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시대에 들어선후 농민들이 생활방식을 바꿔 도시로 국외로 진출하는 현상이 주류를 이뤘다면 이에 대응하여 줄곧 농촌에 남아 농사만 고집해온 사람을 이젠 비주류라 할 수 있겠다.
학강시 라북현 동명향 려명촌의 김일환, 김명협씨는 곁눈질 없는 규모화농사 한우물파기를 견지하면서 삶을 꾸준히 경영해가고 있는 농업인으로 현지에서 잘 알려지고 있다.
김일환(52세)씨와 김명협(64세)씨는 젊은 시절부터 농사일에 착수해 일반규모에서 현재는 100헥타르를 넘는 면적을 경작하고 있다.
김일환(52세)씨는 20대에 수전 7헥타르로 시작해 차츰 규모를 늘여 현재 130헥타르로 증가했다. 그중 수전이 60헥타르이며 한전(옥수수)이 70헥타르 된다. 한전은 90년대 후기에 이미 20헥타르 보유하고 있었으며 최근년간 수전을 개답해 지금의 면적으로 늘어났다. 몇년전 옥수수 수매가격이 좋아 대면적으로 개답한 것이다.
김일환씨가 논밭에서 재배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60헥타르에 원립쌀을 모내기로 파종하며 벼를 수확하면 현 식량창고에 넘긴다. 근당 1.31원에 국가 재배자보조금 0.1원을 합하면 리윤이 1.41원이다. 원립쌀을 재배하는 리유는 국고에 들어가는 량식 가격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라 한다. 톤당 리윤은 2600여원이며 헥타르당 9톤 안팎으로 수확하는데 인력, 물력 원가를 공제하면 헥타르당 7천원 수익을 본다. 옥수수는 국고가 아닌 시장에 나가기 때문에 시세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올해는 시세가 작년보다 리상적이지는 못해 헥타르당 14톤의 산량이 보장돼야 일정한 수입을 본다.
규모화 농사를 시작해서부터 기계화작업을 하고 있는데 현재 콤바인 네대, 고무바퀴트랙터 네대, 지게차 한대, 드론(无人机) 한대를 갖췄다. 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는 일은 드론으로 한다. 모내기를 고집하다보니 모내기 철에만 삯군 서른명을 고용하고 있다.
김명협씨는 수전 30헥타르, 옥수수 100헥타르를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옥수수 시세가 좋아 수전 100헥타르를 전부 한전으로 개답했다. 벼는 장립향을 재배하고 있는데 김일환씨의 원립쌀과 달리 시장에 나간다. 나라에서 가공기업을 고려해 질좋은 쌀을 먼저 시장에 내놓는 걸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립향 가격은 시세에 따른다.
김명협씨와 그의 둘째 아들이 소사양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마찬가지고 기계화농사를 하는 김명협씨는 현재 200마력 대형 고무바퀴트랙터 한대, 100마력 트랙터 두대, 80마력과 70마력짜리 각각 한대, 55마력짜리 두대. 콤바인 네대에 드론 세대를 갖췄다. 처음에 130헥타르 수전에 전부 모내기로 재배하다가 최근년간 드론으로 절반 산종하고 절반은 점파기로 파종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면적에 하루면 파종이 끝난다. 모내기보다는 산량이 낮지만 사람이 덜 힘들고 원가를 줄일 수 있다.
현재 두 아들도 그와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다. 큰아들 김동진(41세)씨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두명 보게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10년째 함께 일하고 있으며 작은 아들 김동석(38살)씨는 줄곧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해왔다.
김명협씨는 "둘째 아들은 처음에 일을 잘 못해서 꾸지람을 하면 며칠이고 밖에 도망쳤는데 어쩔 수 없이 잘 구슬려서 불러온다. 지금은 일도 잘한다. 어쩌다 가끔씩 꾸지람해도 이젠 약발이 없다"면서 웃는다.
젊은이들은 연해도시나 국외에 나가있는 경우가 보통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김동석씨는 "농촌에서 일하면서 사는게 자유스럽고 편하다"라고 고백한다.
기계화를 하면서 효률이 엄청 올라갔다. 드론으로 파종하니 종자가 매우 고르게 뿌려진다. 농약을 뿌리거나 비료를 줄때 드론이 작업하다가 농약이 떨어져 다시 장전해서 띄우면 작업이 정지된 시점에서 다시 구석구석 빠뜨리지 않고 작업하는데 정밀하기 그지없다. 옥수수는 파종할때 종자 한알이 안떨어져도 파종기가 신호를 보낸다. 고장이 생겨도 신호가 온다. 그래서 일할 멋이 있어졌다. 이들은 수십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익숙할대로 익숙해져 어떤 일에도 담담할법한 로농민이지만 새로워지고 있는 농업의 모습에 찬탄을 련발했다. 기계작업을 하니 효률도 엄청 높고 힘든 일이 별로 없다. 수확철에 수확기로 작업하면 수전의 경우 하루에 10헥타르정도 수확할 수 있으니 재배규모가 큰 이들도 며칠이면 수확이 끝난다. 다만 농기계의 마손이 빨라 어쩔 수 없이 3, 4년에 한번씩 교체하는데 돈이 적잖게 들어가는 것도 현실이다.
이들은 농촌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 중에 벼농사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해도 나라에서 가격을 안정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에 가격파동이 적고 소득이 어느정도 보장된다.
1년에 한번 농사하기 때문에 어떻게 똑같은 면적을 부쳐서 수익을 올리느냐가 이들에게 가장 관건적인 문제다. 마찬가지로 농사를 쭉 해온 림정길 촌당지부서기는 "원래 벼농사는 육모외에 특별히 산량을 높일 방법은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으니 하늘 봐서 한다. 할 수 있는 건 하나는 일손 관리이다. 스무공을 쓰면 될 걸 서른공을 쓰면 지출이 늘기 때문에 잘 된 관리가 필요하다. 둘째는 품종선택이다. 해수를 봐서 품종을 잘 선택해야 하는데 벼종자를 잘 고르면 헥타르당 9톤 나는데 잘 못 골라서 1톤 적게 나면 그만큼 적게 번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종자상점과 농가들을 데리고 가목사 벼연구소, 련강구 벼연구소 등에 다니면서 조사연구하고 품질을 대조하여 구매한다. 옥수수도 다른 지역에 돌아다니면서 보고 품종을 관찰하고 도복되는지 여부를 비교해 심어보고 산량이 좋으면 대면적으로 보급한다. 림서기는 "모르는 품종을 처음부터 대면적으로 심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수십년간 마을에 쭉 있는 동안 해외 돈벌이 시도는 해본 적 없다. 오래동안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하는데 습관돼 사장이나 다름없는 이들은 "남 밑에서 눈치보며 일을 못한다"고 실토한다. 김일환씨는 "물론 형제들이 한국에 나가 있는데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버는 사람은 벌고 못버는 사람은 못번다. 농사가 가장 보장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명협씨는 올해 4월 황소를 60마리 가뒀다. 송아지를 샀는데 명년에 30마리 정도 낳는다고 한다. 벼짚과 옥수수장을 사료로 쓰고 650평방미터 되는 우사를 지었다. 이러는데 도합 55만원이 들어갔다. 비록 요즘 소고기 시세가 잠시 '흐림'이라고는 하지만 꾸준한 농심은 해맑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마국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