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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그릇 복무청사 랭면 한평생의 집념

2026-10-19 10:01:41

연길금성 복무청사 랭면유한회사 김련희 대표를 만나다

아침 6시 50분, 연길의 골목은 아직 완전히 깨여나지 않았다. 연길복무청사 랭면유한회사 김련희 대표는 이미 시내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거리 풍경은 그녀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시의 륜곽이다. 일흔이 넘은 그녀는 여전히 이 습관을 지키고 있다. 일찍 집을 나서서 가게에 들러 보는 것, 그곳에는 그녀가 반평생을 지켜온 것이 있다. 바로 한그릇 랭면의 맛 그리고 조선족 브랜드 음식의 뿌리이다.

중국 첫기 금패 관광 간식(首届中国金牌小吃)”이라는 영예를 시상하고 있는  복무청사 연길랭면 김련희 대표

연길에서 ‘복무청사 랭면’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60여년의 세월을 걸어온 이 로자호는 조선족 랭면 문화의 가장 생생한 매개체 중 하나다. 그리고 김련희 대표는 바로 그 시대의 물결 속에서 필사적으로 이 배를 건져 올린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연변 랭면계의 ‘천사’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초병’이라 부른다. 한마디로 민족 음식 문화의 진지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그저 반평생 랭면을 떠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국수’에서 ‘랭면’까지 한그릇 면에 담긴 백년의 흐름

연변에서 랭면은 처음부터 ‘랭면’이라 불리지 않았다. 옛 세대들은 그것을 ‘국수’라고 불렀다——‘국수(掬水)’의 방언 음전으로 ‘물에서 건져 올린 면’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 안에는 한시대의 기억이 숨어있다. 그 시절 랭면은 사치품이였고 명절이나 혼례·상례 때만 상에 오를 수 있는 진미였다. 한 그릇 면 안에는 궁핍한 세월 속에서도 얻을 수 있었던 귀한 청량함과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길림성 로자호의 영예를 지닌 복무청사 연길랭면

랭면의 력사는 고려왕조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고종황제도 랭면을 즐겨먹었다고 전해진다. 조선반도에서 랭면은 두가지 큰 류파로 나뉘였다. 평양의 ‘물랭면’은 담백한 소고기 육수나 김치국을 기본으로 하고 메밀로 면을 만들어 소박하고 깔끔하다. 함흥의 ‘비빔랭면’은 감자전분면에 매콤한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으며 열정적이고 강렬하다. 그리고 연변 랭면은 그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평양 물랭면의 시원한 육수를 가지면서도 연변황소의 깊은 맛을 녹여내고 여기에 고추장의 선향을 더해 중국 조선족만의 독특한 미각 표지를 만들어냈다.

지난 60년대 옛 복무청사와  광명거리 모습

1950년대, 연길시 제1국영판점인 ‘연길판점’이 주덕해 주장의 건의로 세워졌다. 1963년 3월, 연길시 중심거리에 당시 연변에서 가장 높은 4층 건물이 우뚝 섰다. 그 이름은 ‘연길복무청사’였다. 복무청사 랭면의 이야기는 이 건물에서부터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복무청사의 랭면은 처음부터 ‘제대로’라는 두글자를 달고 있었다. 소고기는 연변황소의 다리 부위만 사용한다. 연변황소는 중국 5대 지방 우량 품종 중 하나로 일본 화우나 한국 한우와도 겨룰 수 있다. 고기는 24시간 랭동·산성배출 과정을 거친후 흐르는 물에 24시간 담그고 다시 온수로 잡내와 피물을 뽑는다. 그다음 5시간 동안 고기를 삶고 육수간장을 만든다. 소뼈와 소고기를 함께 끓이며 아침에 구입한 여러가지 야채를 믹서로 갈아 함께 넣어 육수간장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수간장에 생수, 식초, 설탕을 일정 비례로 넣어 랭면육수를 완성한다. 어떤 조미료도 첨가하지 않는다. 순수한 원시적 고유맛을 추구하는 것이다.

면의 질 향상을 연구하는 김련희(왼쪽) 대표가 정문성 총경리와 함께 랭면을 만들고 있다.

면도 제대로다. 메밀가루, 고구마가루, 도토리 가루를 비례로 섞어 반죽해 면의 여러가지 기능을 조률한다. 면을 끓이는 것도 엄격한 규정에 따른다. 규정된 시간이 있으며 작업장 바로 앞에 시계가 설치되여 있다. 숙련공이 배치되여 삶는 시간과 면을 휘젓는 직업적 감각이 상호 작용한다. 차가운 육수를 면에 부어 소고기 편육, 닭고기 완자, 사과 편, 계란 지단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고추가루를 뿌린다——한그릇의 랭면이 상에 오르면 붉은색 흰색 초록색 노란색이 어우러져 한폭의 정물화 같다.이 규칙은 수십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견지,‘천리마’가 쓰러지려 할 때

김련희씨와 랭면의 인연은 운명의 전환점에서 시작되였다.

그녀는 1952년에 태여나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동갑이다. 열살 나던 해, 자치주 성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그녀는 동갑 소년 대표로 꽃다발을 들고 검열대렬 맨 앞에 섰다. 그 영광을 그녀는 평생 기억한다.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하향지식청년으로 7년을 보내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연길시제2백화상점의 가전제품부문 경리로 일했다. 남편은 복무청사 랭면점에서 일했고 가족의 삶은 평범하고 안정적이였다. 1999년, 복무청사 랭면점이 개혁을 거쳐 직공들이 주식을 사들여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남편이 경영의 중임을 맡았지만 2003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김련희씨는 51세였다. 그녀는 퇴직금을 받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한 결정을 내렸다. 복무청사 랭면점에 들어가 남편이 미처 이루지 못한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2006년 그녀는 선거를 거쳐 회사의 부리사장이 되였다.

그러나 더 큰 시련이 남아 있었다. 2012년, 연길시정부의 헌례공정 계획에 따라 복무청사 건출물이 철거되였다. 반세기의 기억을 담고 있던 이 건물이 와르르 무너졌고 랭면점도 함께 해산되였다. 50여년의 로자호가 한방울의 물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듯 소리 없이 사라졌다.

주주들은 각자의 주식을 챙겨 떠났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당신도 돈 챙겨 가세요. 이 나이에 뭘 더 하시겠어요.”라고 권장했다.

중앙CCTV7에 출연해 연변랭면을 소개하고 상을 받은 김련희 대표

그러나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이 랭면 한그릇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면의 무게만이 아니였다. 60년의 세월 3대의 손끝 한도시 몇세대의 미식 기억 그리고 조선족 음식 문화의 가장 구체적인 표본을. 다른 사람들은 철거된 건물을 보았지만 그녀는 쓰러져 가는 ‘천리 줄마’를 보았다.

그녀는 '달리기일'을 시작했다. 정부를 찾아가고 관련 부서를 찾아가며 복무청사 랭면의 력사와 가치를 거듭 설명했다. 랭면 하나의 상표와 브랜드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고생을 그녀는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다. 다만 “그때 다리가 다 가늘어졌다”고 말할 뿐이다.

11개월 후, ‘연길금성복무청사 랭면유한회사’가 등록되였다. 북경에서 일하던 아들딸들을 불러들여 가족이 다시 이 간판을 어깨에 짊어졌다. 2013년 5월, 새 가게가 연변대학 정문 맞은편 대학타운에 문을 열었다. 연길 복무청사 랭면이 사라진 지 1년 만에 재탄생하고 연길 사람들의 식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각의 마지노선 ‘대충’이 신앙이 될 때

다시 출발한 김련희씨가 마주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 환경이였다.

'왕홍벽' 아래 관광객들로 붐빈다. 젊은이들이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랭면집은 필수 방문지가 되였다. 장사가 가장 잘될 때는 하루에 수천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김련희씨의 규칙은 하나도 풀리지 않았다.

고객으로 붐비는 복무청사 연길랭면

한번은 구매 부서 직원이 요청했다. 시중에 더 싼 참기름이 있는데 지금 쓰는 브랜드를 바꿔도 되냐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는 최고의 원료를 쓴다. 바꾸면 맛이 달라진다. 재료에 꾀부리지 마라.”

또 한번은 누군가 일반 소고기로 연변황소를 대체하면 원가를 크게 줄일수 있다고 건의했다. 그녀는 거의 화를 냈다. “우리는 복무청사 랭면을 파는 거지 아무 랭면이나 파는 게 아니다. 싼 재료를 쓰면 손님이 한입 먹으면 안다. 그건 자기 간판을 깎는 짓이다.”

온라인으로 전국에 판매되고 있는 복무청사 랭면

지난 코로나 전염병 시기, 료식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꼬박 3년 동안 가게 수입은 급감했지만 직원들 로임은 한푼도 줄지 않았고 각종 비용은 그대로 나갔다. 누군가 일시적으로 대체 원료를 쓰자고 제안했지만 김련희씨의 대답은 명확했다. “어려울수록 더 속이면 안된다. 손님을 속이는 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녀의 ‘대충’에 대한 무관용은 모든 세부에 배여있다. 돌솥비빔밥은 나중에 추가된 품목인데 누군가 출식을 빠르게 하려고 밥을 미리 떠놓았다. 그녀가 발견하고는 즉시 제지했다. “밥이 식으면 맛이 달라진다. 몇그릇 덜 팔더라도 손님에게 제대로 된 걸 대접해야 한다.”

이런 거의 고집스러운 견지는 소박한 신념에서 나온다. 좋은 것은 스스로 말한다는 것. 60년 동안 복무청사 랭면은 국영식당에서 유한회사로, 다시 10여개 직영점과 가맹점을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바로 이 한그릇의 면 자체로.

2016년, 연길랭면은 ‘중국10대 브랜드면’ 평가에서 북경 짜장면, 란주 우육면, 무한 열건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같은 해 복무청사 랭면은 ‘금완상(金碗奖)’을 받았다. 2017년에는 길림성 지방업종표준으로 선정되였고 김련희씨 자신도 ‘길림로자호’의 주인공이 되였다.

이 영예들은 벽에 걸려 있지만 그녀는 좀처럼 쳐다보지 않는다. 그녀가 더 신경 쓰는 것은 매일 아침 그 솥의 국물 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면이 제대로 삶아졌는지 손님이 다 먹고 나서 얼굴에 스치는 그 만족감이다.

전승과 신생: 로자호가 다음 60년으로 갈 때

지금 복무청사 랭면은 이미 김련희 대표의 아들딸 세대로 넘어갔다. 현재 아들 정문성은 총경리를, 딸 정경윤은 품질 관리와 연구개발을 맡는다. 김련희씨는 뒤로 물러났지만 매일 가게에 들러 국물을 맛보고 면을 본다.

“얘들이 나보다 더 잘 알아요. 컴퓨터도 쓰고, 온라인 판매도 하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자부심과 함께 약간의 안도가 섞여 있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포장랭면이 개발되여 고온살균 처리 후 방부제 없이 상온에서 6개월 보관할 수 있게 되였다. 외지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연길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라이브 방송, 소셜 미디어 홍보를 통해 이 로자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인지도를 얻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김련희 대표는 자주 아들딸에게 말한다. “아무리 혁신해도 랭면의 뿌리는 잃으면 안된다. 그 뿌리는 바로 진짜 재료 그리고 정직하게 면을 만드는 마음이다.”

연길 복무청사 랭면의 성장과 발전을 연구 토론하고 있는 김련희(왼쪽)대표,정문성 총경리(가운데), 한명수 경리.

그녀는 전자풍금을 배우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벌써 몇년째다. 잘 치냐고 물으면 그녀는 활짝 웃는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이 숨김없는 당당함은 그녀가 랭면을 만드는 태도와 한결같다. 가식 없고 요령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이다.

연길왕홍벽에 위치한 복무청사 연길랭면

저녁 무렵, 연길의 '왕홍벽'에 불이 켜진다. 복무청사 랭면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전설의 ‘연길랭면’을 맛보려 한다. 김련희는 구석 탁자에 앉아 이 모든 것을 바라본다.

창밖은 젊은이들의 소란스러움, 창안은 60년의 고요함.

한그릇의 랭면이 고려시대 궁정에서 평양의 거리로, 연변의 국영식당으로 다시 오늘의 왕훙 명소로 걸어왔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를,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몇세대의 희로애락을 관통했다. 그리고 김련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20여년을 바쳐 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다.

연길백리성 6층에 자리잡은 체험판매장(旗舰店) 복무청사 랭면 

“랭면은 우리 민족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또렷하다. “조선족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족, 만족, 외국에서 온 손님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좋은 것이니 전해야 합니다.”

그녀는 ‘백년기업’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담긴 것이 바로 그런 꿈이라는 것을. 꿈속에는 시원한 소고기 육수가 있고  쫄깃한 메밀면이 있고 새빨간 고추가루가 있고 또 한세대 또 한세대가 탁자에 둘러앉아 고개 숙여 랭면을 먹는 모습이 있다.

그녀의 집념으로 긴 세월 지켜온 맛은 오늘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른다. 그렇게 복무청사 랭면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채 다음 세대의 웃음소리 속에서 새로운 려정을 이어가고 있다.

/강빈 길림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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