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변경도시 도문, 이곳에는 꼭 가봐야 할 명소들이 즐비하다. 일광산은 울창한 숲 사이로 오르는 계단길이 정겹고 조각공원에는 예술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 화엄사의 종소리는 메아리쳐 국경너머까지 닿을듯 하고 철로국문은 굳건히 서서 이 땅의 력사를 말없이 증언한다.두만강공원은 강물과 함께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곳이다. 여기에다 민족특색이 살아있는 음식들까지 더해지니 오감으로 만끽하는 려행지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진짜 매력은 정해진 관광코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과 려행자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하는 풍경, 그것은 바로 두만강공원광장에서 펼쳐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
불타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저녁노을이 살짝 강물우로 붉게 번지기 시작하면 광장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탁구치는 사람들의 경쾌한 공소리, 신나는 음악에 맞춰 광장무를 추는 젊은이들의 활력이 넘치는 발걸음, 삼삼오오 모여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의 롱섞인 옥신각신,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그 모든 풍경이 모두 다 정겹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식으로 하루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흥겨운 민요가락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는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70세에서 9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작은 단체를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겨우 서너명에서 시작되였다고 한다. 한 할머니가 혼자서 천천히 발을 옮기며 추던 춤을 옆에서 보던 다른 할머니가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 수는 10명, 20명으로 불어났다. 지금은 30여명이 꾸준히 모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덥거나 춥거나 그 날의 몸상태가 어떠하든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삶의 리유가 되여 있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고 걸으면 예전같지 않게 느릿하다. 허리가 굽은 분도 계시고 무릎이 조금 불편한 분도 계시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주는 무게가 아니라 오히려 삶을 대하는 뜨거운 열정이다.
오색찬란한 눈부신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치마자락을 날리며 귀맛 당기는 ‘도라지타령’과 ‘노들강변’의 선률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휘저을 때면 그들은 순간 세월을 거슬러 오른다. 주름살사이로 소녀처럼 환한 미소가 번지고 둔해보였던 걸음도 어느새 가벼운 리듬을 탄다. 한바퀴, 두바퀴 돌고 돌며 치마가 바람에 펄럭일 때면 그 모습은 마치 강가에 핀 꽃송이처럼 아름답다.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보자!”
그게 전부라고 한다. 살아오는 동안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일을 위해, 온갖 책임 속에서 자신의 시간은 뒤전으로 미루며 살아온 할머니들이다. 이제는 홀가분해진 나이, 비로소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할머니들은 서로를 부축하고 격려하며 매일처럼 광장에 모인다. 함께 웃고 함께 춤추고 함께 수다를 떨다보면 쑤시던 무릎의 아픔도, 외로움도 잊힌다고 했다.
금년에 83세인 김씨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자식들이 다 멀리에 있어도 여기에 와서 언니들을 만나면 외롭지 않아요. 웃고 떠들고 춤추다 보면 병도 저절로 나아져요. 옛날에 시집살이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할머니들의 춤사위 하나하나에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이 배여있음을 느꼈다.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는 자식을 키우며 밤새 안아주던 힘이, 발을 구르는 동작에는 논밭을 일구며 걸어온 땅의 기운이, 함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동작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인연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려행객들도 어느새 어깨를 들썩인다. 처음에는 멀찍이 서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구경만 하던 이들도 아름다운 음악과 할머니들의 환한 웃음에 이끌려 조금씩 다가선다.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여 빈자리로 들어서면 할머니들은 반갑게 손을 내민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문화가 달라도, 춤사위가 서툴러도 괜찮다. 할머니들은 하나하나 동작을 가르쳐주며 신명나게 어깨를 놀린다.
중국 내륙에서 온 한 젊은 려행객은 처음에는 수줍게 웃기만 하다가 할머니에게 손을 잡혀 한바퀴 돌고 나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너무도 행복한 할머니들을 보니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슈퍼에 달려 가서 음료수랑 빵이랑 사다 주면서 잡수시라고 하였다.
함께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 순간 광장에는 국경도 세대도 언어도 필요없는 하나의 즐거운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도문은 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또 오고 싶어요.”
려행객이 내뱉는 그 한마디에는 이 풍경에 대한 깊은 공감과 찬탄이 담겨있다. 산과 강, 국경과 철도가 주는 경관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강렬하게 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렇게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이다.
해가 산너머로 너울너울 점점 기울어간다. 붉게 물든 노을이 강우로 길게 드리워지고 노을빛은 할머니들의 하얀 치마저고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어느덧 광장에는 ‘강강술래’ 리듬이 울려퍼지고 할머니들은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돈다. 원의 중심에서는 가장 나이 드신 할머니 한분이 앞장서서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화답하며 한바탕 신명을 이어 간다.
아침노을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저녁노을도 황홀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저녁노을은 더욱 짙고 깊은 색깔로 하늘을 물들인다. 젊음의 아침노을이 찬란함이라면 인생의 저녁노을은 깊이와 여유다. 두만강변에 울려 퍼지는 이 황혼의 노래는 그렇게 매일 저녁마다 이 도시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한다.
인생의 황혼, 그들은 선택했다. 우아하게 건강하게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기를. 흥겨운 노래소리와 함께 빙글빙글 도는 치마자락이 바람을 가른다. 저녁노을 아래 펼쳐지는 그 춤사위는 세월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찬가이다. 강물은 그 노래를 실어 멀리 동해로 전하고 멀리 하늘 끝까지 수놓는다.
이 글을 마치는 지금도 광장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치마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두만강 너머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그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래일도, 모레도 그리고 그들이 함께 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