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주위를 포근히 품은 초저녁이다.
자전거를 타고 현성에 들어서던 나는 어느 가로등 아래에 있는 돌이, 철이, 학이를 발견하였다. 이 세 아이는 내가 가르치는 현 조선족소학교 5학년 1반 학생들이였다.
–너희들 무슨 수박을 이렇게나?…
애들 앞에는 머리통만한 수박이 여러개 있었고 그중에는 수박을 마구 깨서 속을 아무렇게나 파먹다 버린 수박 쪼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호호 선생님도 마침 컬컬하던 참이였어… 나한테도 좀 주렴아.
내가 손을 내미는데 애들이 도리머리를 저었다.
–수박이 익지 않아서 먹지 못해요.
–지나가는 장사군한테서 눅거리로 샀는데 우리가 그만 속히웠어요.
지금 애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좋아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청스레 대처하는데 그 모습들이 우습다못해 귀엽기까지 했다.
–얘들아, 갑자기 선생님의 머리에 옛말 하나 떠오르는구나.
나는 애들 사이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할머니 한분이 여덟살나는 손녀애를 데리고 옥수수밭을 지나게 되였단다. 할머니는 밭에 들어가 옥수수 몇이삭을 얼른 뜯어올테니 손녀에게 길가에서 망을 보라고 했다. “할머니 전 겁이 나요.” “어허 겁날거 없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돼!”… 그렇게 할머니가 옥수수밭으로 들어갔는데 조금 지나자 손녀애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쳤다. “할머니 누가 봐요!” “누가?” 할머니가 놀라서 눈이 커지며 옥수수밭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저… 하늘이!” 손녀애의 작은 손이 머리우를 가리키고 있었단다…
가로등의 환한 빛까지 보태주자 애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새빨갛게 물이 들고 있음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럼 선생님은 먼저 간다. 우리 래일 학교에서 만나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자전거를 밀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척 했다. 그러자 등뒤에서 애들이 종알거리는 소리가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우리가 수박을 훔쳤다는 걸 선생님은 벌써 눈치채고 있어…
–우리 선생님 귀신이야, 귀신!
그 소리에 나는 입에서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애들아! 이 선생님은 여직껏 수박밭에 있다가 너희들의 뒤를 밟아 온거야! 수박밭 주인은 선생님의 사촌오빠고… 호호호 며칠 후 수박이 익으면 나는 우리반 학생들을 데리고 수박밭으로 생활체험을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