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아버지, 지금쯤 당신은 어데 있는지요? 무척 그리워지는군요.
당신이 떠날 때만 해도 무서운 추위가 덮치던 겨울이였는데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군요. 짙은 록색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마음이 사뭇 설레여야 하는데 당신의 탈가로 울적감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틀고 있어요.
해외에서 5년간 돈벌이하다가 지난해 겨울철에 돌아온 당신이 60만원이란 돈을 저의 앞에 내놓았을 때 저는 환성을 올렸어요. 결혼해서 처음으로 소유해본 돈이였어요. 저는 이 돈이 당신의 피땀인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한푼도 랑비없이 가치있게 쓰려고 얼마나 다짐했는지 몰라요.
그간 몹시 수척해진 당신의 몸을 춰세우려고 저는 닭곰, 웅담분, 불개미 등을 대접시켰지요.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의 모임에 갔다가 돌아온 당신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떠 있었어요. 제가 무슨 일인가고 물으니 당신은 급작스레 소리 질렀어요.
“어서 사실대로 말해. 그 녀석과 어째 눈이 맞았어?”
“아니 무슨 말씀인가요? 그 녀석이란 누군가요?”
저는 두눈이 휘둥그래졌어요.
“칠성이 녀석과 말이야. 그래 어느 정도까지 좋아했어?”
당신은 눈을 부릅뜨고 주먹까지 휘둘렀어요.
“어디서 그런 헛소문 들었어요?”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는 법 없어. 날 속이려고 들지 말아.”
이런 말을 남기고 당신은 벌어온 돈까지 가지고 가출했어요.
당신이 떠난지 이젠 반년이 넘어가는데 종무속식이군요. 그럼 아래에 저의 말을 좀 들어보세요.
당신이 출국한지 일년이 넘는 어느날 시조카인 철범이가 장사를 하겠다고 저더러 돈을 2만원 해결해달라고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외지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가 잔병이 많아서 고향마을에 돌아온 철범이가 치부의 꿈을 꾸는 것이 너무도 대견스러워 그날 밤에 저는 친구 금녀를 찾아갔어요. 금녀가 주는 돈을 받아가지고 택시에 앉아 집으로 온 후 돈가방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을 알게 되였어요. 저는 눈물이 났어요. 막 실신까지 했구요. 밤이여서 그 택시번호와 운전수의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요. 제가 막 울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밤에 누굴가? 더구나 남편도 없는 집인데?)
저는 마음의 탕개를 조이며 누군가고 물었습니다.
“택시운전수인데 어서 문 열어주세요”
한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저는 돈을 찾았다는 예감으로 화다닥 일어나 문을 열었어요.
“저- 녀사님이 혹시 뭘 차에 두고 내리지 않았는지요?”
“네, 돈을 두고 내렸어요. 어서 주세요”
나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 몰랐어요.
“그럼 물읍시다. 돈은 얼마짜리이며 또 모두 얼마입니까?”
“몽땅 백원짜리인데 2만원이예요.”
“맞군요. 글쎄 제가 집에 가서 차안을 청소하다가 걸상밑에 떨어진 돈가방을 발견했어요. 문득 녀사님의 돈이겠다고 짐작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녀사님이 차에 오를 때 배웅하던 친구가 돈을 잘 건사하라고 부탁하던 일이 생각났어요. 더구나 녀사님은 제일 마지막 손님인데다 차에서 내린후 이 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았기에 쉽게 찾았습니다. 자- 돈을 세여보십시요.”
저는 울렁대는 마음을 눅작이며 돈을 세여 보았는데 한푼도 차나지 않았어요. 너무도 고마워서 제가 그 돈에서 석장을 빼내 그한테 주었더니 안 받겠다고 했어요. 억지로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더니 정 이러면 성을 내겠다고 하면서 끝내 안 받더군요.
그는 저와 약 10분간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어요. 그는 자기 이름이 칠성이라 하더군요.
그로부터 몇달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어요. 그에 대한 인상도 차차 머리 속에서 퇴색해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대문밖에서 석탄을 울안에 퍼들이고 있었는데 혼자서 퍼그나 되는 석탄을 나르자니 힘이 들었어요. 그때 “칙–”하고 정차소리가 나더니 바로 그가 차에서 내리던군요.
“혼자서 이렇게 많은 석탄을… 제가 좀 돕지요.”
그는 다짜고짜로 저의 손에서 삽을 나꿔챘어요.
“아니 괜찮아요. 차를 세우면 돈 못 버는데요.”
“매일 버는 돈인데 조금 못 벌면 뭐 큰 일인가요?”
“남편이 곁에 없어서 저는 무척 조심해요.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면 될수록 녀자친구를 불러요. 남들의 여론이 싫으니까요.”
저의 말에 그는 허허 웃을뿐 다른 말은 없었어요.
그날 그의 도움으로 일을 빨리 끝냈어요. 그는 집안에 들어가서 물이나 마시라는 것도 거절하고는 떠나갔어요.
어느날 초저녁 제가 마실을 가려고 문을 나서다가 그만 넘어져 발목을 삐여 일어날수 없었어요. 그때 마침 그가 차를 몰고 지나다가 그 장면을 보고는 차에서 내려 절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게 했어요.
내가 발목이 나을 때까지 내가 그에게 약을 사다 달라는 부탁을 했기에 그가 몇번 왔다가 갔는데 당신의 친구 성규씨 눈에 띄울줄이야. 집이 시교에 있다보니 약 사려면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야 하니 내가 걷기 어려워서 그가 도와나선 것이 이같이 루머로 될줄 몰랐어요. 그래 같은 택시비를 팔바에는 그 고마운 택시기사의 수입을 조금이라도 올려주려고 한 것이 잘못인가요? 그래 그 운전수의 미덕이 꼭 남들의 심심풀이화제에 올라야 하나요? 여기까지 쓰고보니 이런 기막힌 이야기가 떠오름을 어쩔수 없군요. 강에 웬 녀자가 빠졌는데 그걸 보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강에 뛰여들어 그 녀자를 구해냈지요. 그런데 그 녀자의 남편이 감사는 고사하고 그 남자가 물 속에서 자기 안해의 몸을 만졌다고 걸고 들었다고 하는데 이 일은 얼마나 사색적인 일인가요?
남녀지간에 어느 일방이 곤난이 있을 때 도와나서면 곁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 때가 있어요. 어떤 사람의 눈에는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보일 수 있어요.
애 아버지, 내가 외도했다는 소문을 믿는 당신을 두고 이런 말도 하고 싶군요. 애초에 애를 친척집에 맡기고 당신과 같이 출국했더라면 이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았을 걸요.
이것이 당신이 오해하고 있던 저의 전부의 이야기에요. 오해의 저 벽 너머에는 황홀한 사랑이 춤추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줘요. 포근한 가슴으로 저의 차거워진 마음을 덮혀주세요. 당신을 반기는 문은 항상 열려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다른 곳에서 더 행복하다면 그냥 그 곳에 머물러도 돼요. 나는 그저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만 알면 돼요.
밤하늘의 별이 우리 둘의 마음을 잇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요.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당신은 어딘가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혹은 그냥 잊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나는 그저 이 편지를 통해 당신한테 나의 청백한 마음을 표달할 뿐이예요.
밤하늘에 별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당신이 보고 있는 별과 같은 별을 보고 있고, 그 별이 당신을 그리는 내 마음을 전할 거라는 생각 뿐이예요.
당신을 사랑하는 안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