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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의 일상 - 전영실

2026-05-20 14:58:49

“래일 등산지는 모아산입니다. 9시까지 범석상 앞에 집합하세요.” 등산대의 통지이다.

“영실이, 미니영화 <장애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출연할 녀성 배우 4명을 추천하오.” 영화협회 손감독이 위챗으로 보내온 메세지 내용이다.

“선생님, 보내온 수필을 채용하겠습니다.”

기쁜 소식이다.

“모레, 왕청항일홍색기지를 참관하겠습다. 아침 여덟시까지 연변병원 동쪽대문 길 건너에 모입니다.”

“오늘은 한성호텔에서 수필창작 좌담회를 진행합니다. 친구분 몇분을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

“영실이, 봄빛동네에서 남자들이 3.8절을 쇠여주겠다는데 즉흥으로 표현해야 한대요.”

“언니, 평시에 전화를 하지 않다가 오늘 해요. 돌아오는 금요일 우리 손자가 카이로스 례식장에서 돌생일을 쇠요.”

하루같이 전해오는 일상의 내용들이다.

모두 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입한 집단에서, 살아오면서 여러 곳에서 맺은 인연에서 기인되여 전해오는, 함께 참여하여 달라는 메시지이다.

물리칠 수 없다. 또 가고싶다. 내 마음이 원해서 함께 하는 단체였고 함께 손잡고 맺어온 친구들의 부름이다. 그런데 나한테 찾아와 언제 꼭 물겠다면서 비나사정하여 돈을 꾸어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종무소식다.

내 돈은 가벼운 종이장인가? 다 나의 노력으로, 피땀으로 번 돈인데 그저 잃을 순 없었다. 그래서 법에 기소하여 하나하나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저렇게 엉키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나란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표라고 느껴지도 한다. 마치 내가 세상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미줄같다는 생각도 들군 한다. 매일과 같이 반복되고 중첩되는 일상에서 나는 변두리에 서있지 않고 중심에 서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꼭 중심인물이 될 순 없지만 자기 자신의 일에서는 자기가 중심인물이 될수 밖에 없다. 자기가 나서서 다 알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생기고 겹치는 일들 속에서도 선후가 있다.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적당히 시간 내서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집앞에 가꾸어 놓은 터밭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내가 신경써서 종자를 뿌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잘 자란다. 등한하면 제멋대로 자라거나 입사귀들이 말라 변두리가 안으로 감아들면서 아픔을 호소하군 한다. 인간은 머리로 사색하고 입으로 말하고 두발로 뛰고 두손으로 일한다. 그러나 터밭의 곡식들은 주인이 주의깊게 관리하지 않으면 무성한 풀밭이 된다. 등산하면서 촌 마을을 지날 때면 임자없는 집 앞마당은 풀이 키넘게 무성한 풀밭이다. 사람의 지배를 받는 터밭, 나의 일상이 바쁜지 한가한지를 객관적으로 진단하여 보여주는 진실한 대변인이다. 바깥일에 바삐 돌아칠 때면 터밭은 그대로 심드렁해서 비가 오면 키만 자라고 가물면 말라들기만 한다. 터밭은 자기를 제때에 가꿔달라고 종래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내가 발견하고 가꿔가야 한다. 이 점에서 터밭은 언제나 피동적이다. 피동적으로 살면서 주동적인 풀의 생애를 다 할 수 있을까? 사실은 풀도 자기의 삶이 있을 것이다.

들에나 산에서 사람의 손이 가지 않는 잡초들은 그대로 자라면서 수천년을 대를 이어오지 않았던가. 강한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갈 줄 아는, 인간을 초월한 나름대로의 생존능력이 있는 것이다. 잡초들도 나처럼 매일같이 자기 일상이 있을 것이다.

한 자리에 뿌리 박고 해빛을 쪼이면서 바람에 설레이고 우산도 없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 뿌리로 땅밑 영양분을 섭취하여 꽃 피고 열매 맺고 나중에는 자기 종자를 땅에 뿌리고 추운 겨울 속에 잠들어버린다.

그런 생활이 수천년을 흘러왔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일상은 그리 대단한 일상이 아니다. 내가 피해갈 수 없는 일이기에, 내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이며 나한테는 꼭 해야 할 일상이지만 사실은 개미들이 살기 위해 아글타글 먹이 찾아 헤매면서 일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오, 요즘 중풍으로 쓰러진 엄마의 발 뒤꿈치가 꺼먼 색을 띄더니 곪아가기 시작한다. 욕창이란다. 십년 넘게 누워 있는 어머니이다. 올해 98세이다. 의사는 와 보고 말한다. “피가 통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심장에서 제일 먼 발의 모세혈관이 막히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면서 간단히 수술하고 처치약을 떼주었다. 간호사는 소독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행히 엄마는 처치할 때 아픔을 느끼고 자꾸 발을 움직거린다. 아직 신경이 마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엄마, 아파도 처치해야 살이 아물 수 있대요. 그래야 언젠가 일어나서 전처럼 내 어깨를 쥐고 걸으면서 동네 사람들을 만날수 있대요.”

대답없는 엄마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조심히 상처를 처치한다.

알콜은 자극성이 심해서 상처에 닿으면 쨍 하고 아파나기에 소독은 갈색의 요오드폴(碘伏)로 하였다.

“엄마, 내가 엄마가 듣기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줄께요. 세상에는 엄마가 좋아. 엄마 없는 아이는 운답니다…”

핸드폰이 갑자기 운다.

누가 어떤 일로 나를 찾는 소리이다. 통신망이 엉망인 옛날에는 꼭 사람이 걸어서 또는 말을 타고 달려와서 사연을 알려 주었지만 지금은 수만리 밖 미국에서도 전화 한통이면 사연을 전해온다. 귀신같이 변해가는 세월이다. 아무리 어떤 세월이라고 해도 지금 나 전영실이는 엄마의 발을 처치하고 있다. 이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오늘의 첫째가는 일상이다.

처치를 다 마치고 나서 시간급 보모를 모셔오고 수필문학 좌담회로 가야 하였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머리도 단정히 가꿔야 하였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에 안전모자를 써서 머리형태가 자꾸 헝클어진다. 모자를 안 쓰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기발처럼 너펄댄다.

“오늘은 몸을 잘 가꾸고 택시타고 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고 나서니 전동차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먼곳으로는 못 갑니다. 전기가 부족합니다. 십리 안팍까지는 뛸 수 있습니다.”

“빨리 가자.”

가꾼 머리모양을 싹 잊어버리고 안전모를 꾹 눌러 썼다. 부르릉 부르릉 전동차는 마당을 나서서 골목을 빠져 차량이 붐비는 큰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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