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를 때면 나는 언제나 이상한 계산에 사로잡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만큼 올랐다’고 생각하고 숨이 차오르면 “아직 절반도 못 갔는데”하고 중얼거린다. 산은 그런 계산을 비웃듯 가만히 서있을 뿐이다.
어느 가을날,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 전에 산길에 올랐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은 서로를 향해 살짝 몸을 기울이고 있었고 바람이 지나갈 때면 간간이 색색의 옷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그 경치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흰 수염을 휘날리며 계단을 오르는 로인이 보였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단호했다. 지팡이를 짚고 한계단 또 한계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해빛에 반짝였다.
“산은 어른께도 친절하지 않군요.” 내가 말을 건네자 로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친절할리가 있겠소. 산은 그저 산일 뿐이지.”
우리는 함께 걸었다. 아니, 함께 쉬였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로인은 열걸음쯤 가면 반드시 멈추어 숨을 돌렸다. 나도 그에 맞추어 멈추었다. 처음에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점차 그 속도에 익숙해져갔다.
“젊은이,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 중요하오.”
로인이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산에 올랐다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지 않소.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는 것만 생각하지만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할 때가 많소.”
산중턱 작은 쉼터에 다다랐을 때였다. 로인은 주머니에서 낡은 보온병을 꺼내더니 차를 따라 주었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지만 맛은 의외로 달콤했다.
“50년전쯤이였소. 나도 그때는 젊었지. 친구들과 함께 이 산을 올랐소. 정상에 오르니 구름이 발아래로 펼쳐져 있더군.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소.”
로인은 말을 잠시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한 친구가 실족해서…”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나도 묻지 않았다. 다만 그의 주름진 손이 약간 떨리는 것만이 느껴졌을 뿐이다.
오후가 되여 우리는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로인은 오를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에서는 몸을 낮추고 돌부리 있는 길에서는 지팡이로 먼저 더듬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나는 어느새 그가 내려오는 길에 놓인 모든 위험을 미리 제거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산을 다 내려왔을 때 해는 서쪽 하늘에 기울어져 있었다. 로인은 가려는 길을 가리키며 인사했다.
“오늘은 덕분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소.”
“아니요, 제가 더 배웠습니다.”
로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등이 점점 멀어져 갈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산은 결코 인간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를 때나 내려올 때나 산은 그저 가만히 서서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게 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산을 오를 때 정상만을 바라보지 않게 되였다. 내려올 길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오르기만을 고집하다가 내려올 때 다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산은 말이 없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 침묵으로 인생의 무게를 가르쳐줄 뿐이다.
어쩌면 모든 오름은 내림을 위한 예행연습인지 모른다. 정상의 광경에 취해 발밑을 잊을 때 산은 조용히 우리의 교만을 내려다보며 진정한 길을 일깨워준다.
승리의 순간도, 좌절의 시간도 결국 지나가는 바람처럼 스쳐갈 뿐. 산이 주는 교훈은 단 하나다. 오르는 자는 반드시 내려올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산의 가르침을 온전히 품게 되리라.
산은 여전히 말이 없다. 다만 그 고요함 속에서 영원한 진리가 스며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