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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삿갓 길 - 김룡운

2026-08-06 08:27:58

나의 동년시절은 은띠처럼 그어진 긴 언덕길을 어머니와 동반하여 걸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고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져 일어난 잔잔한 파문이 자취를 감추 듯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때없이 그 길을 다시 찾으려고 산정에 올랐다가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젖빛 안개에 쫓겨 하얗게 젖거나, 때론 노을빛에 빨갛게 물들거나, 때론 땅거미에 쫓겨 새까맣게 그을러 돌아오군 하였다.

개구쟁이 시절 추억도 많다. 봄이면 구렁이 기여간 듯한 우불구불한 뒤동산 언덕길을 따라 진달래꽃 한묶음 그러안고 뛰여내리다가 조약돌에 걸려 넘어져 코방아를 찧으면 흙투성이가 된 온몸을 털어주시며 “우리 룡이 용쿠나, ‘령’을 넘었구나” 하며 칭찬하시던 어머니의 사랑의 바램길, 여름이면 버들치 잡아 생선국 끓여먹으려 줄풀에 벌겋게 종알이 긁히면서 희미하게 그어진 풀속길을 헤매다가 제자리에 원을 그었던 수풀길, 가을이면 아버지를 따라 머루, 다래 따러 다니던 뒤동산 오솔길, 겨울이면 바지엉치가 황소눈이 되도록 얼음지치기를 하던 동구밖 내리막길… 그것도 한번 두번이 아니라 수십번, 수천만번 가로세로 종횡무진하듯 오갔으니 때론 아름다운 삿갓을 엮은 길은 아니였을가고 우습게도 생각을 굴려보았었다.

이 모든 길들은 오색령롱한 아름다운 화폭 속에 그려진 희미한 추억의 길들이다. 여태껏 걸어온 길은 오불꼬불 꼬부랑길이였지만 그래도 순풍에 돛단 길이였고 인생의 스타트선에서 멀지 않은, 내몽골초원의 넓고 평탄한 길과도 흡사하다.

세상에는 본디 길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닐가. 오불꼬불 꼬불길 학교가는 길, 꼬불꼬불 꼬부랑길 시내가 통하는 길, 숨박곡질을 하듯 뻗어간 수림길–바로 이와 같은 오솔길이 있기에 그것들이 합쳐 은사슬을 늘이듯 휘영청 넓은 신작로가 생기지 않았을가.

삼라만상이 정적 속에 잠든 이 밤, 인간들은 꿈 속에서 지상락원으로 통하는 아름다운 지름길을 찾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정한 현실은 인간들에게 곡선길만을 선사했다. 하여 세상사람들은 때론 모순된 번뇌 속에서 허덕일 때도 있고 굴곡적인 인생의 길에서 몸부림치기도 한다. 어떤 인간은 그 모대김 속에서 헤여나지 못하고 그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동녘 하늘로부터 려명의 종소리가 울린다. 려명은 인간들에게 앞으로의 전도는 광명하나 길은 굴곡적이라는 것을 력력하게 깨우쳐준다. 하기에 인간은 새 희망을 안고 곡절로 충만된 인생의 가시덤불을 헤치며 넓은 신작로를 향하여 걸음을 재우친다. 그 험악한 가시덤불을 헤치며 그 미끄러운 진창길을 비칠거리며 용감하게 전진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의 힘의 표현이고 견인불발한 자신심의 표현이다. 종국적인 현실은 자신심이 충만된 인간들에게 걸음을 재우칠수 있는 동력을 가져다주며 승리의 희열을 맛보게 한다.

아, 인생의 길–파란곡절로 뒤엉킨 그래프, 내 진정 당신의 자태–곡선미를 후회없이 곱게 그려가련다. 그러면 해빛도 바람도 비도 막을수 있는 곱고도 어여쁜 삿갓을 결어낼 수 있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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