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한영남의 시 ‘무깍지 동네’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연길시 철남에 위치한 30, 36, 42번 버스 종점으로 가기 위해 먼저 모아산행 21번 버스에 올라 명신역에서 내렸다. 모아산 기슭마다 앵두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터질 듯 탐스럽게 익어가고 살구와 돌배들은 가지가 휘여질 정도로 주렁주렁 달려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한영남의 시에 드문드문 등장하는 그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가.
31년이 지난 지금, 그 무깍지 동네는 아직 남아 있을가. 도착해보니 그곳은 철남 명신촌 동쪽 민속촌을 지나 공룡박물관을 건너 철남시장으로 가기 전 주기상국 위쪽 골목이였다. 그때의 일반 농촌 주택들은 모두 허물어지고 오래 전에 아파트 단지가 숲처럼 우뚝 솟아 무깍지 동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의 시를 읽으면 하나의 추억이 떠오르고, 거기에 또 하나의 나로 인해 경험한 강한 감동이 읽는 사이에 느껴진다면 그 시는 좋은 시다. 시는 문자로 끝나는 짧은 구성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언어라는 도구로 형상화해내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창작이다. 쉬운 듯 하지만 가장 어려운 창작이기에 시는 어렵게 쓰인 쉬운 창작이다. 한영남의 많은 시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시들 중에서 그는 자아와 현실이라는 소재 속에서 주제를 찾아내고 반짝이는 령감으로 현실 세계를 형상화하여 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무깍지 동네’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했던 많은 시적 소재를 대신하여 내가 미처 쓰지 못한 기발한 령감들을 자신의 시에 자연스럽게 담아 먼저 창작해냈다. 읽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의 시는 자유로운 창작 기법과 남다른 시적 감각으로 훌륭히 빚어져 읽는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무깍지 동네’는 내가 1990년대에 작가처럼 농촌에서 지냈고 또한 청도라는 도시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더욱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농촌에 살다가 시내 생활을 동경하던 젊은이들은 청도에 도착한 후 가장 저렴한 리촌과 성양구를 잇는 농촌과 도시의 경계에 모여 살았다. 그중 청도에서 대표적인 곳이 신가장이다. 당시 신가장에는 단칸방 세집에 구겨져 사는 조선족들이 가장 많았다. 함께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또한 조심스럽고 까다로운 일이기도 했다. 한 지붕 아래 화장실이나 마당의 수도물을 함께 쓸 때는 이웃의 눈치를 봐야 했고 밤늦게 퇴근하거나 아침 일찍 나설 때마다 발걸음과 숨소리조차 조심해야 했다. 낯도 모르는 이웃집 주정뱅이가 밤에 술주정을 부리거나 두 련인이 밤늦게 다투는 날이면 나까지 덩달아 잠을 설치는 그런 밤들이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부대끼며 자는 모습도 이 시를 읽으며 어렴풋이 떠오른다. 인간은 추울 때 서로 안으면 따뜻하지만 더울 때 살을 대면 심히 불쾌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 사이에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영남의 ‘무깍지 동네’를 읽으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사랑하는 조선족 동네의 풍격 있고 고상하며 우아한 면모를 그려냈다. 작은 집, 좁은 마당에 살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공감하는 우리 민족의 순수한 미덕을 아름다운 시어로 깊이 묘사하였다. 과장이나 미사려구 없이 시인은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온 하층 민중의 희로애락을 단 한편의 짧은 시에 담아 하나의 서사와도 같은 애잔한 조선족의 삶을 수채화처럼 그려냈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모두 똑같이 무겁고 힘들고 어렵지만 그들의 시에는 한마디 원망이나 불평이 없다. 숨 죽여 조용히 말없이 살아가던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형님들이 떠오른다. 페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주인공들을 읽노라면 읽는 내내 마음이 안쓰럽다. 그러면서도 련민과 측은함 그리고 무언의 감동이 스물스물 밀려온다. 조선족이란 참 대단한 족속이다. 생존이라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지혜롭고 침착하게 인내하며 삶을 영위하는 그 품격에 저절로 감동이 일어난다. 누구나 함부로 가질 수 없는, 오직 우리 조선족만이 걸어온 고상한 발자취다. 아름다운 품성과 참된 마음을 지닌, 민족의 짧지만 깊은 진정이다.
그 동네, 무깍지 동네는 아프고 여린 상처를 치유하고 더 단련되고 더 성숙된 새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꽃이 피여나던 동네였다.
그러나 지금의 무깍지 동네와 그 주변은 더 이상 그런 동네가 아니다. 앞에는 대형 갤러리 카페가 아담히 자리잡았고 민속촌은 전국에서 유람객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가장 인기있는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긴 한복 체험관이 주위에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무깍지 동네는 연길에서 가장 알찬 명소로 거듭났다. 한영남의 ‘무깍지 동네’에 가면 그들의 무언의 헌신이 오늘날의 공룡왕국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무깍지동네
한영남
내가 사는 동네는
철남에서도 한참 남쪽
남산엉덩이에 밀치닥거리며
간신히 비비고 앉은 게딱지동네
삼륜차부들과 달래장사군들이
부부랍시고 어우러져 사는
구석에서 모여와 다시 구석이 된
털털이동네
아침이면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엷은 바람벽사이 소리라도 샐가봐
주부들은 조심스레 청국장을 끓이고
어쩌다
까만 남편과 까만 안해가 다투어도
소리죽여 얼굴만 붉히고
까만 아이들도 손짓과 눈짓으로만
말하는데 습관이 된 무성동네
펀들거리는 흑백텔레비도
소리를 한껏 낮추어 보고
제집에서 마늘쪽을 먹어도
냄새가 퍼질가봐 입을 막고 먹는
내가 사는 동네는 동네랄뿐
꽁꽁 여민 창안에서
오로지 귀만 토끼처럼 살구고 사는
내가 사는 동네는
사람이 살아서 동네가 아니라
연기가 피여올라서 동네이고
초저녁 일곱시부터 까막나라가 되는
소리도 냄새도 빛도 없는
메주처럼 속으로 속으로만 썩고 괴는
무깍지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