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김영수라고… 출근하는 곳이지요?”
시골 옷차림의 로년의 녀성이 쭈뼛쭈뼛하며 사무실 문을 빠끔히 열고 들어설 듯 말 듯 물어왔다.
“김주임을 찾으세요?”
약삭빠른 출납원 아가씨가 문을 크게 열고 물었다.
“주임인지는 모르겠는데 김영수라고 여기…”
나를 찾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서며 “제가 김영수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 옳구나. 외삼촌을 빼닮았어!”
녀인은 무슨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금방 흥분하여 사무실 안으로 몸이 쏠렸다. 오리무중이였으나 나와 관계가 있는 듯하여 사무실 안으로 모셨고 출납원 아가씨가 눈치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다. 녀인은 온 정신이 나에게 쏠려 사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와 마주 앉아 몽유병 환자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네 아버지가 내 외삼촌이고 내 엄마가 네 친고모다!”
갑자기 어눌한 조선말까지 하며 우리 관계를 설명하는데 나는 들을수록 천방야담이였다. 내가 어리둥절해하자 녀인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전자, 다전자 몰라?”라고 했다. 다전자는 내가 태여난 곳이기는 하지만 고작 세살 때 이사를 나왔길래 어른들 이야기에서 어렴풋이 인상이 남았을 뿐이였다.
“하기야 그때 네가 세살이였나 네 살이였나, 알리 없겠지.”
그녀는 아주 락심한 표정이였다. 다전자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문득 어른들께 들은 다전자 이야기와 거기에 홀로 남겨졌다는 이쁜이 누님이 생각났다.
“그러면 혹시 이쁜이 누님이세요?”
“그래, 그래! 내가 이쁜이다! 어른들이 다 그렇게 불렀다.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부르니까 다들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네가 내 아명을 어떻게 알지?”하며 눈가를 찍었다.
그때 다전자에는 제법 많은 조선족들이 모여 살았으며 고모부가 조선족소학교의 교장을 맡으셨다. 늘그막에 본 막내딸을 그렇게 귀히 여기시고 아명까지 이쁜이라고 부르며 애지중지하셨다고 한다. 다전자촌은 향 소재지였고 산골치고는 큰 동네였다. 고모부가 애지중지 예뻐하고 잘 가르친 덕에 이쁜이 누님은 한글을 금방 배웠고 한자도 어느 정도 깨우쳤다. 게다가 매일 또래 한족 처녀애들과 휩쓸려 다녀서 한어 발음 또한 정확하였다. 한어를 잘 못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통역까지 하여 어른들의 예쁨을 독차지하였다. 타고난 특유한 또랑또랑한 목소리 또한 매력적이라 향정부의 방송원이 되였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동네 사람들은 고모네 집 마당에 모여 이쁜이 누님의 방송 시간을 기다렸다. 이쁜이 누님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오면 모두들 숨죽이고 듣고 있다가 방송이 끝나서야 중구난방으로 평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얄궂어라. 한족사람보다도 더 잘하네! 교장님은 딸을 어떻게 가르쳤길래 중국말을 저렇게 또렷또렷하게 잘한대요!”
“그러게 말이야. 어제도 길 가다가 이쁜이 목소리가 나오길래 넋 놓고 들었다니까. 참 하늘이 내리신 게지.”
“그 많은 중국 처자들 다 두고 이쁜이를 중국말 방송 시킨다니 오죽이나 잘했으면 그랬겠소.”
출근 시간이였고 사무실 안이였다. 내가 난색을 표하자 이쁜이 누님은 그제야 눈치를 챈 듯 “내가 네 일에 지장을 주었구나. 내 갈게. 다음에 또 오마”라고 하면서 그제야 사무실 안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문밖까지 바래다주면서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후에도 이쁜이 누님은 잠간씩 내 사무실로 찾아와 더덕, 고사리, 말린 버섯 같은 산나물을 가져다주었다.
어느 날 누님은 조심스럽게 “혹시 너희 집에 옛날 사진이 있나 해서… 어른들 사진이… 우리 엄마 아버지 사진이 있으면 더 좋고… 나는 엄마 아버지 사진 한장도 간직하지 못했구나”라고 하며 울먹였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막내여서 옛날 사진이 있을리 없었다. 멀리 사는 형님, 누님들께 전화를 해서 옛날 사진이 있으면, 특히 고모와 고모부가 있는 사진이 있으면 사진관에 가서 복사를 해서 보내달라고 긴급 요청을 하였다. 드디여 고모와 고모부가 있는 사진이 여러장 날아왔다. 그 사진들을 이쁜이 누님에게 전하자 누님은 보물이라도 얻은 듯 사진을 가슴에 꼭 껴안고 눈물까지 흘렸다.
날마다 웃음꽃이 피여나던 고모네 집에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쁜이 누님이 향공청단 서기인 동씨(董)네 아들과 련애를 했던 것이다. 고모가 펄펄 뛰면서 이쁜이 누님을 가둬놓고 출근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다 큰 딸을 짐승같이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침내 이쁜이 누님은 집에서 도망쳐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모가 시퍼런 낫을 들고 “이년을 찍어 죽여버린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지만 동씨 집안이 숨겨 놓은 이쁜이 누님을 찾을 길이 없었다고 했다. 며칠을 미친 사람처럼 설치던 고모는 제풀에 지쳐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렸다. 한주일이나 누워있던 고모는 “이년을 안 낳은 셈 치자”라며 이쁜이 누님을 자식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그후로 누구도 고모 앞에서 이쁜이 누님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에서 수전 농사에 능한 조선족들을 땅이 넓은 벌판으로 이주시켜 수전을 개발하게 하였다. 온 동네 조선사람들은 한명도 남지 않고 몽땅 이주해버려 다전자에 조선족이라고는 달랑 이쁜이 누님 혼자만 남았다고 하였다. 이사가는 부모님을 감히 배웅하지도 못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밤낮 사흘을 울었다고 한다. 사흘을 울고 나서는 동씨네 아들과 함께 향정부로 출근하여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방송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렇게 영원한 리별이 되여버렸다.
어느 날 문득 이쁜이 누님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들딸들을 나에게 인사시키겠다며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었다. 마침 단위도 한가한 때이고 언제부터 이쁜이 누님에게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였다. 곧바로 약속을 잡고 우리 단위 부근의 식당으로 장소를 정했다. 한창 삼복 더위라 문밖을 나서니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식당으로 가니 이쁜이 누님은 아들딸들과 벌써 와 있었다.
“얘가 큰아들인데 이름이 동조중이고 큰딸은 동조양, 둘째딸은 동조영이다.”
누님이 차례대로 소개를 했다.
“외삼촌…”
셋은 인사를 했다. 이쁜이 누님이 나보다 나이가 스무살이나 많으니 생질들은 나와 불과 몇살씩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초면인데도 전혀 낯선 느낌이 없었다. 이쁜이 누님을 닮아 두 딸도 무척 고왔다.
“우리 남매 이름이 촌스럽죠? 엄마가 조선사람이여서 이름에 모두 조(朝)자를 넣었다고 해요. 하하하…”
동조중은 자신들의 이름에 대하여 해석을 했다.
“촌스럽기는, 듣기만 좋구만.”
내가 대답을 하자 이쁜이 누님은 나를 향해 말했다.
“사실은 네 자형이 몇년 전에 돌아갔다. 나는 그 다전자가 살기 좋았지만 애들이 억지로 나를 시내로 데려왔어. 와 보니 온통 다른 나라 같고 아는 사람 하나 없더라. 그나마 너를 찾았고 또 네가 누나라고 알아주니 정말 고맙구나.”
“누님, 무슨 말씀이예요. 우리는 피줄이지, 어디 남입니까.”
“외삼촌,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요. 어머니가 왜 자주 외삼촌을 그리워하는지 알겠어요. 이렇게 훌륭한 외삼촌을 이제야 뵙게 되여서 유감이에요.”
동조중의 말에 두 딸도 동을 달았다.
“그러게요. 우리는 외가집을 모르고 자랐어요. 이제 외삼촌을 찾았으니 외가집을 찾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너희들 모두 고맙다. 앞으로 우리 자주 만나자.”
내가 대답을 했다. 듣고만 있던 이쁜이 누님은 눈가를 찍었다.
그러구러 여름도 지나가고 직장 일도 바빠져서 정신없던 중 나는 동조중의 전화를 받았다.
“외삼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흑흑…”
“뭐라고? 누님이 돌아가셨다고? 내 당장 달려가마. 주소를 알려줘!”
이때까지 나는 이쁜이 누님이 사는 곳을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는 늦가을이였다. 동조중이 알려주는 주소대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니 아파트 앞 공터에 천막이 쳐져 있고 사람들이 분주히 나드는 게 보였다. 한족은 이를 령붕(灵棚)이라고 한다. 천막이 쳐져 있는 입구로 들어서자 동조중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오고 동조양, 동조영도 달려나와 매달렸다.
“외삼촌… 흑… 흑흑…”
“그래, 누님은 어디다 모셨느냐?”
“외삼촌을 기다리느라고 아직 입관을 안했어요.”
동조중을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쁜이 누님은 흰 천에 덮여 칠성판우에 누워 있었다. 동조중이 흰 천을 벗기자 누님은 잠든 듯 제법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입혀진 한족식 상복우에 조선족의 흰 저고리 검정 치마가 덮여 있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동조중이 급히 해명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복을 입고 싶어 하셨는데 갑자기 한복을 구할 데가 있어야지요. 급히 어머니의 장롱을 뒤지니 이 옷이 나왔어요. 입혀 드리려고 해도 작아서 입힐 수가 없었어요. 흑흑...”
아마도 이쁜이 누님이 처녀 적에 입던 옷인 것 같은데 집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이 옷만은 챙겨 나왔던 모양이였다.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서 치밀어 올라 누가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쁜이 누님 앞에 엎드렸다.
“아이고, 누님요! 이제 하늘나라 가시면 먼저 가 계신 고모, 고모부님, 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네 어른신들이 한복을 안입어도 알아보시고 ‘이쁜아, 이쁜아’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실 깁니더. 걱정 말고 가이소!...
부디 잘 가이소… 뒤돌아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