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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야생꽃 - 남옥란

2026-09-03 12:18:40

여름이 깊어갈수록 고향의 산에 가득 피여나던 여러가지 야생꽃이 그리워난다.

생활이 유족하지 않던 세월에도 산은 가난을 몰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껌꽃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던 주황색 꽃이다. 군데군데 모둠을 이루며 많이도 피여났다.

한여름의 어느 날 엄마가 기음 매러 갔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말씀하셨다.

“얘, 앞산 등성이에서 꽃잔치가 한창이더라. 래일 엄마같이 꽃구경 가지 않겠니?”

“야 좋구나. 그런데 엄마, 래일  옆집 영애도 데리러 갈게요.”

이튿날 나는 영애와 오몽애, 애자, 정자도 데리고 함께 산으로 갔다.

여름볕이 산등성이를 내리쬐자 주황색 꽃잎은 더욱 선명하게 타올랐다. 껌꽃이라 부르는 까닭은 꽃대궁 끝에서 끈적한 진액이 배여나 어린 우리가 그걸 꺼내 씹으며 “껌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진짜 껌처럼 너무 쫄깃하지는 않았지만 달큰한 풀내음이 입안에 퍼지면 그게 온종일 간식이 되였다.

산기슭을 넘어 오르자 여뀌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홀애비꽃은 숲 가장자리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는 풀섶에서 자주꽃방망이를 조심스레 꺾어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벌이 꿀을 따는 꽃이란다. 한번 혀를 대 봐라.” 달콤한 물방울이 혀끝을 스치던 순간, 나는 자연이 우리에게 나누는 작은 선물을 처음으로 느꼈다. 애들도 저마다 맛보면서 달콤함으로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밀치고 당기면서 껌꽃을 꺾느라고 눈이 아홉이 되여 달아다녔다. 욕심쟁이 오몽애는 무더기로 피여난 껌꽃을 두팔로 안으면서 “이건 내꺼야, 너희들은 앞으로 나가면서 천천히 찾아보아라”고 했다.

우리는 오몽애앞에서 고양의 앞의 쥐처럼 꼼짝 달싹도 못했다.

한식경이 지나 우리는 한데 모여 그새 채집한 껌들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오몽애는 메추리알만큼 크기로, 새침떼기 영애는 피마주알만큼하게, 나와 정자는 옥수수알만큼하게, 제일 나이 어린 애자는 이발에 끼워 씹을 여지도 없는 입쌀알만큼밖에 채집하지 못했다. 그는 까치발을 하고 우리 손바닥안의 껌들을 보더니 와! 하고 울음보를 터뜨리며 손에 쥐고있던 껌을 풀밭에 던져버렸다.

“애두 참, 왜 그래.”

우리는 한결같이 웨치면서 풀숲에서 껌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헤맸다.

오몽애가 “놔두어라. 벌레밥이나 되게스리”라고 했다.

우리는 어정쩍 손을 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오몽애는 애자의 어린 손을 다정하게 잡고 말했다.

“울지 마라.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이제 커서 이 언니만큼 되면 우리 애자가 이 산의 껌꽃을 혼자서 다 채집할거야, 그렇지 애자야!”

말을 마치고 오몽애는 자기가 채집한 껌을 절반 잘라서 애자에게 건넜다. 애자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방그레 예쁜 웃음을 지었다. 머리우의 해님이 우리 모두의 얼굴을 화사하게 비췄다. 해님에 반사된 애자의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고 두눈이 우멍한 오몽애는 활짝 핀 함박꽃처럼 아름다왔다.

점심 무렵, 우리는 도토리나무 아래에 있는 우물가에 앉아 엄마가 싸온 보리밥과 나물 반찬을 나누어먹었다. 영애가 꽃잎으로 만든 반지를 나에게 끼워주었고 정자는 억새풀로 피리까지 불어주었다. 오후 해살이 꽃잎을 비출 때 그 소박한 꽃들의 이름은 몰라도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저만의 빛을 내고 있음을 보았다.

해질녘, 집으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엄마가 말했다.

“야생화는 이름을 알든 모르든 괜찮단다. 중요한 건 피여나는 그 자체지.”

그 뒤로도 나는 여러번 그 산길을 걸었다. 자라서 도시로 나가기 전까지 매년 여름이면 그 꽃들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처럼 많은 꽃이 한데 어우러진 장면은 다시 보지 못했다. 껌꽃도, 여뀌꽃도, 자주꽃방망이도 각각 따로 피여 있을 뿐 그날처럼 한자리에서 피지 않았다. 마치 그 하루만을 위해 모든 꽃들이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도시로 나와 살면서 나는 많은 꽃을 보았다. 화원에서 피여나는 호화로운 장미도, 꽃집에 진렬된 수입제 꽃다발도, 봄이면 공원을 수놓는 튤립도.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나는 그날의 주황빛을 찾지 못했다. 값 비싼 화분 속 꽃들은 깔끔하고 완벽했지만 내 고향 산등성이의 거칠고 질긴 야생화만이 주는 그 향기, 대자연의 숨결이 고스란히 밴 그 향기는 따라올 수 없었다.

며칠 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올여름도 꽃이 잘 피였다고, 한번 와서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웃었다. “네가 어릴 적에 우리를 데리고 갔던 그 자리, 아직도 그대로란다. 껌꽃이 참 예쁘게 폈어.”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일이 바쁘다고, 다음에 가겠다고.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그날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문득 엄마의 등이 생각났다. 앞서 걸으며 풀섶마다 핀 꽃의 이름을 하나둘 알려주던 엄마의 등, 바지 주머니에 꽃을 한움큼 넣어주던 엄마의 손. 보리밥을 싸오던 그 손으로, 자주꽃방망이를 꺾던 그 손으로, 나중에는 내가 도시로 나갈 때 보따리를 싸주던 그 손으로 엄마는 평생 그 산골에서 살았다. 이름난 꽃도, 대접받는 꽃도 아니였지만 엄마는 야생화처럼 자기 자리에서 당당하게 피여나고 또 지기를 반복했다.

지금도 여름이 깊어가면 나는 눈을 감는다. 그러면 보인다. 주황빛 껌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영애가 꽃반지를 끼워주며 깔깔대고 정자가 억새 피리를 부느라 뺨을 부풀리던 그날의 오후, 그리고 엄마가 말하던 그 한마디가 가슴에 스며든다.

“중요한 건 피여나는 그 자체지.”

맞다. 중요한 건 피여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이름이 있든 없든, 그저 제철을 만나 저만의 빛을 내는 것. 그것이 꽃이 하는 일이고 어쩌면 사람이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심했다.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꼭 고향으로 내려가리라고. 그 곳에서 오랜 벗들처럼 피여있는 야생화들에게 말하리라고. 나도 아직 피여있다고. 나도 아직 여름 한가운데 서있다고. 껌꽃처럼 쫄깃한 추억을 입안 가득 씹으며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그날의 주황빛을 꼭 안고 가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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