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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달빛 고향 - 김동활

2026-06-23 10:25:59

— 저세상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며


물소리


강은 입을 다문다
산은 귀를 기울인다
어머니 가신 자리엔
물소리만 남아
방망이 쉰 물가에서
내 발이 물의 무게를 잰다
돌 하나 강물을 막으면
그 틈으로 당신 숨결이 스민다
나는 그 숨결을 신고
물소리 없는 길을 걷는다


누에


누에가 실을 토할 때
그것은 실이 아니었다
한 녀인의 침묵으로 엮은
희고 긴 밤이었다
손톱만한 빛이
내 머리카락 하나 태운 것은
그 실 속 오래된 밤 때문이리라
나는 그 실을 목에 두르고
당신이 나를 낳던
그 매듭으로 돌아가고 싶다


시루


시루 속 김이 새여나간다
한가위 밤, 송편이 아니라
어머니 젊은 날이
하얗게 타는 소리
달은 둥글어 쓸쓸하다
손끝에 묻은 흰 가루는
결국 흙이 될지어니
마당에 고인
서늘한 달빛을 주우면
어머니 뼈같은 달이
내 손바닥에 놓인다
차갑고 매끄럽고 아무 말 없이


기름종이


창호지에 갇힌 저녁
누렇게 굳은 기름종이
그 얇은 종이 너머로
어머니 숨결이 흐린 안개가 된다
나는 그 안개 속에서
외투 자락을 더듬는다
외투는 텅 비었고
나는 그 빈 곳에
또 다른 빈 것을 채운다
창호지는 희미하되 보이지 않고
내 가슴은 닫혔으되 당신을 본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겨울이 서 있다


할미꽃


뒤동산 할미꽃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흙 속 당신이
다시 꽃으로 선 자리
나는 가지 끝 이슬일 뿐
바람에 꺾일 때마다
당신의 고통이
내 혈관을 타고 내려온다
풀은 베여져도
침묵의 뿌리만큼은
더 깊이 박힌다


골무


작은 뼈처럼, 구멍 난 시간처럼
헌 옷을 붙드는 골무
그 딱딱한 고리 속 사랑은
내 가슴에 박힌 바늘이 되여
삶의 틈을 꿰맨다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다만 새 살이 그것을 덮을 뿐
당신이 남긴 마지막 실꾸리
내가 이 세상을 견디는
유일한 실낱 같아
나는 그 실을 당긴다
당신이 나를 당기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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