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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쩌다' 엄마 - 김순옥

2026-06-03 15:03:58

딸의 결혼식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어느 아침이였다. 나는 시집와서 15년간 친혈육보다 더 가깝게 지낸 아래집의 '어쩌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봉 어머니, 미연이 5월 4일에 결혼해요. 별일 없으시면 오세요." 그러자 성봉 엄마가 말했다. "에그, 어쩔까. 내 지금 다리가 아파 꼼짝달싹 못하는데… 그나저나 좀만 나아져도 꼭 가겠소."

세월은 참 빠르다. 내가 시집온지도 벌써 40년이 됐다. 나는 금방 시집왔을 때 농사일을 아무 것도 할줄 몰라 '어쩌다' 엄마가 와 돌피도 알려주고 논기음 매는 법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다.

'어쩌다' 엄마는 내가 시집왔을 때 서른일곱, 아이 다섯을 키우는 중년 아주머니였다. 항상 환하게 웃고 마음이 착했으며 일도 노래도 뜨개질도 잘하는 못하는 게 없는 분이였다.

헌데 온 마을사람들이 그녀를 '어쩌다' 엄마라고 불러 궁금했다. 시어머니께 여쭈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아래집은 렬사 가문으로 며느리가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련달아 딸만 넷 낳았다. 계획생육이 엄격하던 70년대 말, 며느리와 아들은 아이를 더 낳지 않으려 했으나 시어머니가 손자를 꼭 봐야 한다며 고집을 피웠다. 결국 며느리는 또 임신했고 산아제한 위반이 두려워 인공류산을 하려 했으나 시어머니의 감시로 시기를 놓쳤다.

소문이 퍼져 부녀간부들이 찾아와 락태를 권고했지만 시어머니는 렬사증을 내보이며 "령감이 전쟁에서 목숨 바쳤는데 손자없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고 통곡하며 버텼다. 결국 1979년 11월 28일, 드디여 아들을 낳았다. 너무나 어렵게 얻은 아들이여서 마을사람들은 '어쩌다' 아들을 낳았다며 축하해 주었고 그리하여 '어쩌다'라는 애명이 붙었다. 그 엄마가 바로 '어쩌다' 엄마였다.

'어쩌다'는 할머니와 누나들의 사랑 속에 둥둥 받들려 자랐다. 어느덧 스무살 무렵, 강했던 할머니가 중풍으로 돌아가셨고 누나들은 하나둘 시집가고 집에는 세식구만 남았다.

'어쩌다' 엄마는 쉰여섯이 넘어서야 비로소 부부가 얼굴을 마주보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어쩌다' 아버지는 평생 고생한 안해를 위해 마른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놀러갔더니 안해는 앉아서 화투를 치고 남편은 부엌에서 고추를 찧고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쑥스러워하자 그는 "안해가 감기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돕는다"며 부끄럽게 웃었다.

초겨울 어느 날, 안해가 아들을 데리고 딸집에 잠시 간 사이 마을사람들이 '어쩌다'네 집에 모여 놀았다. 마음씨 좋은 '어쩌다' 아버지는 직접 점심을 준비하며 정성껏 대접했다. 그런데 점심 후 놀던 중 "머리가 좀 아프다"며 잠시 누웠다가 갑자기 숨을 헐떡이다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응급 처치를 해도 소용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안해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도와 장례를 치렀지만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안해는 멍하니 굳어앉아 통곡했다. "왜 내 팔자는 이리 사나운가, 힘든 고비 다 넘겼더니 이제 와 과부 인생을 살아야 하다니…"라고 땅을 치며 울었다.

그러나 봄이 오자 '어쩌다' 엄마는 어린 아들을 위해 마음을 추스렸다.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밭일에 정성을 쏟았고 그해 모판은 마을에서 제일 좋았다. 남편없이 보낸 세월도 어느덧 8년, '어쩌다'는 훌륭한 총각으로 자랐지만 농촌 총각이 장가가기 어려운 세월이라 결혼이 쉽지 않았다. 엄마는 애가 타서 밤잠을 못 이루었다. 결국 아들은 고향을 떠나 룡정시에 작은 집을 사고 어머니를 모셔왔다. 그리고 한국 연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엄마 몰래 출국 수속을 밟아 비자가 나왔다. 처음으로 아들과 리별하는 엄마는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혼자 남은 그녀는 낮에도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복잡한 머리를 끌어안고 집에 누워만 있었다. 낮에는 그런대로 그럭저럭 지낼만 했지만 밤이 되면 무서운 생각에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병원마다 다녀도 뚜렷한 진단없이 마음의 병이라고만 했다. 딸들은 엄마에게 새로운 배우자를 찾아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엄마는 "내 나이 예순일곱에 무슨 령감이냐, 죽어도 안 간다"며 딱 잘라 말했다.

그러다 큰딸이 혼인소개소에 갔다가 마침 같은 곳에 온 할아버지의 딸과 만나게 되였다. 서로의 부모를 소개하며 두 딸이 팔을 걷고 나섰다. 할아버지는 예순다섯, 농민이며 안해를 간경화로 잃고 딸만 셋 있었다. '어쩌다' 엄마는 예순일곱, 남편을 뇌출혈로 잃고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엔 "이 나이에 무슨"하며 망설였지만 두 딸의 주선으로 만나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어쩌다' 엄마는 파마에 화장까지 하고 그동안 입지 못했던 예쁜 원피스를 입었다. 딸은 엄마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평생 고생만 하던 엄마가 가을 코스모스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두 분은 첫 만남에서 마음을 열었다. 서로 배우자를 잃은 아픔을 리해하며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어쩌다' 엄마는 예순일곱에 재혼했다.

한편 한국에서 돈을 모으던 '어쩌다'도 마흔이 거의 될 무렵에 마음에 드는 녀자를 만나 결혼하여 예쁜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올해 '어쩌다' 엄마는 일흔일곱. 재혼한지 십년동안 두 분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어쩌다' 엄마와 띠동갑인 나는 파란곡절 끝에 피여난 이 사랑의 꽃이 영원히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어쩌다' 엄마,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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