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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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지난 8월말, 상지시소수민족사업촉진회 김장성비서장의 안내로 전국소수민족특색촌, 전국레저(休闲)아름다운향촌, 흑룡강성문명촌으로 흑룡강성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상지시 어지조선족향 신흥촌을 찾았다. 상지시에서 떠나 할빈-목단강고속도로를 타고 근 100킬로미터를 달려서 신흥촌에 도착하니 상단에 신흥촌이란 글자를 새긴 민족특색의 마을입구문패루가 유표하게 안겨왔다. 마을 곳곳에는 민족전통가옥신축공사, 지붕개조공사가 한창이였다. 신흥촌사무실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공사장에서 달려온 김동호(67) 당지부서기 겸 촌주임을 만났다. 2018년부터 제13기, 제14기 전국인대대표로 활약하고 있으며 '3농'관련제안을 비롯해 홍색문화전승관련제안으로 전국언론매체들의 주목을 받아온 김동호당지부서기였기에 성함은 익숙했지만 초면이여서 주저심이 앞섰다. 내몽골의 전국소수민족대표학습반에 참가했다가 밤차로 돌아와 이른 새벽부터 마을의 공사장을 돌아다녔다는 김동호당지부서기는 성격이 소탈하고 꾸밈이 없어서 영락없이 시골의 이웃집 형님 같았기에 금방 친숙한 느낌이 들었고 자연스레 신흥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구상을 듣게 되였다.
  • 지난 8월말, 상지시소수민족사업촉진회 김장성비서장과 함께 배산림수로 흉년을 모르는 마을로 소문난 상지시 야부리진 동흥촌을 찾았다. 상지시내에서 출발해 70여킬로미터를 달려 야부리진에 도착, 야부리진에서 야부리-설향도로를 지나 약 5킬로미터를 더 가니 동흥촌이란 마을 간판이 나왔다. 산아래 자리잡은 동흥촌은 작지만 아담했고 도로량켠에는 꽃들이 피여있었으며 도로와 집마당들도 깨끗하게 잘 치워져 있었다. 동흥촌사무실에서 리성근(62) 당지부서기 겸 촌주임을 만났다. 작은 키에 수척했지만 눈에서는 정기가 돌았고 화끈하고 소탈한 특유의 기질이 풍겨왔다. 그에게서 동흥촌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동흥촌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생겨난 조선족마을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던 당시 동흥촌은 30여호, 북대촌은 60여호에 달했다. 현재의 동흥촌은 2002년 동흥촌과 북대촌이 합병하여 이루어졌는데 호적농가는 272호에 인구가 854명에 달하며 경작지 면적은 2603.43무에 달하고 그중 수전은 2405.85무이며 한전은 197.58무이다. 주요재배작물은 벼, 옥수수, 콩이다. 동흥촌도 여느 조선족마을처럼 도시진출과 해외로무로 현재 마을에 상주하는 인구는 적었다. 동흥툰에 18호에 인구가 41명이고 북대툰에 16호에 인구가 35명이며 북대분툰에 외래호수가 10호에 인구가 38명에 달해 총 44호에 인구가 114명에 달했다. 흑룡강성외 대도시에 진출한 촌민이 111명에 달하고 한국이나 일본 등 해외로무에 종사하는 촌민이 568명에 달했다.
  • 지난 7월말, 벌리현조선족중학교 김규환교장, 벌리현 신화서점 박성호부경리의 안내로 벌리현 행수조선족향 금강촌을 찾았다. 벌리현성에서 40여분을 달려서 벌리현 행수조선족향 금강촌에 들어서자 마을외곽에 자리잡은 대형 입쌀가공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입쌀가공기업이 발빠르게 조선족마을의 입쌀가공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들어선 것일가라는 선입견에 물었더니 금강촌의 성민위 지원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외딴 곳에서 어떻게 성민위 지원 프로젝트를 쟁취했는가 라는 궁금증을 안고 금강촌사무실을 찾았다. 작고 아담한 금강촌사무실에서 리동춘(47) 촌주임 겸 당지부서기, 왕도평(36) 회계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작달막한 키에 다부지게 생긴 리동춘 당지부서기의 언행에서 짧은 대화였지만 고향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금강촌의 력사와 현재, 미래를 얼음우에 표주박 밀듯 술술 내리 읊는 리동춘당지부서기의 모습에 금방 빨려들었다. 멀리 사천성에서 조선족남편을 만나 이곳에 왔다는 왕도평회계는 조선족마을의 며느리답게 우리말도 알아듣고 간단한 대화도 가능하다고 하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 흑룡강성 해림시 신안진 영락촌은 해림시에서 서쪽으로 50킬로미터 상거해 있고 신안진에서 남쪽으로 3.5킬로미터 상거해 있는 해란하 북쪽대안의 조선족 마을이다. 영락촌은 영락촌, 화평촌 신안촌(한족마을) 이렇게 세마을이 련결되고 혼합되여 큰 동네를 이루었다. ​이 마을 리휘 서기에 따르면 영락촌은 현재 호적상 인구가 737명(그중 조선족이 646명, 한족이 91명), 가구는 190호(조선족 가구 104호, 한족 가구 26호) 그중 외지로무에 나간 430명 중 국외로무자가 300명 된다. 경작지면적은 330헥타르로 그중 수전면적이 330헥타르, 한전이 30헥타르 된다. 현재 촌에서 전부 경작지를 위탁받아 임대해 주고 관리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몇해전부터 유기농 쌀기지를 선정해 유기농법의 일종인 오리농법으로 오다농사를 짓고 있으며 신신영락량식합작사를 설립해 상해 등지로 중고가로 판매하고 있다.
  • 장마비가 기승을 부리던 7월말, 벌리현조선족중학교 김규환교장의 안내로 벌리현 길흥조선족만족향 후춘촌을 찾아 떠났다. 련일 쏟아지는 비로 인해 침수지역이 속출하고 여기저기에 피해소식이 련발하는 가운데 떠나는 길이라 근심이 앞섰지만 이날만은 날씨가 화창하고 도로상황도 괜찮아서 40여분만에 후춘촌에 도착했다. 산밑에 자리잡은 후춘촌은 마을 규획이 잘되여서 집과 집사이의 간격이 일정했고 도로도 가로 세로 잘 빠져서 질서정연한 느낌이 들었다. 촌 사무실에서는 미리 련락을 받은 리일남 촌주임 겸 당지부서기(62)와 김명철회계(55)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 서안촌은 해림시 신안조선족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작지가 가장 큰 마을로 신안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조선족 마을이다. 서안촌의 인구는 2000명에 육박하고 경작지는 만무가 넘는다. 지리적위치로 보면 서안촌은 해림시에서 서남쪽으로 60여리 상거해 있고 신안진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8킬로미터 상거한 마을로 해림과 밀강 중심인 충적평원에 위치해 있다. 서안촌 서쪽에는 3킬로미터 길이의 룡두산이 있고, 동쪽에는 고려섬이라는 고대 군사요새 유적지가 있다. 마을 서쪽 입구에 들어서면서 서안촌이라는 금빛찬란한 글발이 살려진 마을 대문이 위용을 뽐내면서 우뚝 서 있고 마을에서 가장 크고 널찍한 중심도로가 동쪽 끝까지 하늘자로 곧게 뻗어 있다.
  • 벌레가 돌아눕는다는 립춘이 지나고 우수까지 지나 봄내음이 솔솔 불어온다. 깊은 겨울 잠에 푹 빠졌던 동토가 녹기 시작한다. 농민들이 때를 기다렸다는듯 바삐 돌아친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는 가부다. 특히 당 창건 100주년을 맞아 지난 21일 중공중앙과 국무원에서 18번째 ‘3농’사업을 지도하는 향촌진흥 관련 중앙1호 문건을 발부했다. 당중앙에서 올해 향촌진흥을 중점 과제로 확정했는데 향촌진흥의 관건은 농민 소득증대인만큼 새해 농사를 잘 짓는것이 첫 단추를 잘 꾀는것이다. “어머, 벌써 새해 농사차비를 하네요” 동네 마실을 다니던 아낙네가 말을 건넨다. “먹고 살려면 서둘러야지요. 농부가 어디 한가할 때가 있어요” 김장도(53)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흑룡강상지시 하동조선족향 남성촌(南星村)에서 장도벼재배전업합작사를 운영하는데 하동벌의 사람들은 농민합작사 리사(理事)인 그를 꽤나 알아주는 편이다. 코로나 영향으로 쌀 판매가 다수 어려움을 겪지만 역으로 김씨는 올해 논 면적을 87헥타르에서 120헥타르로 늘렸다.
  • 흑룡강성 상지시 어지조선족향 신흥촌은 촌 지도부의 현명한 령도하에 국가의 향촌진흥 정책을 충분히 활용하고 본 촌의 실정에 맞는 여러 가지 제도와 촌 규약을 제정하고 착실히 실시하여 목적 있고 계획적으로 향촌진흥을 꾸준히 추진한데서 흑룡강성 향촌진흥의 앞장에서 달리고 있다. 상지시에서 동남쪽으로 90킬로미터 상거한 신흥촌은 314가구에 인구가 874명(그중 조선족인구가 94% 차지)이며 경작지 면적은 6273무, 습지 보호 면적은 700무이다. 신흥촌은 교통이 편리하고 환경이 아름다우며 량호한 지역우세와 경제발전 잠재력이 크다. 1984년도부터 시작하여 37년간 신흥촌을 이끌어 온 김동호 당지부서기를 핵심으로 한 촌 지도부는 정부의 새 농촌 건설 관련 정책을 본촌 실제와 유기적으로 결부시켜 아름다운 향촌 건설, 촌민들의 물질 문화 생활 질 향상을 골자로 실사구시적인 사업작풍을 견지하여 옳바른 리상 신념을 수립하고 본 촌의 우세와 잠재력을 충분히 발굴 활용하여 정신문명, 생태환경, 경제발전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 지난 2020년도는 성화촌 촌사계보에 지극히 눈부신 한해로 기록되였다. 그해 7월 3일부터 성화소식이 중앙TV 4개 채널에서 뉴스프로로 련일 보도되면서 ‘성화돌풍’각광을 받았다. 성급이상 중앙매체에 90여편이 뉴스프로로 제작됐다. 코로나 방역제한 환경에서도 성화촌을 찾은 관객이 4만명선을 넘었다하니 적은 수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림의 떡을 넘보듯 성화의 오늘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제나름대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신기루처럼 뜬 ‘성화현상’이라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중국식 패턴의 잠재한 규칙일거라고 한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성화의 변화는 지각변동처럼 그 지평이 넓고 평탄하지 않은 희망 속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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