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우리는 먼저 혀끝을 생각한다. 달콤함이나 짭짤함 같은 감각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만난다. 어떤 문장은 유난히 오래 남고 어떤 글은 읽는 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그럴 때 우리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 글, 참 맛있다.”
례를 들어 이런 문장을 만났다고 해 보자.
“어머니는 말없이 내 가방 속에 삶은 닭알 두개를 넣어 주셨다.”
대단한 수식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따뜻해진다. 이것이 글의 맛일지 모른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온기 같은 것. 맛있는 음식이 몸을 기쁘게 하듯 좋은 글은 마음을 기쁘게 한다. 글의 맛은 문장 속에 스민 온도이고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숨결이다.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어우러져 피여나는 보이지 않는 향기 같은 것.
좋은 글의 맛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물이 오래 끓을수록 깊어지듯 글의 맛도 천천히 번진다. 처음에는 그냥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빈 의자 하나가 저녁 해살을 혼자 받고 있었다.”
리유는 잘 설명되지 않지만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이런 순간이 바로 글의 맛이 피여나는 때다.
글의 맛은 저마다 다르다. 시는 한방울 향기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고 소설은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천천히 우러난다. 에세이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담백하다. 오랜 친구가 마주 앉아 조용히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글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맛이 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이 맛을 만드는 건 거창한 기술만은 아니다. 단어 하나를 고르는 마음, 문장을 끊는 숨의 길이, 한 장면을 살짝 보여 주는 표현.
“비가 온다”라고 쓰는 대신 “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또르르 떨어진다”고 쓰는 순간 글에는 작은 숨결이 생긴다.
그에 비해 글의 멋은 조금 다르다. 맛이 마음 속에서 번지는 느낌이라면 멋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가깝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단락이 편안할 때 읽는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례를 들어 문단이 길게 엉켜 있으면 내용이 좋아도 숨이 막힌다. 하지만 문장이 고르게 흐르고 시작과 끝이 단정하면 글은 단정한 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이 글의 멋이다. 겉모습 같지만 사실은 배려이기도 하다.
제목도 멋의 한 부분이다.
“비 오는 날의 밥 냄새” 같은 제목은 내용을 다 말해주지 않지만 괜히 마음이 끌린다. 살짝 열린 문처럼 독자를 안으로 초대한다.
글은 처음부터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번 읽고 고치면서 제 모습을 찾아간다. 덜어낼 것을 덜고 어색한 부분을 고치다 보면 글은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 시간 속에서 맛은 깊어지고 멋은 차분히 자리 잡는다. 그리고 결국 글의 맛과 멋은 독자를 만나야 완성된다. 같은 글도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글은 쓰는 사람의 것이면서 읽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마 평생 더 좋은 글의 맛과 멋을 찾아갈 것이다. 오늘 쓴 글이 래일은 아쉽고 또 고치고 싶어진다. 그래도 그 과정이 싫지 않은 건 언어로 마음을 건네는 일이 생각보다 깊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글의 맛과 멋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한줄을 쓰고 또 한줄을 고친다.
조금 더 따뜻한 맛으로,
조금 더 잔잔한 멋으로.