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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엄마의 쌀 씻는 소리 - 태승호

2026-07-22 15:16:01

어릴 때 이른 아침이면 잠결에 들려오던 그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싸락싸락–싸라락싸라락” 마치도 비방울이 얇은 창호지를 스치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여린 나무잎이 서로 스치며 속삭이는 듯한 은은하고도 정겨운 소리였다.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반쯤 꿈 속에서도 ‘아, 엄마가 쌀을 씻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떴다. 방문 틈으로 새여 들어오는 새벽의 싱그러운 공기와 섞여 들려오는 차갑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물소리, 그것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우리집의 탁상시계 소리이자 가난하지만 뜨거운 삶의 리듬이였다.

엄마는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가마목의 작은 공간에 앉아 보자기를 바닥에 펴놓은 후 쌀을 조심스럽게 부어 놓고 두 손바닥으로 고은 원을 그리며 쌀알을 골라내셨다. 해빛이 아직 들지 않은 새벽이라 밝지도 않은 전등불 아래에서 더욱 신경써야 했을텐데 엄마의 손은 재빠르고 정확하게 작은 돌멩이나 검불을 집어내며 보물을 다루듯 정성을 다하셨다.

그때 우리 집 쌀독은 언제나 가득 차있지 않고 항상 바닥이 보일 듯 말 듯한 형편이여서 엄마의 손길에는 조금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가난했던 세월에 구차했던 살림살이 속에서 자식들을 굶길세라 로심초사했던 엄마의 마음이 조용한 새벽의 쌀 씻는 지성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싸락싸락하는 소리 속에는 잠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으려는 엄마의 조용한 움직임이 스며들어 있었고 부족한 살림을 꾸려가려는 애틋한 마음도 담겨 있었던 것 같다. 한알의 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그 소리의 진정한 의미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생존의 소리였고 사랑의 가장 현실적인 표현이였다.

엄마의 정성어린 살림살이 덕분에 우리 집 식탁은 결코 단조롭거나 서글프지 않았다. 입쌀이 희귀한 세월이였지만 잡곡이 섞인 밥, 간장이나 된장으로 맛을 낸 국, 그리고 각가지 짠지와 김치 등으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은 엄마의 정성이 넘쳐 흘렀다. 우리 형제들은 밥상에 둘러앉아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가난은 우리에게서 웃음을 빼앗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매개물이 되였다. 쌀 씻는 싸락싸락 소리는 바로 그 단란함의 전주곡이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시간을 준비하는 고요한 기다림이였다.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순간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채우려는 엄마의 지혜가 그 소리에 담겨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잡곡은 오늘의 의미와 사뭇 달랐다. 당시 우리의 밥그릇에 담긴 잡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쌀만으로는 량을 채울 수 없어 옥수수쌀이나 좁쌀, 콩 등을 섞어 부피를 늘려야 했던 가난의 산물이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 필연을 기회로 바꾸셨다. 잡곡이 몸에 좋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 말을 믿고 더없이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엄마의 위대한 사랑이였고 가난을 이기려는 지혜의 몸짓이였다.

세월은 참으로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고향을 떠난 지도 반평생이 가까와온다. 지금 나는 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고 현대식 주방의 반짝이는 불수강 싱크대에서 수도물로 돌이나 이물질을 고를 필요조차 없는 이미 깨끗하게 정선된 하얀 입쌀을 씻는다.

그런데 나는 이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그 허전함은 아마도 어린 시절 새벽에 들려오던 싸락싸락 쌀 씻는 엄마의 정성이 스며든 소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더 깊게 생각해보면 그 허전함은 아마 귀한줄 모르는데서 오는 정신적 빈곤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쌀 한 알의 무게는 어떤 의미일가. 식량이 풍족해진 시대에 태여난 세대는 배고픔이 일상이였던 시대의 무게를 직접 체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음식 구조가 다양하고 풍족하여 넘쳐나는 오늘 날 우리는 때로는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듯 하다. 버려지는 음식의 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남은 밥’은 종종 다음 끼니로 이어지기보다는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한끼 식사가 갖고 있는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자세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건강을 위하여, 다이어트를 위하여 우리가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바로 과거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먹었던 잡곡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귀한 쌀을 조금씩 넣고 감자, 무우, 옥수수를 섞어서 지은 밥을 먹으며 가난을 탄식했지만 지금은 잡곡이 건강을 선호하는 곡물로 취급받는다.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개변되였다하지만 그 내면에 담긴 이야기와 정성의 무게는 바뀌여질 수 없다. 엄마가 한알의 쌀도 정성스럽게 고르던 움직임과 오늘날 잡곡에 대한 나의 인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 자신에게 묻고 싶다. 당연히 가난을 절대 미화하여서는 안 되지만 그 안에서 피여난 인간의 절절한 정성과 지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의지는 결코 가볍게 잊어서는 안 될 무거운 유산인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가끔씩 엄마가 쌀 씻는 그 소리가 들려오는 꿈을 꾸군 한다. 꿈 속에서 나는 다시 그 작은 방의 이불 속에 누워 있고 문 너머로 싸락싸락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새벽, 등잔불 아래에 엄마의 약간 굽은 등을 보면서 깨여나고 싶지 않은 채로 그 소리에 온몸을 맡긴다.꿈 속에서도 보고 싶은 울 엄마, 오늘도 그리운 울 엄마, 그 소리는 이제 세상에 하나뿐인,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내 생애의 배경 음악이자 령혼의 좌표이다.

엄마의 쌀 씻던 소리는 단순한 과거의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존엄을 담은 소리였고 사랑으로 하루를 일구어내던 한 녀인의 고된 예술이였다. 오늘 날, 그 소리가 들리던 집은 사라졌어도 그 소리는 이제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여 내가 혹시 현대 생활의 풍요 속에서 길을 잃을 때면 가장 정다우면서도 단호한 위로와 경고로 들려온다. 풍부한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님을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지를 속삭인다.

엄마의 쌀 씻던 그 소리, 그것은 결코 씻겨 떠나보내지 않을 내 령혼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린 고향의 익숙한 소리이자 시대를 건너는 영원한 메아리다. 오늘도 그 소리가 그리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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