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지하방 창밖으로
반쯤 가려진
해살을 쫓는다
고층 유리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빛줄기를
가슴에 움켜쥔다
빌딩 그림자가 발끝을 덮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은
저 태양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래일의 기어(齿轮)이기 때문이다
민들레
공사장 철조망에 걸린
하얀 솜털 하나
콘크리트가 흙이라 믿고
뿌리를 내리다 말았다
바람이 불면
그 땐 다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땅 틈새로 몸을 던진다
박히는 순간
모든 류랑(流浪)은 침몰된다
국화
화분에 갇힌
국화는 입을 다문다
창밖 백화점 불빛이
산정의 달빛보다 밝아도
노란 꽃잎을 깨물 뿐
차가운 유리에
코를 대고 서 있는 건
이 도시의 맛이
시골의 흙맛보다
더 쓰디쓴
중금속이기 때문이다
나팔꽃
담벼락을 타고
소금기 섞인 안개를 삼킨다
부풀었던 꽃잎이 접히듯
목구멍에 걸린
노래소리도 접힌다
하지만 새벽
첫차 소리가 들려오면
접힌 꽃잎 사이로
어김없는
녹이 맺혀온다
이슬 대신…
질경이
아스팔트 틈새
수없이 짓밟혀도
잎맥은 끊기지 않는다
밤이면 가로등 불빛 아래
몸을 떠는 것은
추워서가 아니라
고통 때문이다
이 질긴 시멘트 바닥에
내 이름 석자
새겨보려는
애타는 그것...
갈대
강변 산책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갈대숲을 본다
한줄기 바람에
고개 숙이는 갈대들
그 속에서
나도 함께 흔들린다
뿌리 뽑힌 줄 알았는데
이 도시의 소음이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천천히 갉아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