나와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꿈을 꾸었던 책들이였다. 나는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책들이 지난 10년동안 나를 기다리며 울고 있었던 것은 아닐가.

안해는 집안을 정리하면서 고물상에 전화를 걸었다. 주방용품이며 옷장 속의 옷, 텔레비전과 각종 가구들을 모두 가져가라고 했다. 20분쯤 지나 고물상이 찾아왔다. 안해는 돈 한푼 받지 않고 가져가라고 했다. 고물상 주인은 고맙다며 물건들을 하나씩 밖으로 날랐다.

그런데 마침내 고물상이 책까지 실어가려고 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만은 가져가지 마세요.”

안해도 내 마음을 아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책들을 하나씩 자루에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큰 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책꽂이에 꽂았다. 그리고 내가 신문에 발표했던 글들도 하나씩 정리했다.

《장백산》, 《연변녀성》, 《송화강》, 《진달래》 등 잡지들도 다시 차곡차곡 쌓아 비닐로 덮어놓았다. 이 책들은 단순한 종이 묶음이 아니다. 내가 스물다섯살 때부터 20여년 동안 한권 한권 모은 재산이다.

그 속에는 료녕조선문보 문예편집부 편집장이셨던 김광명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신 여섯권의 조선말사전도 있다. 또 료녕신문 림금산 기자님께서 생전에 보내주신 문학집과 글쓰기 요령에 관한 책들도 있다.

나는 해마다 월급을 받으면 잡지를 주문했다. 한달에 열두권씩 받아 손으로 구멍을 뚫고 굵은 실로 꿰맨 뒤 화보를 오려 책 표지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책 한권 한권에는 젊은 날의 땀과 꿈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그때 나는 방 청소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한달에 한번씩 꼭 책의 먼지를 털고 정리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작은 서점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연장을 빌려가지는 않았지만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많았다.

《삼국연의》, 《수호전》, 《홍루몽》, 《서유기》, 《붉은 바위》, 《림해설원》을 비롯해 달마다 나오는 잡지까지 동네 사람들이 빌려다 읽었다. 동네 리씨 형님은 나보다 열살 많았는데도 나와 친구처럼 지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와 책을 빌려갔다. 그 대신 내 자전거가 고장 나면 고쳐주었고 내가 혼자 하기 어려운 집안일도 하루씩 거들어주었다. 책 한권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나는 교원이라는 리유만으로 동네에서 허리를 펴고 살았던 것이 아니다. 수백권의 책이 있었기에 마음이 든든했다. 현성에서도 우리 집처럼 소설책이 많은 집은 드물었다. 나는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동네 환갑집과 장례집, 결혼식에 다니며 사회도 보고 여러가지 일을 도왔다. 책은 나에게 지식을 주었고 그 지식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여주었다.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무순으로 이사할 때도 나는 가장 먼저 열마대나 되는 책을 트럭에 실었다. 그 다음에 가구들을 실었다. 아파트로 다시 이사할 때는 낡은 가구들을 모두 버렸지만 책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책들은 또 나와 함께 새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면서 이 책들과 리별하게 되였다.

안해와 약속할 때만 해도 3년만 벌어서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야당리 외식공간식당에 들어가 일하고 F4 비자로 변경하면서 3년이 되기도 전에 려행사를 통해 자동 연장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나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고 책들도 주인을 기다리며 빈집에 남겨졌다.

그리고 오늘, 나의 희망과 열망을 담았던 책들이 풀이 죽은 채 곰팡이가 피고 책장 옆에는 먼지가 굳어 검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 역시 머리가 희여지고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그것은 세월의 순리이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귀중한 책들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집에서 10년 동안 공기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채 지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한국의 도서관이나 열람실에 가면 수십년 된 책들도 깨끗하게 보관되여 있다. 그런데 나의 책들은 주인을 잘못 만나 이제 고물상에 실려 갈 처지가 되여버렸다.

나는 책 한권을 손에 들고 한참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내가 너희를 버린 것이 아니다. 내가 너무 오래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책보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가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에게 이 책들은 단순히 지식을 담은 물건이 아니다. 젊은 날의 꿈이고 고향의 기억이며 내가 살아온 세월의 기록이다. 한권 한권에는 그 시절의 나와 사람들의 모습이 살아있다.

나는 다시 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비닐을 덮었다. 그리고 이제 또 이 책들과 리별해야 한다. 나는 다시 한국으로 떠난다.

내가 떠나고 나면 이 책들은 또 불빛 하나 없는 적막한 집안에서 나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창문은 닫히고 먼지는 다시 내려앉고 책장에는 다시 긴 침묵이 찾아올 것이다. 언제 다시 이 책들을 만날 수 있을가.

몇년 뒤 내가 다시 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때는 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가. 혹시 그때는 책들이 너무 오래 울어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마지막으로 책장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서있는 책들 사이로 젊은 날의 내가 보이는 듯 했다. 책을 모으던 청년, 책을 읽으며 꿈을 꾸던 교사, 그리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책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던 사람이 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책 한권을 가슴에 꼭 안았다. 아, 불쌍한 나의 책들아, 또 너희를 두고 떠나는구나.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문을 나서면서 뒤돌아보았다. 어두운 방안 책장에 꽂힌 책들이 마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아, 이번에는 언제 돌아오느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어둠이 다시 집안을 삼켰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사람은 고향을 떠날 수 있어도 젊은 날의 꿈까지 버리고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을.

내 꿈의 일부가 되여버린 책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어쩌면 책들은 또 긴 세월 나를 기다릴 것이다. 불빛 하나 없는 적막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때 다시 만났을 때는 책들의 눈물마저 모두 말라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그 오래된 책장 한구석에서 누렇게 변한 책 한권이 나를 알아보고 조용히 말을 걸어주기를.

“늦었지만, 그래도 돌아왔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마 책을 품에 안고 한참 울게 될 것이다.

아, 불쌍한 나의 책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관련 기사
版权所有黑龙江日报报业集团 黑ICP备11001326-2号,未经允许不得镜像、复制、下载
黑龙江日报报业集团地址:黑龙江省哈尔滨市道里区地段街1号
许可证编号:23120170002   黑网公安备 23010202010023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