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란 언제나 분주하다. 하지만 그날의 아침은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외손주가 유치원 셔틀을 타는 마지막 날, 그 작은 사건이 내 하루 전체를 전쟁처럼 흔들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는 원래 아침이면 얼굴에 함박웃음을 피우며 셔틀에 오르곤 했다. 외할머니의 손길이 늘 함께 했으니 그 시간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소학교 축구팀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어린 몸으로 감당하기 벅찬 훈련을 매일 이어가다보니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고역이 됐다. 침대 속에서 아이는 잠든 고양이처럼 축 늘어진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짐은 또 왜 그리 많던지.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라 도화지, 색칠 도구를 챙겨야 했고 책가방으로는 부족해 비닐 주머니 하나를 더 들어야 했다. 평소보다 분주한 준비물은 그 자체로 이미 작은 전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문제는 결국 아이를 깨우는 일이였다. 전날 밤 축구장에서 공을 빼앗으려다 친구와 부딪쳐 종아리를 움켜쥐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아이의 얼굴에 맺혔던 땀방울과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 몸으로 오늘도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니, 마음 한켠이 저릿하게 아팠다. 하지만 안쓰러움만으로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얘야, 셔틀 놓치겠다!” 몇번을 불러도 아이는 꿈 속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 손을 잡아끌 듯 일으켜 겨우 셔틀에 태웠다. 아이가 창밖으로 “빠이빠이!” 손을 흔들며 웃을 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첫번째 전쟁은 그렇게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가슴을 덮치는 불길한 기억이 있었다. 핸드폰과 집 열쇠가 아이 가방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
핸드폰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게다가 30분 뒤에는 그 핸드폰으로 랑송 연습 모임에 접속해야 했다. 머리 속이 하얘졌다. 두번째 전쟁이 시작되였다.
나는 단숨에 달리기 선수로 변했다. 아침 해살은 어느새 이마에 뜨겁게 내리꽂고 숨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발걸음은 무겁고 길은 유난히 멀어보였다. 뛰고, 걷고, 다시 뛰기를 반복하다보니 온몸이 땀에 젖어버렸다. 15분 거리가 마치 평생의 려정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유치원에 닿아 경비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선생님이 내 손가방을 들고 나오기까지의 짧은 기다림은 그야말로 일각이 삼추였다. 손에 가방을 움켜쥐는 순간 겨우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난 게 아니였다. 다시 돌아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갔지만 버스는커녕 택시 한대도 보이지 않았다. 청도의 아침길은 차로 붐볐지만 정작 내가 탈수 있는 차는 보이질 않았다. 다급히 모임방에 “조금 늦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마음은 더없이 초조해졌다. 때마침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방울이 쏟아졌다.
“맙소사, 이렇게 비까지 오다니!”
삶은 참 묘하다. 위기의 순간, 도움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비 속을 헤치고 지나가던 오토바이 한대, 그 우에는 젊은 녀성이 앉아있었다. 나는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다 내려놓고 다가갔다. 서툰 중국말로 간청했다. “저기… 두정거장만 태워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놀란 눈길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좌석을 가리켰다.
낯선 떨림 속에서 오토바이에 올랐다. 순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비방울이 뺨을 때렸다. 그러나 그 차가움 속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그녀의 조용한 호의,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청도의 아가씨가 있다니!
그녀 덕분에 모임에는 조금 늦었지만 무사히 도착하여 예정대로 온라인 시랑송 연습을 잘 마무리할수 있었다. 김지견 선생님의 ‘하얀 갈매기의 노래’를 우렁차게 랑송하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숨 가쁘게 이어진 두번의 전쟁은 마침내 끝났다.
돌아보면 그 아침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였다. 나는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다시 배웠다. 삶은 늘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하기에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살아간다. 작은 친절 하나가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그 울림이 어떻게 한 사람의 하루를 감싸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말없는 다짐을 남겼다. “너 또한 누군가의 길에서 작은 불빛이 되여주어라.” 전쟁 같았던 아침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정한 다리우에서 평화로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로 아침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더 이상 아침은 단순히 하루를 여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전쟁’이자 동시에 누군가와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