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덕이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마치 냄새 좋은 풀밭에 들어온 듯 하고 나쁜 사람 곁에 있으면 마치 생선을 굽는 냄새가 나는 가게에 들어온 듯하다.” 이 말은 사람이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향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 그 향기는 단지 상대방에게서 풍기는 것이 아니라그 상대방과 나누는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타인에게서 무형의 향기를 느끼지만 실은 그 향기의 대부분은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 속에 깃들어있다. 말에는 향기가 있고 말에는 맛이 있다. 그리고 그 향기와 맛은 때로는 우리의 운명마저 좌우한다.
우리 주변에는 흔히 유독 사람을 잘 모으는 이들이 있다. 내 어린 시절 친구네가 바로 그랬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부모님의 친구들, 이웃들, 또래 아이들까지 수시로 드나들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특별히 화려하거나 내세울 것이 있는 분들이 아니였다. 그렇지만 그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밝은 표정과 따뜻한 말씨 그리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그 집 거실에서는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그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다가갔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집에 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말에서 단내가 나고 인품에서 향기가 나니 사람들이 절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만나면 반갑고 헤여지면 그리워지는 사람들이였고 만날수록 정이 깊어지는 사람들이였다. 마치 오래된 책에서 나는 향기처럼 그들의 말투에는 세월이 묻어나는 포근함이 있었다.
그런데 말에는 향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또한 맛도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어떤 사람의 말은 잘 익은 과일처럼 달콤하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르게 한다. 마치 해볕에 잘 익은 복숭아를 베여 물었을 때 느껴지는 그 달콤한 즙이 입안 가득 퍼지듯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또 어떤 사람의 말은 따뜻한 국물 한그릇처럼 지친 마음을 감싸며 위로한다. 겨울날 늦은 밤 집에 돌아와 마시는 따끈한 미역국처럼 차가워진 령혼을 녹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반면 어떤 말은 덜 익은 감처럼 떫고 독이 든 음식처럼 쓰다. 듣는 순간 가슴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같은 충고라도 사랑이 담기면 약이 되지만 비난과 멸시가 섞이면 순식간에 독으로 변한다. 내가 아는 한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항상 “이 정도밖에 안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은 짧았지만 마치 레몬즙을 상처 난 살갗에 뿌리는 것처럼 매번 청년의 자존심을 산산조각냈다. 그 청년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 후에도 오래동안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말의 맛은 혀끝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의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기보다 그 말이 남긴 그 ‘맛’을 더 오래도록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도 음식과 같단다. 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배를 채우지만 네 입에서 나가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채운다. 그러니 항상 네 말이 어떤 그릇에 담겨 나갈지 생각하렴.”
그때는 그 뜻을 잘 몰랐다. 그저 먹는 음식이 맛있으면 좋고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여지는 과정에서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너질번 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선 적도 있었고 차가운 말 한마디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적도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은 마치 삶의 조미료와 같아서 적절한 때에 내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재미있는 례를 하나 들자면 나는 얼마 전 지하철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하려다 실수로 옆에 서 있는 청년의 신발을 밟았다. 청년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주머니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발은 안 다치셨죠?”라고 묻자 표정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청년은 오히려 “아뇨, 제 발보다 아주머니 건강이 더 중요하죠. 자리에 앉으세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 순간 그 좁은 지하철 칸에는 보이지 않는 꽃향기가 가득했다. 이처럼 작은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의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좁은 자대로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말은 제 향기를 잃고 맛마저 변질된다. 상대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상처와 불행을 건네게 된다. 실제로 얼마 전 한 마을에서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한 량성(良性) 종양 환자가 있었는데 마을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잘못 퍼져 ‘양성’이 ‘악성(恶性)’으로 둔갑한 것이다. 잘못 전해진 말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그 소식을 들은 당사자는 큰 충격에 빠졌다. 결국 건강하게 생활하던 그 사람이 갑작스레 쓰러져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섭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말은 마치 한방울의 식초가 큰 항아리의 물을 시큼하게 만드는 것처럼 순식간에 모두의 마음을 삭게 했다.
이처럼 향기없는 말은 사람을 멀어지게 하고 맛없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반대로 향기로운 말과 맛있는 말은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이어준다. 향기와 맛을 함께 지닌 말은 마치 봄꽃의 향기와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함을 동시에 가진 것과 같아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우리는 종종 스마트폰의 알림음에 귀를 기울이지만 정작 우리 입에서 나가는 말의 울림에는 둔감해지곤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에는 반드시 향기가 깃들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맛도 있어야 한다. 향기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맛은 사람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머문다. 우리는 누군가의 얼굴보다 말투를 기억하고 말의 내용보다 그 말이 남긴 온기를 오래 간직한다. 오늘 내가 하는 말은 과연 어떤 향기를 품고 있으며 어떤 맛을 남기고 있는가. 누군가의 마음에 봄꽃처럼 스며들고 꿀맛같은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처럼 우리의 작은 말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말은 무슨 맛이였는가.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어떤 향기로 남을 것인가.
이제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좋은 음식이 장을 편안하게 하듯 좋은 말은 관계를 건강하게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을 고른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향기롭게.
그것이 내가 오늘 만날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