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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니, 아니요" - 천숙

2026-05-20 14:59:10

우리는 어릴 때부터 “네”라고 말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순응은 미덕이 되고 거절은 때로 버릇없음이나 리기심으로 오해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 “아니요”라는 말은 쉽게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도 받아들이며 그렇게 조금씩 자신을 밀어내는 데 익숙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모든 “네”가 관계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말하지 못한 “아니요”들이 마음 한켠에 쌓여 관계를 서서히 기울게 만든다는 것을. 감정은 소리없이 무너지고 결국 남는 것은 지친 자신과 어딘가 어색해진 거리감뿐이다.

그때 비로소 “아니요”라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용기이며 나의 기준을 지키는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때로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든다. 무리하게 맞추지 않은 관계는 비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나를 테스트하듯 “네”와 “아니요”를 선택해야 하는 판단 문제가 여러건 있었다. 나는 보통 거절을 잘 못하는 타입이다. 단순히 착해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인식하거나 거절 후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였다.

그러던 내가 거절할 용기를 내였으니 나 스스로도 그 변화에 놀라울 일이다.

어느 공모전에서 받은 우수상, 어느 단체의 대회에서의 심사위원 등 영예를 고민 끝에 “아니요”라고 용기를 내여 거절하였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였다. 나는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언덕우의 주시자’처럼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과연 실력이 되는가? 고민 끝에 거절할 결단을 내리고 나니 마음은 그 어떤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졌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심을 지키는 삶의 태도,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균형이다. 그리고 그 균형우에는 분명한 판단이 놓여 있다.

“네”와 “아니요” 사이에서 늘 가운데를 택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중심을 지키는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거절하는 것, 나의 가치와 어긋나는 선택을 멈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쪽으로 기울지 않기 위한 조정이다. 만약 모든 상황에서 “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균형을 잃은 상태일 것이다.

나는 이제 “아니요”를 조금 다르게 인식한다. 그것은 관계를 끊는 칼이 아니라 관계를 바로 세우는 선이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게 만드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선을 지킬 때 우리는 비로소 무너지지 않는 자리를 갖게 된다.

돌아보면 나를 지켜준 것은 수많은 “네”가 아니라 몇번의 조심스러운 “아니요”였다. 그 말들은 나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잃지 않게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배운다.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균형 있는 선택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때로는 멈추고 지키기 위해 거절하는 법을.

어쩌면 “아니요”는 부정의 말이 아니라 나를 향한 가장 정직한 긍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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