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원이 압력용기 안으로 몸을 숙였다.
작업장을 가득 메우던 그라인더 소리와 망치 소리가 멎었다. 토치를 내려놓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그의 손끝으로 향했다.
손전등 불빛 하나가 어둑한 용기 안을 천천히 훑어내려갔다. 빛은 용접선을 따라 더디게 움직였다. 겉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비드는 고르게 이어졌고 표면도 매끄러웠다.
그러나 검수원이 보는 것은 겉만이 아니다. 압력용기는 내부까지 충분히 용입되여야 한다. 리면에 형성된 비드, 현장에서는 그것을 ‘백비드’라고 부른다. 겉은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지만 압력이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그 한점이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쇠는 속이지 못한다. 가끔 RT(방사선 투과 시험) 검사로 내부의 결함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전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용접은 쇠를 잇는 일이 아니다.”
잠시 토치를 내려놓았던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의 량심을 잇는 일이지.”
젊었던 나는 그 말을 리해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아는 용접은 도면대로 치수를 맞추고 쇠를 붙이는 기술일 뿐이였다. 그러나 세월은 조금씩 그 말을 가르쳐주었다.
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접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완성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였다. 공장은 화려한 곳이 아니다. 쇠가루가 바닥에 은가루처럼 내려앉았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 알곤용접 토치를 잡았을 때였다. 학원에서 배운대로 해도 현장은 달랐다. 힘을 줄수록 손은 굳었고 비드는 흐트러졌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용접은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니였다. 몸의 힘을 빼는 순간 토치도 쇠도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장마가 한창인 여름이였다.
작업장은 거대한 가마솥 같았다. 헬멧 속으로 흘러내린 땀이 눈을 따갑게 적셨고 작업복은 하루 종일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납기를 하루 앞둔 대형 압력용기가 마지막 공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용기 안에서 작업하던 동료가 한참만에 밖으로 나왔다. 보호면을 벗은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지만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그는 말없이 용기 안을 가리켰다.
“리면 용입이 마음에 걸립니다.”
몇사람이 손전등을 들고 안을 비추었다. 겉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검수원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깨끗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정도면 괜찮아.”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다시 하면 납기를 못 맞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용기 안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몸을 숙여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라인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쇠가루가 불꽃처럼 흩날렸다. 몇시간을 들여 완성한 용접선을 스스로 갈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누구나 그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아낸 자리에 다시 푸른 불꽃이 피여올랐다. 붉게 녹은 쇠물이 천천히 틈을 메웠다. 불꽃은 서두르지 않았다. 쇠도 서두르지 않았다.
오래 버틸 용접은 언제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날 작업은 밤늦게 끝났다. 이튿날 검수가 시작되였다. 손전등 불빛이 용접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작업장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검수원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합격 도장이 제품우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길게 숨을 내쉬였다.
퇴근길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냥 넘어갔어도 아무도 몰랐을 텐데요.”
그는 작업복에 묻은 쇠가루를 툭툭 털며 웃었다.
“다른 사람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잠시 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다음에 내가 저 용기를 다시 만나면 내 눈은 못 속입니다.”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내 마음 속에서 식지 않았다. 망치 소리도 그라인더 소리도 세월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말만은 언제나 내 곁에 남아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용접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였다.
공장 대문우에는 회사 이름이 걸려 있었고 벽에는 ‘품질 제일’, ‘안전 제일’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다른 것을 가르쳐주었다. 공장의 품격은 간판이 아니라 손끝에 남는다.
좋은 용접은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는다. 압력이 걸리는 순간 비로소 그 진실을 말할 뿐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결국 가장 오래 신뢰를 남겼다.
세월은 불꽃보다 빨랐다. 토치를 처음 잡던 젊은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후배들이 나를 로선배라 부른다. 손등에는 불꽃이 남긴 작은 흉터가 겹겹이 쌓였고 작업복에 밴 쇠냄새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퇴직을 앞둔 어느 날, 마지막 검수가 시작되였다.
검수원은 여느 때처럼 압력용기 안으로 몸을 숙였다. 손전등 불빛이 비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멈추고 다시 비추고 손끝으로 더듬는 모습은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풍경이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손전등이 쇠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비추는 것 같았다. 불빛은 기억 속을 천천히 지나갔다.
한번 더 용접하겠다며 밤을 새우던 동료 그리고 내 곁에서 평생 량심을 가르쳐 준 선배, 그 곁에서 토치를 놓지 않던 나.
나 역시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니였다. 납기에 쫓겨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하고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그 때마다 선배의 말이 나를 붙잡았다. “보이지 않는 곳을 속이지 마라.”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다시 치수를 재고 다시 토치를 들었다.
검수가 끝났다.
검수원은 손전등을 끄고 조용히 합격 도장을 들었다.
“탕.”
맑은 소리가 빈 작업장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오래 들었다. 제품 하나가 합격한 소리이기도 했지만 내 지난 세월 어디쯤에도 조용히 찍히는 도장처럼 들렸다.
공장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녁노을이 작업장 지붕우에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곧 작업장의 불꽃도 하나둘 꺼질 것이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두렵지 않았다.
내가 만든 압력용기는 언젠가 낡아 새로운 것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끝내 책임지려 했던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용접은 쇠를 잇는 일만이 아니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