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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밭의 미학 - 김신자

2026-06-23 10:25:25

“옥순 언니, 오늘 외출하세요?”

“응, 아들이 비행기표를 보내왔어. 아들도 볼겸 꽃도 구경할겸 한국에 있는 아들집으로 가는 길이야.”

나는 마치 천진랑만한 어린아이처럼 더없이 들뜬 심정으로 어느새 서울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마중나온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를 만나 너무 기뻐서 얼싸안고 돌아갔다. 저녁에는 맛나는 음식을 실컷 맛보고 서울의 낮과 밤을 채우는 빛의 풍경을 보면서 광화문 거리를 거닐고 늦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잠자리에 들 무렵, 아들은 나의 침실에 들어와서 물었다.

“어머니, 래일 주말인데 우리 공원에 가서 꽃구경 하는게 어때요? 어머닌 피곤하시지 않으세요?”

나는 흔쾌히 동의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한폭의 수채화와도 같았다. 내가에 실실이 드리운 수양버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며 길손들을 반기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그윽한 꽃향기를 듬뿍 실어오고 꽃밭의 꽃들이 아릿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봄 정취를 더했다. 구름처럼 모여든 관광객들이 서로 사진을 찍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 사진을 찍어드릴게요. 이렇게 동작하세요. 또, 또, 다른 동작하세요.”

“내가 준비한 동작은 이것뿐인데, 더는 없어, 하하…” 꽃 속에서 찰칵, 찰칵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나는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쉴사이없이 이름모를 꽃들을 소개해주었다.

한식경이 지나 꽃나무 그늘밑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은 려행사의 가이드처럼 불쑥 이런말을 꺼냈다. “어머니, 저 꽃들을 보세요. 피는 시간이 다르고 색갈도 서로 다르지만 제가 먼저 꽃망울을 터치였다고 우쭐대지 않으면서 화목하게 지내지요. 어쩌면 우리 가정 식구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가던 그때 그 느낌이 와요”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화목이라는 말이 나의 추억의 문을 노크할 줄이야.

“네 말이 옳다. 나와 너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을 한가마 밥을 먹으면서 한번도 너희들 앞에서 서로 큰 소리로 다툰적은 없었다. 사실은 고요히 흐르던 강물이 암초에 부딪치며 격랑을 이루듯이 하였지만 너희들 마음에 상처를 남길가 두려워서 옥신각신한 사연을 비밀로 하였지.”

얼굴색이 격동으로 번져가는 내 말에 아들은 깜짝 올라 물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와 어머니 크게 다툰적이 있어요?”

“그래, 너무 많고도 많지. 너희가 집에 없을 때만 기다렸다가 다투었다. 놀라기는? 입안의 혀도 씹을 때가 있는데 남남이 사는게 어찌 내 마음이자 네 마음이겠니, 다투는게 정상이지.”

추억의 대문이 열리자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 세기 60년대 우리는 농촌 마을에 살면서 너의 아버지는 공사에 출근하고 나는 집에서 애를 돌보았지. 그때는 나이 젊고 가정부담도 적어 사는게 정말 행복하고 꿀맛이였지. 저녁이면 네 아버지는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나는 첫 아기의 재롱을 자랑하면서 웃고 떠들면서 사랑의 꽃을 피웠어. 힘든 줄도 모르고 닭과 돼지도 키우면서 생활 보탬을 하였다. 후에 애가 셋이니 생활소비가 늘어나 서로 누구탓만하여 다툼이 자주 생기더라. 한번은 세 아이의 학잡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애들이 학교에 간후 크게 다투어 마지막에는 리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리혼할려면 해봐요. 누구는 못할까? 나는 자존심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편은 몰라도 세 자식은 죽는 한이 있어도 지키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리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있던 아들이 저으기 격동되여 말하였다. “어머니 정말입니까? 믿을 수도 없고 너무 무서워요. 내가 소학교 다닐 때 옆집 중간벽에 딱 붙어서 철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짤랑짤랑 그릇을 부시고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를 들으니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자주 들리는 소리였어요. 나는 우리 가정만은 서로 불평 하나없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줄로 알았어요.”

접시물이 다 마를 때까지 사랑하기 힘든 것이 인간의 사랑이다. 바다가에 자갈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에 뒤척이며 자신의 날카로운 모습이 부서지고 깎이는 고통을 겪으면서 부드럽고 동그란 모습으로 변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이런저런 시련을 격어야만 했다.

“저 꽃들을 보아라. 지금은 색갈이 곱고 향기로와 서로 얼굴을 만지면서 봄을 즐기지만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면 쓰러지고 넘어지고 그 밑에 깔린 란초와 민들레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픔을 참아야 만한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가슴 속의 아픔을 견디며 산단다.”

“너희들은 너무 일찍 셈이 들어 사는게 안심이 되는구나.”

“아버지, 어머니, 우리 삼형제를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어요. 감사함니다. 이 절을 받으세요.”

난생 처음으로 곡절로 얼룩진 가정 이야기를 듣고난 아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무릎을 꿇고 굽석 큰절을 올렸다. 훈훈한 봄바람이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고 새삼스레 인생의 도리를 깨우쳐준 꽃밭의 미학이 그의 옷깃을 바로 잡아준다.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지고 다시 피는 저 꽃들처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 살아가리라 신들메를 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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