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의 문턱에 들어서니 시간은 느리고 무료하며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수십년간 직장과 가정을 위해 쉼없이 달려온 날들이 지나고 나면 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동년배들과 어울려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싶은 마음이 깊게 자리 잡는다.
우리 룡드레 등산팀은 바로 그렇게 직장생활을 마친 중년과 로년의 팀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하며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삶의 여유를 되찾는다.
지난 7월 5일, 이십여명의 팀원이 한마음으로 모여 만천성 선녀봉으로의 산행길을 열었다. 온 구간이 튼튼한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이 산길에서 우리는 함께 오르고 힘겹게 내려가며 나이가 주는 깨달음과 팀원들 사이의 따뜻한 정을 깊이 체험했다. 여름의 무더위가 서서히 기승을 부리던 그날 이른 아침, 약속한 장소에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모두 일상복 대신 편한 등산복을 갖춰 입고 발에는 충격 흡수가 좋은 등산화를 신었으며 각자 건강관리용 물병과 약간의 간식, 간단한 구급품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팀원들은 대부분 륙십대부터 칠십대 초반까지로 각자 다른 직업에서 평생 일했던 사람들이다. 공무원, 자영업자, 기업 직원, 기술자 등 각자의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퇴직 후 건강을 지키고 비슷한 년배끼리 공감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일치했다. 서로 만나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젊은 시절 추억을 꺼내놓기도 하고 요즘 건강 관리법을 공유하며 웃음을 나눈다. 출발 전 팀장은 년로한 팀원들의 몸 상태를 꼼꼼히 살피며 안전 당부를 전했다. 우리 일행은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뒤 만천성 선녀봉으로 향하는 나루배에 올랐다. 잠간사이 호수가를 지나 선녀봉으로 오르는 입구에 도착했다.
선녀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입구부터 끝까지 잘 정비된 나무 계단이 련속적으로 놓여 있었다. 험준한 바위 절벽도 없고 미끄러운 돌길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초보 등산객도 비교적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구조였다. 계단 량옆으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록색 잎사귀가 무성하게 가지에 달려있고 해살이 가지 틈새를 통과해 나무 계단우에 점점이 밝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7월의 숲 공기는 습기가 살짝 감돌지만 풀내음과 나무의 은은한 향기가 진하게 풍겨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면 도시생활 동안 가슴에 쌓였던 답답함이 사라진다. 길가 곳곳에는 여름 야생화들이 피여 알록달록한 색채를 뽐내고 숲 속 새들이 가지에서 지저귀며 산 전체에 생기를 채워넣었다.
우리 팀원들은 너무 서두르지 않고 느린 호흡에 맞춰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갔다. 젊은 사람들처럼 성급하게 걷지 않고 한계단 오를 때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 풍경을 살피며 여유를 즐겼다. 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분들은 속도를 맞추고 몸이 비교적 건강한 팀원들은 느리게 따라오는 팀원들을 계속 살폈다. 계단이 완만하게 경사가 높아질 때마다 모두 자연스럽게 멈춰 커피와 물을 한모금 마시고 서로 건강 이야기를 나눴다. 꾸준히 운동하는 비결을 공유하기도 하며 서로의 마음 벽을 허물었다. 수십년간 각자의 일에 매여 살았던 우리에게 이 계단길에서의 잡담은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였다.
계단은 완만한 경사에서 점차 가파롭게 바뀌였지만 위험 구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나이 탓에 무릎 관절에 부담이 서서히 몰려왔고 몇백계단을 련속으로 오르고 나면 허벅지에 묵직한 피로감이 감돌았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숨이 가빠지지만 쉽게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우리팀을 이끄는 팀장님이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요. 우리 함께 가요”라고 한마디 건네며 뒤에 뒤떨어진 팀원을 이끌고 한계단 한계단 올랐다. 나는 팀장님의 그 한마디에 다시 힘을 얻었다. 길가 곳곳에 마련된 정자에 잠시 앉아 다리를 쉬우며 아래쪽 산골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멀리 펼쳐진 구불구불한 개울과 그 너머 낮은 산줄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여름의 평화로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계단을 밟고 선녀봉 정상을 향해 계속 전진했다.
긴 계단 행진을 끝내고 마침내 이십여명 팀원들이 선녀봉 정상에 올랐다. 높은 봉우리우로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와 등에 흐른 땀을 식혀주어 온몸의 무거운 피로가 한결 가벼워졌다. 선녀봉은 험한 암봉이 아니라 부드럽게 다듬어진 공간이며 사방으로 광활한 여름 산경이 펼쳐졌다. 발아래로는 우리가 밟고 올라온 나무 계단이 숲 사이로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져 보이고 멀리 만천성 전체의 푸른 산맥이 물결처럼 겹겹이 펼쳐진다. 선녀봉이라는 이름처럼 구름이 봉우리 주변을 감돌며 신비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모두 정상에 서서 오랜 시간 계단을 오른 보상을 만끽하며 감탄을 쏟아냈고 선녀의 동상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며 함께 도전한 기쁨을 나눴다. 각자의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과 땀방울이 함께 어려 있었지만 정상에 오른 성취감에 환한 미소가 빛났다. 간단히 간식을 나눠 먹으며 하산 준비를 서둘렀다.
정상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기념 사진을 마친 뒤 우리는 다시 같은 나무 계단길을 따라 아래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때 나이 든 몸의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오를 때는 허벅지 앞쪽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면 내려갈 때는 무릎 전체와 종아리 근육에 온전한 하중이 실렸다. 계단 하나를 내디딜 때마다 다리에 힘을 꽉 주지 않으면 관절이 흔들릴 것 같은 불안감이 찾아왔다. 젊었을 때는 계단을 뛰여내려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한걸음 한걸음마다 다리 전체에 힘을 집중하고 몸의 균형을 잡아야만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평소 무릎이 약한 몇몇 팀원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고 옆 팀원들은 팔을 내밀어 필요할 때 붙잡을 수 있게 곁을 지켰다. “내릴 때가 더 힘들지, 나이가 드니 확실히 다리에 부담이 크다”고 서로 푸념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누구도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리고 매 걸음마다 의식적으로 힘을 쥐여짜야 겨우 흔들림없이 걸을 수 있었다. 앞서가는 사람은 뒤쪽에서 힘들어하는 팀원들을 위하여 전체 팀의 보조를 맞춰 느리고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했다.
숲 속 그늘진 계단길을 힘겹게 내려오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퇴직 후 산을 찾는 리유는 단순히 등산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경쟁과 바쁜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자신의 육체적 변화를 직시하게 된다. 오를 때는 의지로 버틸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몸의 진짜 상태가 드러나듯이 인생도 성공의 고비에 오를 때는 열정으로 버티지만 뒤돌아 일상으로 돌아올 때 진정한 자기 관리와 겸손함이 필요하다. 우리 룡드레 팀원들은 서로 힘들어할 때 격려하고 균형을 잃을 것 같으면 손을 내밀어주며 함께 버텼다. 혼자서 하산했다면 수십번씩 멈춰서 괴로웠을 길을 팀원들의 련대감으로 무사히 헤쳐나갔다.
긴 하산 계단길을 모두 지나고 산 입구에 돌아왔을 때 모두의 다리는 뭉근하게 아팠지만 마음은 매우 평온하고 만족스러웠다. 7월 5일 하루 동안 전 구간 계단으로 이루어진 선녀봉을 함께 오르고 다리에 온 힘을 쏟아 힘겹게 내려온 이 경험은 우리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서로를 의지하며 꾸준히 걸어가는 이 마음은 평생 마음 속 깊은 곳에 맑게 빛나는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 룡드레 등산팀은 앞으로도 이렇게 안정적인 산행을 이어갈 것이라 믿는다. 험난한 산행을 정복하는게 목표가 아니라 편안하게 천천히 걷고 오를 때의 기쁨과 내려올 때의 힘겨움까지 함께 나누며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할 것이다. 선녀봉의 푸른 숲과 끝없이 펼쳐진 계단으로 하산하며 다리에 꽉 힘을 주고 천천히 걸었던 우리들의 뒤모습은 만천성 선녀봉에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